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벽촌에서 나서 자란 순이는
인물 곱고 일손도 영근
순박쟁이 청순녀지만
다양한 색갈 지녀
류행도 잘 따르고
모던미도 가득 해
동네방네 소문이 자자했다
그녀가 사는 범골은
산이 첩첩
물이 겹겹
가끔 곰이며 호랑이도 출몰하는
오지중의 오지였다
2
순이의 아버지 박령감은
성격은 거칠어도
재간 많은 감농군
농사의 달인이요
산눈도 무척 밝아
겨울엔 렵총으로 짐승 잡고
봄, 여름, 가을이면
산나물, 버섯 따위로
목돈 듬뿍 챙겼다
3
요 몇해째 곰취를 꺾어
한몫 톡톡히 본 박령감은
외동딸 순이와 함께
신새벽에 달구지 몰고
가만히 문을 나섰다
워낙 승벽심이 무섭고
일 욕심이 덕대 같은 령감인지라
누가 자기보다 한 발 앞서
그 ‘노다지판’에 덮칠가 봐
슬그머니 겁이 났다
마음이 급해 난 박영감은
비녀뿔의 궁둥이에
연해연송 회초리를 안긴다
마을에서 사오리 떨어진
신선골 막치기에
깊숙이 숨은 그 곰취밭은
박령감이 몇 해 전에
노루덫 놓으려 갔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말 그대로 돈굴이였다
사나흘이면 돈 천원을
허망 쥐고 나앉는 판이라
이런 금전판이 또 어데 있겠는가?
4
지난 해엔 곰취 판 수입으로
최고급 랭동기를 갖췄으니
올해에도 한몫 톡톡히 해야지
딸내미도 이젠 스무살
시집 갈 나이가 됐지
암, 되구 말구!
덜커덕-
수레바퀴가 껑충 들린다
“엄마!”
순이의 째지는 소리…
선돌배기를 지나
아홉구비 넘으면
신선골 막치기가 바로 지척이다
강파른 산길에 비녀뿔도
숨이 차 코구멍으로 마구
풀무질을 해댄다
5
춘광춘색이 비쳐들어
잔잔벽수며 촉촉바위를
부드러이 어루만진다
좌골우골 실개천이
합수쳐 노래 부른다
잠에서 깨여난 수선화가
봄의 전령임을 자랑하며
노오랗게 웃으니
처녀도 웃는다
봉싯봉싯 웃는다
허드레로 우짖는 산까치 소리가
계곡에 숨은 아침을 불러내는 곳에
새소리도 물소리도
금빛으로 춤을 춘다
가난을 즈려 밟고
해살 우를 걷는 녀자
그녀는 참새처럼 퐁퐁 뛰며
도무지 진정을 못한다
아마도 자연의 싱싱한 기운이
갓 피여나기 시작하는
애숭이 처녀의 마음에
미묘한 속삭임을 던져준 것이리라
6
그인 참 좋은 분이야!
젠틀한 외모에
총명하고 부지런하고…
그런데 아부지는 동의하지 않을거야
나보다 열다섯살 년상이고
아이까지 있으니…
숫처녀가 홀아비한테 시집 가면
집안이 팔린다고
그래서 반대할거야
갑자기 포박해오는
모진 불안감
순이의 마음은
깊은 우수에 물들어간다
그래두 난 갑돌이가 좋아
초년에 상처하고
갖은 고생 이겨내며
홀몸으로 살아가는 남자
그인 참 끈질긴 분이야
채마전 가꾸는 솜씨만 봐도
여간내기가 아닌게 뻔하지
일곱푼도 되나마나한 터전에 포도 심구
포도덕 밑엔 버섯을 재배하구
버섯 사이엔 지렁이 키우구
이런 걸 가르켜 신식말로
‘립체식 사슬농사’라 한다나 뭐
가치 있는 꿈을 품고
모던하게 사는 사람
그인 문화 소양도 깊은 분이지
소설도 척척 써서 발표한다지
자신의 이야기를 문자로 쏟아낸다지
성글성글한 성격에 생각도 깊으니
언녕 내 맘 속에 쏙 들어왔지
7
꾸드득-
얄미운 장꿩 한 마리가
그녀의 발치에서 풍겨오르며
생각을 후려갔다
봄내음에 취한 갑순이는
진달래 한송이 꺾어들고
달싹거리며 노래 부른다
사랑 사랑 내 사랑
그대 모습 꽃인가
꽃보다도 어여쁜
내 사랑이여…
끼쟁이 처녀는
옥색 댕기 팔랑이며
생의 환희를
푸른 창공에 날려 보낸다
그녀의 고운 목소리는
청신한 아침 대기를 타고
저 멀리 심산유곡에
다감한 메아리로 울려퍼진다
이리 봐도 내 사랑
저리 봐도 내 사랑
어화둥둥 내 사랑…
노래의 여음이 사라져가는
저어기 어디선가
화창하는 소리가 방불히 들여온다
어화둥둥 내 사랑…
삼춘가절
꽃 피는 산길
돌풍의 사춘기를 앓고 있는
순이의 마음은 풍선처럼
둥둥 부풀어 올랐다
나무잎에 가려진
희미한 꿈 사이로
별이 뜨니
산에 젖은 마음은
흥그럽기만 하다
‘정말이지 이 산속에
갑돌이와 함께 왔더면
얼마나 좋았으랴?…’
순이는 저도 몰래
캐드득-
웃음을 터뜨린다
8
쟤 눈이 왜 저리 반짝거릴가?
아마도 시집 갈 궁리를 하는게로군
쟤 에미두 날 처음 만났을 때
저렇게 눈이 반짝거렸지
헌데 사위감은 누굴가?
접때 뒤마을 오씨댁이 가만히
귀띔하는 걸 들으니
쟤가 갑돌이와 뭐 어떻다구?
거야 절대 안 될 일이지
내 눈을 펀히 뜨구
귀한 외동딸을 홀애비에게 줄가 봐!
흥! 어림 반푼도 없지
암, 없구 말구!
9
박령감의 머리 속에는
간 밤에 있었던 일이
무섭게 떠올랐다
한밤중에 갑돌이가 불쑥 뛰여들어
딸내미의 손을 잡고
바깥으로 연기처럼 빠져나간다
박령감은 그만 억이 꽉 막혀
꽤액 소리치며 쫓아나갔다
거의 따라잡게 되였는데
순이가 소리친다
“강쪽으로 뛰자요!
아버진 헤염칠 줄 몰라요!”
갑돌이는 순이와 함께
사품치는 물 속에 뛰여들었다
아이적부터 헤염을 잘 쳐
개구리라 소문난 갑돌이는
순이를 업고 헤벌쭉 웃는다
등에 업힌 순이도
해쭉거리며 웃는다
제 애비를 골려주듯이
박령감은 앞뒤를 잴 새도 없이
풍덩하고 강물에 뛰여들었다
물은 냉큼 박령감을 삼켜버렸다
꼬로록…꼬로록…
사람 살려요!…
숨이 꺽 막혀 눈을 번쩍 뜨니
일장 악몽이였다…
하여간 무슨 재수 없는
일이 생길 조짐이야
요즘엔 바짝 주의해 살펴야지…
박령감의 턱수염이
푸뜰 하고 떨린다
10
겨울을 물리친 바람이
부드러운 소리로
곰취잎을 흔든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양지쪽의 곰취밭은
바라만 봐도
행복주파수 팡팡!
웃음집이 흔들거린다
누가 말했던가?
나물맛을 알아야
인생맛을 안다고
산나물은 시골의 사랑이다
산골 사람들의
뼈속 깊이 슴배인 삶의 정취를
고스란히 품고있는 나물 바구니
봄이면 봄마다
온갖 산나물이 축복처럼 돋아나
배고픈 마음에 위안을 주고
가난한 삶에 보탬을 주거니
산나물이 자라는 소리에 귀를 강구며
시골 사람들은 우주의 숨소리
그리고
세월이 흘러가는 소리를 듣는거다
봄나물은
자연이 벌리는 생명의 잔치
그래서 봄산에 가면
여기 저기서
파아란 풀피리소리
하아얀 가야금소리가 들리는거다
시들지 않는 품이 되여
시골사람들을 안아주는 산
올해 따라 저 곰취들이 부르는 노래가
왜 이다지도 앙가슴을 흔들가?
춘풍세우에 탐스럽게 자란
무더기 곰취를 바라보며
박령감의 얼굴엔 노을꽃이 피여난다
순이의 얼굴에도
함박꽃이 활짝 피여난다
부전녀전인가?
오로라처럼 찬란한
순박한 웃음 사이로
둥근 해가 삐죽히 얼굴을 내민다
11
“이젠 그만 캐자요
나, 배고파요!”
간소한 주먹밥
성급히 우겨먹으며
박령감은 한바탕 엄포를 놓았다
절대 갑돌이와
가까이 해선 안 된다고!
그런 꼴 볼게문 이 애비
냉큼 죽어버리겠다고…
뉘 숫처녀를 넘 보는 홀애비야 말로
요망진 놈!
흑심꾸러기라고!
순이는 듣는 척 하며
한쪽 귀로 슬슬 흘려보낸다
12
부녀간의 ‘담판’이 끝나자
나물망태 둘러메고
새 곰취밭 ‘탐사’에 나섰다
골짜기에 골짜기를 건너
험한 령을 넘고 또 넘었다
들메나무, 물푸레나무, 황철나무, 고로쇠나무…
그 사이사이로
오갈피, 닥시싹, 풀고비, 잔대, 삽주
둘레싹, 엄나물, 머위대, 우정금, 고사리, 수리취…
온갖 산나물이 손을 내밀며
파릿한 눈인사를 보낸다
꽃잎에 앉은 바람 한점에도
산야의 그윽한 정취가 넘실거린다
운무로 피여오르는 하루가
순이의 풋가슴을
살살 다독여준다
숲은 갈 수록 깊어가고
산은 넘을 수록 높아간다
이젠 무서우니 그만 가자고
순이가 말려도
박령감은 고집피운다
“한 고개만 더 넘어보자
혹시 새 곰취밭을 발견할지 모르니.”
혹시나바람에 끌려
연거퍼 몇고개 넘었다
그래도 곰취밭은 나타나지 않는다
맥이 풀린 박령감은 그제야
돌아서 오던 길을 찾았다
무시무시한 계곡이
앞을 막아나선다
생소한 계곡이였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 살펴보니
오던 길이 아니였다
길을 잃은 것이다!
산자락 언저리마다
애매한 질문이 걸려있다
박령감은 가슴이 섬찍해났다
이런 심산 속에서 길을 잃으면
자칫 짐승 반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까와 덤벼칠 수록
길은 점점 더 흐리마리하다
산그림자가 침침한 표정을
흐붓이 흘리고 있다
서녘에 걸린 태양도
열탕 같은 눈물을 흘린다
무서운 황혼의 빛이
늙다리 배암처럼
느물느물 기여든다
멀리 어디선가
짐승의 울음 소리도 들려온다
피나무며 봇나무가 꽉 들어찬
산비탈을 지나니
꺼어먼 산벼랑이
입을 쩌억 벌리고 마주선다
박령감은
무서워 사시나무 떨듯 하는
딸내미의 손을 잡고
숲을 헤쳐나간다
13
한식경 좋이 걸어
답싸리가 우거진 곳에 들어섰는데
홀연 머리가 오싹해난다
바로 지척에서 와스락- 와스락-
강대나무 번져지는 소리가 났다
짐승일가? 사람일가?
미처 생각할 새도 없이
누린내가 확 풍기며
어룽어룽한 것이
시야에 벌컥 뛰여들었다
아, 범! 시라소니였다!
박령감은 제꺽
호신용 칼을 빼 들었다
순이는 기겁하여
으악- 하고 소리치며
박령감의 옷…깃을 꽉 움켜쥔다
굶주린 시라소니는
앞발로 흙을 파헤치며
으릉- 하고 호용치더니
사냥물을 바라고 덮쳐든다
순이는 온 몸을 떨며
“사람 살려요!…” 하고 웨치다 못해
기혼해 벌렁 쓰러졌다
박령감은 덮쳐드는 시라소니를
칼로 마구 찍어댔다
상처 입은 시라소니는
몇 걸음 물러섰다가
다시 무서운 소리와 함께
껑충 용을 쓰며 덮쳐든다
박령감은 미처 막아내지 못하고
뒤로 컹 하고 넘어졌다
바로 이 아슬아슬한 찰나에
“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라소니는 맥을 버리고
머리를 옆으로 돌리며
쿵- 쓰러졌다
눈 앞이 몽롱해진다
그저 꿈 같기만 하다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
그 놈의 머리에 대고
“땅!-“ 하고 또 한방
“박아바이!”
“순이!…”
“아니, 이게 갑돌이가 아닌가?!…”
시라소니의 발톱에 긁혀
온통 피투성이 된
박령감은 정신만은 올똘했다
순이도 차차 정신을 차렸다
영문을 알게 된 그녀는
와아-하고 울음보를 터뜨리며
갑돌이의 가슴팍에 텁석 안겼다…
14
워낙 갑돌이는 순이한테서
요즘 곰취 캐러
심산으로 다닌다는 얘길 듣고
어쩐지 시름이 놓이지 않아
푸른 새벽에 화승총을 메고
가만히 뒤를 밟았던 것이다
순이가 “사람 살려요!”를 웨칠 때
그는 자작나무 밑에 앉아
한창 볼 일을 보고 있었는데
순이의 째지는 소리를 듣고
정신없이 달려와 한방 놓았던 것이다
“박아바이, 어디 다치지 않았슴둥?”
갑돌이가 묻는 말에 박령감은
얼빠진 사람처럼 중얼거린다
“자넨 정말… 어험…
자넨 정말…좋은 사람일세!…”
어스름이 시나브로 짙어간다
멀리 어디선가 짝을 찾는 암노루의
울음소리가 가담가담 들려온다
- 많이 본 기사
- 종합
- 스포츠
- 경제
- 사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