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의 우수한 당원이며 오랜 시련을 겪은 충성스러운 공산주의 전사이며 걸출한 무산계급 혁명가, 정치가이며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이며 중국공산당 제14기, 제15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며 원 국무원 총리인 주용기 동지가 병환으로 치료를 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고 2026년 8월 12일 11시 6분 북경에서 향년 98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주용기 동지는 1928년 10월 23일에 출생했고 호남 장사 사람이다. 1948년 12월에 혁명사업에 참가했고 1949년 10월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그는 청소년 시절부터 조국을 열애하고 열심히 학습하며 진보를 추구하고 나라에 보답하려는 굳은 의지를 품었다. 1947년부터 1951년까지 청화대학 전기공학및전자응용기술학부 전기기계제조전업에서 학습했고 ‘신민주주의청년련맹’에 가입했다.

1951년부터 1952년까지 동북공업부 계획처 생산계획실 부주임 직무를 담임했다. 1952년부터 1958년까지 국가계획위원회 연료동력국, 종합국 조장, 국가계획위원회 주임판공실 부처장, 국가계획위원회 기계국 종합처 부처장을 력임했다. 1958년부터 1969년까지 국가계획위원회 간부업여학교 교원, 국민경제종합국 공정사를 력임했다. 1970년부터 1975년까지 국가계획위원회 ‘5.7’ 간부학교에 하방되여 로동했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석유공업부 배관국 전력통신공정회사 판공실 부주임, 부주임 공정사, 중국사회과학원 공업경제연구소 주임을 력임했다. 1979년부터 1983년까지 국가경제위원회 연료동력국 처장, 종합국 부국장, 기술개조국 국장,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을 력임했다. 1983년부터 1987년까지 국가경제위원회 부주임, 당조 성원, 국가경제위원회 부주임, 당조 부서기를 력임했다. 그는 국가 경제관리 부문이 기업 기술진보사업에 대한 관리 직능에 있어 ‘세가지 전환’을 완성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즉 투자지원 위주로부터 정책지원 위주로, 지령성 계획 위주로부터 지도성 계획 위주로, 행정수단 위주로부터 경제수단과 법률수단 위주로 전환시키고 사업중점을 계획, 정책, 법규 제정과 조직 조률, 검사 감독 등 면에 두어 거시적 관리를 강화하며 대외무역에서 기술유치와 무역확대를 결부시키는 원칙을 견지하고 기업의 기술개조 강도를 높여야 한다.

1987년 12월부터 1991년 4월까지 주용기 동지는 상해시 당위 부서기, 시장, 당위 서기를 력임했다. 그는 국제와 국내 경제경쟁의 이중 도전에 직면하여 상해의 근본적 출구는 단호히 공업구조를 조정하고 새로운 발전 우세를 재구축하며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고 외향형 경제 발전의 길을 걸으며 국제 경제 자원을 활용하여 더 큰 발전공간을 확보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상해 산업구조 조정과 승격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고 심층가공, 지식 기술 밀집형 주도산업과 중점업종을 발전시키며 신기술로 전통산업을 개조하고 원자재 공업 건설을 잘 틀어쥐며 산업의 조정과 배합, 부대 능력을 강화하여 상해가 전환 발전의 길에서 굳건한 발걸음을 내디디도록 추동했다. 상해 지방 국영기업의 활성화를 중시하고 기업들이 제품 경제관념에서 상품 경제관념으로, 내향형 경영사로에서 외향형 경영사로로 전환하도록 이끌며 경쟁 기제를 도입하고 도급경영 책임제를 실행함으로써 기업이 실질적으로 자체 손익을 부담하고 경제 효익을 높이도록 추동했다. 품질 관리 강화에 주력하고 품질이 곧 생명이고 품질이 곧 효익임을 강조했으며 상해의 과학기술과 인재 우세를 충분히 활용하여 신제품, 신품종을 개발하고 량질과 적정가격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금융업의 개방과 발전을 중시하고 외자 은행과 외자 보험회사의 유치를 적극 추진하며 상해 증권거래소의 설립을 추동했다. 교통을 중심으로 한 기반시설 건설을 다그쳐 추진하고 상해 허브형, 기능성, 네트워크화 된 현대 도시 기반시설 체계를 구축했다. 또한 주택제도 개혁을 대대적으로 추진하여 전국 최초로 주택공적금 제도를 시행했고 상해 로후 도시구역과 단층집 개조에 대한 전반적 구상을 제기함으로써 주택 상품화 개혁과 주택 보장 강화 사업에 중요한 경험을 제공했다. ‘장바구니 프로젝트’를 단단히 틀어쥐고 생산, 공급, 판매 ‘일체화’ 개혁을 실행했고 상해의 현대화 부식품 생산, 구매판매 시스템의 초보적인 형성을 추동했다. 도시 관리 수준을 제고하고 정부의 사무처리 능률을 높이며 투자 환경을 최적화하고 상해의 국제화 도시 형상을 수립했다. 포동 개발, 개방에 관한 당중앙의 중대 전략 결책을 관철, 시달하고 포동의 특성을 반영하면서도 실행 가능성이 높은 일련의 정책 조치를 연구, 출범하여 포동 개발, 개방이 실질적 가동 단계에 진입하도록 추동했다. 개혁개방을 적극 추동하고 민생개선에 주력하며 경제를 안정시키고 발전시킴으로써 비교적 짧은 시간에 전 시 경제, 사회 면모가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는 상해의 향후 개혁개방과 발전을 위해 견고한 기반을 다졌다.

1991년 4월, 주용기 동지는 국무원 부총리를 담임했고 후에 국무원 생산판공실 주임, 당조 서기, 국무원 경제무역판공실 주임, 당조 서기를 겸임하면서 전기기계에너지, 철도 교통, 야금 화학공업, 경공업 방직 등 사업을 분관했다. 1992년 10월 주용기 동지는 중국공산당 제14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원회의에서 중앙정치국 위원, 상무위원으로 당선되여 국무원 상무 사업을 책임졌다. 1993년 6월 중국인민은행 행장을 겸임했다. 그는 등소평 동지의 남방담화 정신을 적극적으로 선전, 관철하고 14차 당대회 정신을 관철, 시달했으며 개혁개방과 현대화 건설을 힘써 추동했다. 중앙경제사업 지도사상과 방침 정책을 견결히 관철, 집행하고 개혁, 발전, 안정의 관계를 정확하게 처리했으며 경제성장의 질과 효익을 힘써 제고하고 계획성 없는 사업 확장과 생산가치, 속도를 일방적으로 추구하는 경향을 극복했다. 일시적으로 나타난 투자 규모가 과도하게 확대되고 공업 생산 증가률이 지나치게 빨라지며 개발구, 부동산, 주식에 대한 열풍이 불어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시 조정을 강화하고 개선할 데 관한 방법과 조치를 연구, 제정했다. 경제, 법률 수단을 더 많이 활용하여 경제운행을 조정함으로써 경제의 과열을 진정시키고 통화팽창을 억제했으며 ‘연착륙’을 실현하는 데 많은 효과적인 사업을 추진했다.

‘삼각채무’ 정리를 조직 및 전개하고 근본과 근원을 함께 바로잡아 완전히 해결하는 데 립각하여 생산 제한, 재고 축소, ‘재고 감축 실적에 따라 은행 대출을 지원하는’ 등 조치를 취해 예전 채무를 정리하면 새 채무가 생기는 태세를 기본적으로 억제함으로써 기업 경영활동을 증강했다. 재정세무 질서를 힘써 정비하고 재정경제 규률을 엄숙히 했으며 세수 징수 관리를 강화하고 재정세무 개혁을 다그쳤으며 세수감면과 재정지출을 엄격히 통제하고 재정예산을 엄격히 집행했으며 증산절약과 수입증대, 지출절감 사업을 전개했다. 금융 조정통제 체계를 보완하고 대출규모 직접 조정통제의 운용에서 리률, 공개시장 및 예금준비금 간접 조정통제의 운용으로의 전환을 추동했다. 인민페의 일상거래 태환을 실현하고 시장 공급수요에 기반한 단일하고 관리를 받는 변동환률제도를 실시했으며 증권선물시장에 대한 감독관리를 강화하고 금융질서를 규범화했다. 량곡 가격과 구매 및 판매 체제 개혁을 추동하고 사회주의 시장경제 요구에 부합되고 구매 및 판매가 편리하며 조정이 령활한 량곡 구매 및 판매 체제를 구축했으며 공업, 농업 제품가격의 가격 격차를 축소하고 농민들의 량곡 재배 적극성을 보호했으며 량곡 생산과 공급을 안정시켰다.

농업생산자료 류통체계를 개혁하고 화학비료 등 농업물자 가격수준을 안정시켰으며 공급합작사의 주요 경로 역할을 충분히 발휘시키고 농촌시장 공급을 잘 수행했다. 농민의 자발적 참여를 기반으로 대규모 재배호 도급제를 실행하고 적절한 규모 경영을 발전시켰으며 사회화 농업생산 봉사체계를 크게 발전시키고 규모 재배호들에게 더 많은 지원을 주었다.

1997년 9월, 주용기 동지는 중국공산당 15기 중앙위원회 1차 전원회의에서 중앙정치국 위원, 상무위원으로 재차 당선되였다. 1998년 3월, 9기 전국인대 1차 회의에서 그는 국무원 총리로 임명되였고 후에 국무원 당조 서기를 담임했다. 아시아 금융위기의 충격과 국내 특대 홍수재해에 직면하여 그는 당중앙의 결책, 포치에 따라 거시적 조정의 방향과 강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적절한 긴축성 재정 및 통화 정책을 시행하던 방식에서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안정적인 통화정책을 시행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국내 수요 확대에 힘을 쏟으며 통화긴축 추세를 억제하고 중점분야의 개혁을 심화시켜 경제의 안정적이고 쾌속적인 성장을 유지하고 사회 대국의 안정을 수호하며 인민생활을 뚜렷하게 개선하고 우리 나라 국제적 지위를 끊임없이 향상시켰다. 산업 구조, 지역 구조, 도시와 농촌 구조를 전면적으로 조정하고 기반시설 건설을 강화하며 첨단기술산업 특히 정보산업을 적극 발전시키고 전통공업을 개조 및 승격시켰으며 현대 봉사업의 신속한 발전을 적극 지원하고 제품의 품질 관리를 강화함으로써 경제 성장의 질과 효익을 힘써 향상시켰다. ‘3농’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두드러진 위치에 올려놓고 지역 실정에 맞게 농업 구조조정을 추진했으며 큰 강, 큰 하천, 큰 호수 치리, 농촌 전력망 개조, 국가비축량식창고 건설 등에 대한 투입을 확대하고 농촌의 빈곤층 방조부축 및 개발을 강화했으며 농촌의 ‘세수개혁’과 향진 기구, 현 향 재정체제 등 개혁을 실시하고 농민의 부담 경감과 소득 증대를 보장하여 도시와 농촌의 조화로운 발전을 촉진했다. 대외개방을 확대하고 수출을 격려하는 일련의 정책조치를 취해 인민페의 평가절하를 방지하고 시장 다원화 전략과 품질로 승리를 거두는 전략을 실시했으며 밀수단속 강도를 높이고 외자를 적극 유치하며 국제 경제기술 협력과 경쟁에 참여함으로써 국내와 국제 두개 시장, 두가지 자원을 더욱 잘 활용했다. 향항특별행정구정부가 환률제도를 수호하고 련계하는 것을 확고히 지지하고 국제금융쎈터의 지위를 공고히 했으며 각계의 신심을 안정시키고 향항의 경제가 신속히 회복하도록 함으로써 준엄한 시련을 견뎌냈다. 지속 가능한 발전의 길을 견지하고 생태환경 보호 및 건설 강도를 높이며 장강류역에서 스스로 제방을 쌓아 땅을 일구거나 집을 지은 것을 허물어 홍수가 빠져나가게 하고 대중들을 이전시켜 마을을 재건하는 등 조치를 통해 대규모적으로 경지를 호수로 복원시키고 토지, 광산, 담수, 해양, 생물 등 자원에 대한 관리를 강화했으며 힘을 모아 중점 류역, 지역 등의 오염을 치리하고 환경 기반시설 건설을 강화했으며 경제 발전과 인구, 자원, 환경의 조화를 촉진했다. 시종 인민대중의 절실한 리익을 고도로 관심하고 공공봉사를 지속적으로 개진하며 인민의 건강수준을 제고하고 도시와 농촌 주민소득을 증가시켰으며 종업원 로임 체불 및 정리실업 종업원의 재취업 등 문제 해결을 위해 큰 공을 들이고 사회치안 종합치리를 강화하며 안전생산책임제를 건립했다. 정부 직능을 깊이있게 전환시키고 정부기구 개혁을 추진했으며 비교적 큰 강도의 국무원 기구개혁 방안을 실시하고 종합 경제부문을 거시조정부문으로 가일층 개편했으며 전문 경제부문을 조정 및 축소하고 시장 집법 감독관리 부문의 직능을 강화함으로써 장기간 계획경제 체제에서 형성된 정부기구 기틀을 개변시켰다. 정부 자체건설을 힘써 강화하고 법에 의한 행정수준을 끊임없이 제고하며 사업방식과 사업작풍을 전환하여 정부사업의 투명도를 높였다.

국무원 총리를 담임한 후 주용기 동지는 또 선후하여 중앙전문위원회 주임, 국가경제체제개혁위원회 주임, 국가과학기술교육지도소조 조장, 국무원 삼협공사건설위원회 주임, 국가국방동원위원회 주임, 국무원 서부지역개발지도소조 조장 등 직무를 겸임했고 경제체제 개혁, 과학기술, 교육, 서부대개발, 국방공업 등 분야에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과학기술교육흥국과 인재강국 전략을 견지했고 과학기술, 교육에 대한 투입을 증가했으며 국가 과학기술 평가체계와 장려제도를 보완하고 과학기술성과 전환과 산업화의 효과적인 기제를 초보적으로 건립했으며 인재의 양성, 유치, 사용의 제도와 조치를 최적화하고 첨단과학기술 혁신능력과 국민자질을 끊임없이 향상시켰다. 서부대개발 전략의 실시를 추동하여 특색 경제와 우세 산업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키고 동부, 중부, 서부 지역의 경제 교류와 협력을 강화했으며 선후하여 서부 전기의 동부 수송, 청해─서장 철도, 서부 가스의 동부 수송 등 일련의 중대공사 대상을 조직, 실시하여 서부지역 경제 발전과 사회 진보를 힘써 촉진했다.

주용기 동지가 국무원 부총리와 국무원 총리 직무를 담임한 기간 우리 나라는 계획경제 체제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는 관건적인 시기에 처해있었다. 강택민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의 확고한 령도하에 그는 일련의 중대 개혁을 조직 실시했고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 기본구조의 구축을 추동했다. 재정세무체제 개혁을 주도하고 공평한 세금부담과 간편화된 세금제도를 핵심으로 하는 중대한 세무제도 개혁을 전면적으로 실시했으며 중앙과 지방의 사무권한을 합리하게 획분하는 전제하에 분세제 재정체제를 실행하고 중앙세수와 지방세수 체계를 건립했으며 부가가치세를 주로 하고 영업세와 소비세를 보조로 하는 거래세제도의 실행을 추진하고 소득세를 통합하여 정부의 거시조정 통제능력을 효과적으로 향상시키고 기본공공봉사 능력을 제공했다. 금융체제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중앙은행의 직능을 가일층 규범화했으며 금융에 대한 감독관리를 강화하고 국가 전문은행이 상업은행으로의 전환을 추동했으며 정책성 은행을 설립하고 조건이 구비된 대, 중형 도시에서 도시협력은행을 설립하도록 했으며 전국적으로 통일되고 개방되며 질서 있게 경쟁하고 엄격하게 관리하는 금융시장체계의 구축을 추동했다. 국유기업 개혁을 경제체제 개혁의 중심으로 삼고 ‘재산권이 분명하고 권력과 책임이 명확하며 정부와 기업이 분리되고 과학적으로 관리하는’ 요구에 따라 현대 기업제도 건설을 다그쳤으며 전략적으로 국유경제의 배치를 조정하고 국유기업을 재편성했으며 부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는 등 조치로 기업 부담을 경감하고 기업의 현대화 관리수준을 제고했으며 국유기업 3년개혁 및 곤난탈출 목표를 기본적으로 실현하고 국유경제가 국민경제에서 주도역할을 더 잘 발휘하게 했다. 통일되고 규범적이며 보완된 사회보장체계 기틀의 확립을 추동하고 국유기업 정리실업일군들의 기본생활보장, 실업보험과 도시주민 최저생활보장 ‘3가지 보장선’ 제도를 단계적으로 구축하여 국유기업 정리실업일군들의 기본생활비가 제때에 전액 지급되고 기업 리퇴직일군들의 기본양로금이 제때에 전액 지급되는 것을 에누리없이 보장할 것을 요구했으며 온갖 방법을 다해 정리실업일군들의 재취업을 촉진하고 도시 종업원 기본양로, 기본의료보험제도, 의료위생체제 개혁을 심화하여 사회 안정을 수호하고 경제 발전을 촉진하는 데 강력한 버팀목을 제공했다. 주택제도 개혁을 착실히 추진하여 주택분배 화페화를 단계별로 실행했으며 다차원 도시주택 공급체계를 구축하고 보완하여 도시의 주택난을 겪고 있는 주민들의 주택문제를 다그쳐 해결했다. 량식류통체제 개혁을 지속적으로 심화하고 보호가격으로 농민들의 여분 량곡을 수매하며 국유량곡 구매, 판매 기업들이 매입 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고 량곡 수매자금의 페쇄운행을 실행하며 주요판매지역의 량곡수매 시장과 가격을 점차적으로 개방하도록 했다. 우리 나라가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는 간고한 담판을 주도하고 대외개방의 범위와 깊이가 확장되도록 촉진하여 우리 나라를 위해 더 광활한 발전공간을 쟁취했고 경제체제 개혁과 현대화 건설을 추진하는 데 깊은 영향을 미쳤다.

주용기 동지는 인민대중에 대해 깊은 정을 품고 있으며 늘 대중들의 질고를 마음에 새기고 정부의 사업일군들은 자신이 인민의 공복임을 명기하고 특수화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국내 고찰, 회의 간소화, 사무성 활동 참가와 관련해 ‘세가지 규정’을 제기했다. 그는 실사구시적이고 개척진취적이며 진실을 과감히 말하고 미움을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강렬한 책임담당으로 중임을 주동적으로 떠메고 어려운 난제를 과감히 해결함으로써 인민대중들을 위해 리익을 도모하고 실질적인 일을 하는 것을 전력으로 추진했다. 그는 조사연구를 중시하고 대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며 각측의 적극성을 불러일으키고 발휘시켰으며 여러차례 일선에 나가 홍수방지 및 재해구조 사업을 지휘하고 조률했으며 인민대중의 생명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고 손실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서로 얻은 수입을 빈곤층 부축과 교육 지원에 전부 기부하여 농촌 의무교육학교 학생, 극빈 학생들을 지원했다.

2003년 3월 주용기 동지는 더 이상 국무원 총리 직무를 담임하지 않았다. 지도일터에서 물러난 후 주용기 동지는 호금도 동지를 총서기로 하는 당중앙을 확고하게 옹호하고 지지했으며 18차 당대회 이래 습근평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을 확고하게 옹호하고 지지했으며 중국특색 사회주의 위대한 사업을 줄곧 관심하고 당풍렴결건설과 부패척결투쟁을 확고하게 지지했다.
주용기 동지는 중국공산당 제13기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이며 중국공산당 제14기, 제15기 중앙위원회 위원, 중앙정치국 위원이자 상무위원이다.

70여년의 혁명 생애에서 주용기 동지는 시종 당과 인민에 충성하고 공산주의 사업에 충성했다. 그는 확고한 공산주의 리상 신념과 굳센 당성을 갖고 있으며 정치를 지키고 전반적인 국면을 고려하며 시종 당과 인민의 리익을 최우선으로 삼고 당과 인민의 사업을 위해 부지런하고 꾸준히 분투해왔다. 그는 맑스─레닌주의, 모택동사상, 등소평리론, ‘세가지 대표’ 중요사상, 과학발전관을 열심히 학습했고 습근평신시대중국특색사회주의사상을 깊이있게 학습하고 관철했으며 당의 로선, 방침, 정책을 견결히 관철하고 집행했으며 사상, 정치, 행동 면에서 확고부동하게 당중앙과 고도의 일치를 유지했다. 18차 당대회 이래 그는 정치의식, 대국의식, 핵심의식, 본보기의식을 확고히 수립하고 습근평 총서기의 당중앙 핵심, 전당 핵심 지위를 견결히 수호했으며 당중앙의 집중 통일 령도를 견결히 수호했다. 그는 실사구시와 모든 것을 실제로부터 출발하는 원칙을 견지하고 맑스주의의 립장, 관점, 방법을 창조적으로 운용하여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며 실천을 지도하고 사업을 추동했다. 그는 진리와 원칙을 견지하고 아주 강한 정치적 민감성과 정치적 감별력을 갖고 있으며 중대한 시비문제에서 립장이 분명하고 당에 충성하고 당을 위해 근심을 나누며 당을 위해 직책을 다하고 인민에게 혜택을 마련해주었다. 그는 부지런히 몸과 마음을 수련하고 자신을 엄격히 단속하며 청렴결백하고 정정당당하며 가족과 주변 사업일군들에게도 엄격히 요구하고 부패 행위와 부정 기풍을 단호히 척결했으며 시종 공산주의자의 정치적 본색을 유지했다. 그는 지식과 인재를 존중하고 동지들을 배려하고 간부들을 보살폈으며 광범한 간부와 군중들의 존경과 애대를 깊이 받았다.
주용기 동지의 일생은 혁명의 일생이고 분투의 일생이며 빛나는 일생이고 전심전력으로 인민을 위해 봉사하고 공산주의 사업을 위해 헌신한 일생이였다. 그의 서거는 당과 국가의 중대한 손실이다. 우리는 비통을 힘으로 바꾸어 그의 혁명정신과 숭고한 품덕, 우량한 작풍을 학습하고 습근평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의 두리에 더욱 굳게 뭉쳐 중국특색 사회주의 위대한 기치를 높이 들고 습근평신시대중국특색사회주의사상을 전면적으로 관철하며 ‘두가지 확립’의 결정적 의의를 깊이있게 터득하고 ‘네가지 의식’을 증강하며 ‘네가지 자신감’을 확고히 하고 ‘두가지 수호’를 실행하며 신심을 확고히 하고 일심협력하여 중국식 현대화로 강국건설, 민족부흥의 위업을 전면 추진하기 위해 단결 분투해야 한다.
주용기 동지는 영생불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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