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해살이 창살을 넘어 리광평의 책상을 비춘다. 책상은 마치 축소된‘력사보관소’를 방불케 했다. 책상에는 《중국조선족 사료전집》을 비롯한 두터운 책들이 가지런히 쌓여있었고 그 옆에는 그가 편찬한 조선족 민속사진작품집도 몇권 놓여있었다.
대화를 나누느라면 리광평 로인이 이미 80세를 넘겼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 그는 허리가 곧고 원기 왕성한 모습이였으며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론리가 분명하고 사유도 민첩해 나이를 잊고 사는 듯한 기운이 넘쳤다.
리광평은 현재 룡정시문화라지오텔레비죤방송및관광국 리퇴직당지부 서기직을 맡고 있으며 올해 ‘연변주 우수 당사무사업일군’ 칭호를 수여받았다. 수십년간 그는 연변땅에서 렌즈로 시대의 변천을 기록하고 두 발로 력사의 자취를 찾아다니면서 지역의 지리문화, 민속정취, 력사자료 등을 보존했다.
리광평의 책상 옆에 놓인 궤에는 서로 다른 기종의 사진기 수십대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리로인은 한쪽 구석에서 칠이 다소 벗겨진 오래된 사진기 한대를 조심스럽게 꺼내 들고 애정 어린 손길로 부드럽게 매만졌다. “이 사진기는 저의 ‘오랜 벗’입니다. 제가 제일 처음 산 ‘해구(海鸥)’표 사진기이지요. 수십년간 저를 따라 산을 넘고 강을 건너면서 수많은 풍경을 함께 보고 수많은 력사를 기록했습니다.”
로인은 자신의 촬영경력으로 운을 뗐다. 리광평이 직접 기록한 사진집을 펼치자 귀중한 항전력사 사진들이 자세하고 정확한 문자설명과 함께 눈앞에 펼쳐졌다. 사진을 바라보면서 로인은 사진 속 영웅들의 사적을 하나씩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이 귀중한 력사자료들은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였다. 1999년 리광평은 자비로 10여만원을 들여 자전거를 타고 3.5만여킬로메터를 달려 연변 각 현(시)의 100여개 마을을 돌아다니며 600여명의 력사, 문화의 산증인을 방문하고 수만장의 사진을 찍고 수십개의 비디오테이프를 록화했다. 그 과정에서 또 200여만자의 취재필기를 작성하고 수집한 자료를 정리해 책으로 엮기도 했다.
렌즈를 통해 로당원의 ‘시대적 담당’을 보여주었다. 리광평은 줄곧 “자신의 일터를 잘 지키는 것이 곧 진지를 고수하는 것”이라고 여겨왔다. 다년간 항전기념활동 현장, 국경절 공연무대, 명절 분위기로 들끓는 거리와 도시건설로 분주한 공사현장에서는 사진기를 들고 있는 리광평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언제나 가장 먼저 일터에 도착하고 가장 늦게 떠났습니다.” 이는 리광평에 대한 동료들의 평가이다. 리광평의 발자취는 룡정 곳곳에 남아있다. 그는 불철주야 당과 정부가 지역발전을 추동하는 생동한 실천을 모두 렌즈에 담았다. 당사의 중요한 시점에서 민생변화에 이르고 도시의 탈바꿈에서 향촌진흥에 이르기까지 그는 수많은 귀중한 영상자료를 기록했다. 이 사진들은 룡정시 당건설사업에 든든한 소재를 축적해주었으며 리광평은 당지에서 공인하는 ‘시대의 기록자’로 되였다.
‘한치의 산천마다 렬사들의 선혈이 스며있고 한줌의 열토마다 렬사들의 넋이 깃들어있다.’ 리광평은 머리가 하얗게 세였지만 기력이 좋다. 당의 이야기를 더 잘 전하기 위해 그는 또 룡정시새세대관심사업위원회 ‘로간부, 로전사, 로전문가, 로교원, 로모범’ 수석 선전강연원을 담당하고 홍색유적과 귀중한 오래된 사진에 기반해 룡정시 여러 중소학교에서 당사 선전강연을 상시적으로 펼치고 있다. 리광평은 소박한 언어로 혁명선렬들의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을 서술하고 연변 초기 당조직의 분투 로정을 들려준다. 그는 “저는 이런 방식으로 청소년들이 당의 명령을 듣고 당의 은혜에 감은하며 당을 따라 나아갈 수 있게 하기를 바랍니다.”고 말했다.
리광평은 일생 동안 지칠 줄 모르는 사진기마냥 시대의 변천을 기록해왔으며 지금은 홍색문화를 전승하는 길에서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정성과 진심을 다해 홍색력사를 전하고 있다. 이는 한 로당원이 선택한 길이며 그가 한평생 고수한 변치 않는 답이기도 하다.
장애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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