서북농림과학기술대학 마위강
마위강은 서북농림과학기술대학 인문사회발전학원 2025년 졸업생이다. 대학교 졸업시, 싱가포르국립대학교 석사연구생 입학통지서를 받아쥔 마위강은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즉 1년간의 연구생 휴학을 신청하고 공익기구의 자원봉사자 모집 활동에 참가하여 청해성 대통회족및투족자치현으로 1년간의 교육지원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마위강의 본과시절 보도원은 그의 이러한 결정에 대해 전혀 놀라지 않았다. “위강은 입학해서부터 가만히 있질 않았어요. 뭐든 나서서 했지요. 당지부에서 선전위원이자 당원 골간인 그는 활동을 조직하고 자료를 작성하고 후배들을 도우면서 불평 한마디 없었어요.”
“모교에서 지식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기층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였어요. 매번 농촌에 내려가 조사 연구할 때마다 농촌의 아이들을 보면서 저의 어린시절이 떠올랐고 제가 량질 교육자원을 누린 것을 매우 행운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본격적으로 연구생 생애를 시작하기 전, 1년간의 시간을 리용해 전공을 살려 서부의 아이들을 위해 뭔가 하고 싶었어요.” 마위강이 솔직하게 털어놓는 말이다.
고원에 도착하자마자 마위강은 어지럼증, 가슴 답답함, 불면증 등 어려움에 직면했다. 가장 심할 때는 련속 사흘 열이 나기도 했다.
“그때 온몸의 기가 빠져나간 것 같았어요.” 마위강은 이 한마디로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맥을 버리면 수업은 어떻게 하지?” 평소 마위강의 작식표는 빽빽이 차있었다. 아침 6시 반에 일어나고 밤늦게까지 교수준비를 했다. 점심 휴식시간은 거의 없었다.
“잊지 못할 기억이 있어요. 련일 야근으로 목이 다 쉬였는데 이튿날 사무실 책상 우에 사탕 몇알과 함께 ‘선생님, 수고하셨어요. 꼭 열심히 공부할게요.’라고 적혀진 아이들의 글쪽지가 놓여었었어요.” 그때 마위강은 처음으로 눈시울이 젖어들었다고 한다.
초중 1학년 세개 학급의 정치과 수업을 맡고 나서 마위강은 학생들의 토대가 박약하고 학습습관이 고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정황에 대비해 그는 전 학년 120명 학생에게 일일이 학습서류를 작성했다. 가정배경에서 성격특점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했다. 성적이 뒤처진 학생에게는 점심시간을 리용해 특별 ‘보충수업’을 해주었고 내성적인 학생에게는 숙제책에 격려의 말을 적어주었다. 결손가정 아이들에게는 주동적으로 ‘림시 학부모’ 역할을 맡고 정기적으로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기도 했다.
마위강의 책상 우에는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놓여있다. 1년간의 교원지원 의의에 대해 물으면 그는 “길지 않은 시간을 들여 평생 잊지 못할 일을 했으니 아주 가치 있지요.”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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