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을 하고 나서 나는 시내에서 십오리쯤 떨어진 농가에서 지내고 있다. 집 둘레에 작은 터밭을 일구고 계절 따라 달라지는 흙빛과 풀빛을 살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한가한 오후나 이른아침이면 마을어구에 있는 늪으로 낚시를 하러 간다. 집을 나서 늪까지 걷는 길은 그리 멀지 않지만 내게는 그것만으로도 하루의 답답함을 씻어내기에 충분하다. 물가에 앉아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노라면 세상의 온갖 소란이 조금씩 멀어지고 마음속에 엉켜있던 생각들도 물결 따라 천천히 풀리는 듯하다. 물고기를 낚는 재미도 없지 않지만 어쩌면 내가 진정으로 기다리는 것은 물고기보다 고요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날도 해가 막 동녘에서 고개를 내밀 무렵 집을 나섰다. 밤새 내려앉았던 안개가 늪 우에 엷게 깔려있었다. 그때 하늘 한쪽에서 갈매기 한마리가 날아들었다. 녀석은 서두를 것도 없다는 듯 느릿하게 날개를 저으며 늪 주위를 맴돌았다.
잠시 후 옆자리에 낯선 로인이 다가와 자리를 잡았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보니 시내에서 이 늪에 물고기가 많다는 소문을 듣고 오토바이를 타고 먼길을 달려왔단다.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물고기가 잘 잡히는 곳에 관한 소문이 빠르게 퍼지기 마련이다. 누가 어디에서 월척을 낚았다더라, 어느 물가에 가면 빈손으로 돌아오는 법이 없다더라 하는 이야기는 낚시군들의 발길을 움직이는 묘한 힘을 지닌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찌가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날 따라 물고기는 좀처럼 입질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찌는 처음 자리에서 미동조차 없었다.
그때였다. 하늘을 맴돌던 갈매기가 갑자기 날개를 접다싶이 하더니 수면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물살을 가르며 물속으로 날쌔게 파고든 녀석은 잠깐 사이 다시 날개를 펼쳐 하늘로 솟아올랐다. 물 우에는 작은 파문만이 동그랗게 번져나갔다.
나는 그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옆에 앉은 로인에게 물었다.
“저 갈매기가 물고기를 잡아먹는 겁니까?”
로인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갈매기가 물고기 잡는 데는 귀신이지요. 저렇게 물속에 뛰여들어 물고기를 잡아먹는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물고기를 먹고 나면 물이 고인 곳에 똥을 누는데 그 속에 물고기 알이 들어있는 경우도 있다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 알이 옮겨져 물고기가 생기는 게 아니겠습니까?”
로인의 말투에는 제법 확신이 실려있었다. 나는 다시 갈매기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늪 우를 천천히 선회하고 있었다.
물론 로인의 이야기가 과학적으로 확인된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기억 속에 오래 묻혀있던 한 장면이 불현듯 떠올랐다.
20여년 전의 일이다.
당시 시내 중심가에는 아빠트를 짓기 위해 파놓은 커다란 웅덩이가 하나 있었다. 공사를 시작하려고 땅을 깊이 파헤쳐놓았지만 무슨 사정인지 공사는 한동안 진척되지 않았다. 그렇게 생겨난 웅덩이에는 비물이 고여있었다. 물이 흐르는 곳도 아니였고 물고기가 살아가기에 특별히 좋은 환경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낚시군 몇 사람이 그곳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웅덩이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고 낚시대를 드리웠다. 처음에는 지나가던 사람들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저런 곳에 무슨 물고기가 있겠느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낚시군 한 사람이 낚시줄을 걷어 올리는 순간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낚시바늘 끝에 붕어 한마리가 매달려 올라온 것이다.
“고기가 절로 생긴 거야.”
“아니야. 누가 갖다 놓았겠지.”
흐르는 물도 없는 웅덩이에 물고기가 어떻게 나타났을가? 누군가 몰래 풀어놓았을가? 아니면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다른 까닭이 있었던 것일가?
그때는 그저 신기한 일로만 여겼다. 시간이 흐르면서 웅덩이의 기억도 차츰 희미해졌고 그 속에서 발견된 붕어 한마리 역시 오래된 일화로만 남았다. 그런데 이날 아침, 늪가에서 만난 로인의 이야기는 그 기억을 다시 수면 우로 떠올려놓았다.
갈매기가 물고기를 잡아먹고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다가 물이 고인 땅에 배설물을 남긴다. 그 과정에 물고기의 알이 다른 곳으로 옮겨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자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때로 사람의 상상을 넘어선다. 새가 하늘을 날고 물이 땅에 고이며 바람이 씨앗을 옮기고 비가 메마른 땅을 적시는 일은 얼핏 서로 무관해보인다. 그러나 자연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수많은 생명과 환경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물새의 이동 역시 그러한 자연의 련결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다만 갈매기가 먹은 물고기의 알이 배설물을 통해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그 알이 무사히 부화해 물고기로 자라기까지는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모든 알이 살아남는 것도 아니며 물고기가 발견된 웅덩이에 반드시 그런 경로가 있었으리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결국 그 웅덩이에 붕어가 나타난 리유를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로인의 이야기가 정답인지도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어쩌면 중요한 것은 그날의 수수께끼를 반드시 풀어내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하나의 현상을 두고 여러 가능성을 떠올려보는 일, 익숙한 풍경 속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련결을 발견하는 일 그리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면서 자연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는 일 또한 의미가 있지 않을가.
그날 아침 로인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것은 확정된 답이라기보다 자연을 바라보는 한가지 시선이였다.
나는 낚시대를 거두며 문득 웃음이 났다. 물고기를 잡으러 나왔다가 정작 물고기는 한마리도 잡지 못했으니 낚시만 놓고 보면 허탕을 친 셈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쉬움은 크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갈매기 한마리가 늪 우를 천천히 맴돌고 있었다. 녀석은 어디에서 날아왔으며 또 어디로 향하는 것일가.
어쩌면 내가 그날 낚아 올린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오래도록 잊고 지냈던 의문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그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남아있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막연한 궁금증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자연의 세계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길이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련결이 있으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곳곳에 숨어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 자리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오래된 웅덩이의 수수께끼에 답을 얻지 못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어떤 의문은 답을 얻는 순간 끝나지만 어떤 의문은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아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그날 아침 내가 만난 갈매기와 로인의 이야기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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