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끝마다 적어둔 글자 사이로
못다한 소원들이
무거운 어깨를 짓누르며
나를 고발하듯 서있다
저무는 하늘 아래
희로애락으로 채워진 시간들
이 모든 기록은 나를 위한
리정표였던가
어느새 내 두발이 지천명
고개에 올라서고 보니
어깨를 만지는 노을이
서럽구나
푸른 잎새 단풍이 드는 것은
리별이 아니라
초록이 아낌없이 내여주는
황혼의 축복이여라
그 언젠가 잊혀질 내 이름
내가 적은 비망록은
눈물의 장부가 아닌
반쪽 하늘도 우뚝 받들고 일어설
이 세상 모든 녀인들의
뼈를 묻은 일기
아-
그 이름도 성스럽고 위대한
어머니-
어머니-
그리고 나
달의 뒤면
밤하늘에 떠있는 달은
한쪽은 은빛으로 감싸고
한쪽은 어둠 속에 홀로 침잠한다
우리는 언제나 환한 면만 좇아
흐르는 달빛에 감성을 실어 노래하고
온갖 수식어를 한쪽 얼굴에만 채운다
하지만 달은 영원히 돌릴 수 없는
등을 지녔다
인간의 령혼도 달을 닮았다
세상 앞에선 매끈하고 밝은 모습만 보이고
가슴 뒤면엔 지나간 후회
약한 모습 아무에게도 말 못할
비밀을 감추고 산다
한밤 달을 응시하며 깨달은 진실 하나
모든 삶엔 드러낼 수 없는 어두운 면이 공존하고
그 감추어진 침묵 속엔
진짜 자신의 무게가 담겨있다
우리는 살면서
밝은 겉면보다 가려진 뒤면에서
비로소 진실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다시 쓰는 여름
나는 오늘 뜨거운 태양을 펜촉으로 삼아
새로운 숨결로 이 여름을 채운다
낡은 기억은 연필로 지우고
오늘의 열정만 한줄씩 적어간다
지난날의 아픔은 지울 수 없지만
무뎌진 마음 스스로 추스리며
다음 여름을 맞기 위한 여백으로
조용히 자기를 다듬는다
그 여백으로 다시 새기는 이름
잊혀진 꿈은 해살 아래 깨여나고
뜨거움 속에 샘솟는 서늘한 자기성찰
더디지만 흔들리지 않은 한걸음
이 여름이 끝나도 남을 빛으로
나는 그 빛으로 다시 걷는다
그 빛은 래일을 비추고
나는 그 빛이 되여간다
여름나무
무거운 해살 온몸으로 받아안고
가지를 넓게 펴 세상에
그늘을 펼친다
비바람 맞고 굵어진 뿌리
땅속 깊이 희로애락 품은 채
작은 새들 집 지켜주는 나무
계절의 무게를 홀로 짊어지고
찬란한 록빛으로 세월을 채우니
말없이 지친 생명들을 포용하는 마음
묵묵한 선의가 온 세상에 번지네
우리도 저 나무처럼 깊은 뿌리를 품고
누군가의 쉼터로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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