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유산이 아닌, 지금도 살아 쉼쉬는 예술’

2026-09-10 15:57:38

명주실 가닥 사이로 나무빛 활대가 천천히 스쳐 지나갈 때 객석의 숨소리마저 일순간 정적 속으로 빠져들었다. 오랜 시간 가슴 한구석에 켜켜이 쌓여있던 아련한 한과 흥의 결이 동시에 실려나오는 듯한 신비로운 울림이였다. 현란한 솜씨로 듣는 이를 순식간에 압도하기보다, 가슴 깊은 곳의 거친 결을 가만히 보듬고 두드리는 깊고 묵직한 음색, 연변가무단의 해금 연주자이자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종목으로 등재된 해금예술의 주급 대표 전승인 김순화의 연주는 그렇게 우리를 사로잡는다.

“많은 이들이 해금을 두고 아련하거나 때로는 경쾌하다고 말하지만 제가 느끼는 해금은 현란하지 않으면서도 비할 데 없이 깊이가 있는 악기입니다.”

김순화에게 해금은 비할 데 없이 깊이가 있는 악기이다.

◆바이올린 선률에서 운명처럼 만난 해금

김순화의 삶에서 음악이라는 씨앗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아주 어린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꼬마시절부터 타고난 예능적 감수성과 남다른 예술적 끼를 보였던 그녀의 가능성을 한눈에 알아본 이가 있었다. 바로 당시 그녀가 다니던 유치원의 선생님이였다. 어린 김순화의 손끝과 감정 표현에서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발견한 선생님은 부모님께 그녀에게 음악을 시켜볼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했고 그렇게 김순화가 처음 손에 쥔 악기는 뜻밖에도 서양 현악기인 바이올린이였다.

바이올린 활대를 쥐고 서양 고전음악의 선률을 익히며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그녀는 자연스럽게 전문 음악가의 길을 꿈꾸게 되였고 마침내 연변대학 예술학원에 입학하며 본격적인 음악학도의 길에 들어서게 되였다.

하지만 인생의 가장 결정적인 운명은 예술학원의 문을 들어선 직후 찾아왔다. 그녀의 남다른 손놀림과 깊은 감정 선을 유심히 관찰하던 지도교수는 어느 날 그녀에게 바이올린 대신 전통 현악기인 해금을 배워볼 것을 추천했다.

“처음에는 낯설었지요. 바이올린은 줄 우에서 정교하게 음을 짚어가는 악기라면 해금은 명주실 사이에 활대를 끼워 넣고 오롯이 연주자의 손가락 농현과 힘 조절만으로 음을 만들어내는 악기였으니까요. 하지만 교수님의 권유로 해금을 처음 품에 안고 활을 문질렀을 때 그 울림이 제 가슴을 강하게 울렸습니다.”

바이올린으로 오래동안 다져온 섬세한 손놀림과 해금 특유의 아련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음색이 만나자 신비로운 시너지가 일어났다. 활대가 명주실을 문지를 때마다 터져 나오는 독특한 질감의 소리는 서양악기에서는 결코 느껴볼 수 없었던 고유의 짙은 정서와 맞닿아있었다. 김순화는 순식간에 해금이라는 악기가 지닌 치명적인 매력에 빠져들었고 지도교수의 권유로 시작된 그 우연한 만남은 그녀의 일생을 바꾼 운명적 연이 되였다.

연변대학 예술학원을 졸업한 후에도 그녀의 음악적 갈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학부과정을 마치며 해금 연주자로서의 기량을 다졌지만 전통음악의 본질과 해금이라는 악기가 지닌 력사적, 학술적 깊이를 더욱 깊이있게 탐구하고 싶다는 열망이 그녀의 가슴속에서 뜨겁게 타올랐다. 결국 그녀는 안주 대신 도전을 선택했고 더 깊은 배움과 학문적 정진을 위해 한국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해 석사과정을 밟았다.


◆민악그룹 ‘여울’의 눈물겨운 집념

외국에서의 류학생활과 석사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연변으로 돌아온 김순화의 가슴속에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뜨거운 사명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류학시절 수많은 전통음악 공연을 접하고 스스로 무대를 만들어가며 느꼈던 감동과 깨달음이 그녀의 마음을 단단하게 매질했던 것이다.

간절하고도 뜨거운 일념 하나로 2015년, 김순화는 뜻을 같이하는 젊은 가야금 및 해금 연주자 2, 3명을 모아 조촐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첫발을 내디뎠다. 민악그룹 ‘여울’의 탄생이였다. 그들의 첫 무대는 화려한 콘서트홀이나 대형 극장이 아니였다. 조그마한 동네카페의 한구석, 손님 몇명이 소소하게 차를 마시던 소박한 공간이 여울의 첫 울림을 알리는 개막 무대였다.

그러나 열정 하나만 믿고 뛰여든 현실의 벽은 차겁다 못해 혹독했다. 우리 민악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겠다는 순수한 열정으로 팀을 결성했지만 첫출발부터 그들을 불러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런 인지도도, 대중적 기반도 없던 신생 민악팀에게 선뜻 무대를 내여줄 행사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무대를 개척해야만 했다. 연주복을 챙겨 들고 직접 행사장을 찾아다니며 무대의 기회를 구걸하다싶이 했고 발로 뛰며 팀을 홍보했다.

더욱 혹독했던 것은 심각한 재정난과 련습공간의 부재였다. 그룹을 운영할 운영비는 전혀 없었고 단원들이 편하게 모여 련습할 수 있는 번듯한 련습실조차 없었다. 겨우 구해 들어간 련습공간은 사람이 도저히 오래 머물 수 없는 낡고 차거운 건물이였다. 밤마다 쥐가 찍찍 울며 벽 사이를 지나다니는 낡아빠진 공간에서 그들은 추위와 싸우며 밤새워 해금을 켜고 가야금을 튕겼다.

그 쥐가 나오던 낡은 공간마저 여의치 않아 자리를 옮겨야 했을 때, 새로 찾아간 곳은 ‘련습실’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한 장소였다. 일반 건물 입주민들과의 층간소음 문제 때문에 악기소리가 조금만 울려도 당장 내려오라는 격렬한 항의가 빗발쳤다. 전통악기의 신명 나는 타악소리와 묵직한 현의 울림은 층간소음의 주범으로 몰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연주 련습을 멈출 수는 없었다.

결국 그들이 생각해낸 눈물겨운 해결책은 바로 ‘베개’였다. 장구와 북의 울림판 우에 베개를 푹 눌러 덮어씌우고 해금과 가야금의 현에도 천을 대여 소리를 최대로 낮춘 채 겨우겨우 손가락 기법과 합주 호흡을 맞춰나갔다. 쿵쾅거리는 신명 나는 악기소리 대신 베개에 짓눌려 둔탁하게 새여 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련습해야 했던 그 서러운 시절, 하지만 김순화와 팀원들의 눈빛은 단 한번도 빛을 잃은 적이 없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실컷 하고 싶다는 집념 하나로 길거리와 소규모 카페, 작은 행사장을 직접 발로 뛰며 대중들과 눈을 맞춘 덕분에 차츰 ‘여울’의 진심 어린 선률에 마음을 여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현란한 서양음악에 익숙해있던 대중들의 가슴속에 여울이 전하는 잔잔하면서도 강렬한 전통소리의 울림이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단 2~3명의 연주자로 외롭게 시작했던 소규모 팀 ‘여울’은 우리 전통음악이 대중적 주목을 받고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함에 따라 현재 무려 11명의 풍성한 팀원을 보유한 당당한 민악그룹으로 덩치를 키웠다. 초기 겪었던 눈물겨운 시련과 고난을 견뎌낸 결과 이제는 지역의 각종 대형 축제와 문화행사, 나아가 국내 무대에서까지 ‘여울’을 서로 초대하고 싶어 손을 내미는 곳이 무척이나 많아졌다.

물론 전통음악 그룹의 특성상 여전히 넉넉한 돈벌이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김순화에게 ‘여울’이라는 팀은 단순한 음악그룹이 아니라 자신의 피와 땀 그리고 령혼이 깃든 ‘또 하나의 분신이자 삶의 일부’ 그 자체였다.


◆더 큰 무대에서 울려퍼진 해금의 소리

현재 연변가무단의 해금 연주자로 재직중인 그녀는 단순히 개인의 연주기량을 높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민족의 귀중한 유산을 지켜나가는 파수군 역할을 자처했다. 그녀는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종목으로 등재된 해금예술의 주급 대표 전승인으로 지정되여 우리 소리의 맥을 잇고 후학을 양성하는 책무를 수행해내고 있다.

김순화의 예술성은 이미 국내외 크고 작은 무대에서도 수많은 수상과 초청연주를 통해 그 가치를 립증해왔다.

연변가무단 해금 연주자로서 그녀는 단체의 굵직한 무대마다 해금 선률을 담당했다. 2015년 10월에는 연변가무단 창극 《춘향전》에 참여하여 제4회 중국소수민족희극전시공연에서 ‘우수극목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으며 2016년 9월에는 연변가무단의 대형 무용극 《아리랑꽃》의 연주자로 참여하여 제5회 전국소수민족문예전시공연에서 ‘극목금상’을 수상하는 데 힘을 보탰다.

2019년에는 국가예술기금의 후원을 받아 절강음악학원에서 열린 《춘화추실》 전통기악 작품 음악회 무대에 서서 국내 최고 악단들과 함께 연주를 펼쳤다. 2023년일에는 중국음악가협회 민족궁현악학회 설립 기념으로 개최된 명가명곡 음악회 《궁현화장》 무대에 공식 초청되였다. 내노라하는 수준의 현악 연주자들이 집결한 이 무대에서 그녀는 중국 소수민족 궁현악기 련합연주의 연주자로 참전하여 해금 특유의 울림을 통해 국내 현악 명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한편, 무형문화유산 대표 전승인인 김순화는 후학 양성을 위한 교육자로서의 길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2022년에 제13회 전국 청소년문화예술전시 평가활동 길림선거지역 행사에서 우수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한 공로를 인정받아 ‘우수지도교원상’을 수상하는 등 전통음악의 맥이 다음 세대로 단절 없이 흘러갈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지도하고 있다.

전통음악을 단번에 리해하고 즐기는 건 사실 쉽지 않다. 그러나 수백년을 거쳐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온 음악이라면 그 자체로 이미 강한 생명력과 문화를 담고 있다는 증거이다.

“앞으로 해금예술의 뿌리를 지켜가면서 다양한 협업과 변화를 통해 새로운 얼굴을 계속 만들어갈 것입니다. 전통음악이 대중음악 혹은 다른 민족의 전통음악과 만나 열어갈 무궁무진한 가능성 또한 기대해주셔도 좋습니다.”

  신연희 기자

来源:延边日报
初审:林洪吉
复审:郑恩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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