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성 양주시의 무형문화유산보물관 전시장에는 조판인쇄에 사용된 목판들이 고요히 진렬돼있다. 하지만 전시장을 찾은 젊은 관람객들이 낡은 목판과 몇줄의 설명만으로 조판인쇄가 고서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문명의 맥락을 단번에 리해하기란 쉽지 않다.
지난 9일, 양주무형문화유산보물관과 천오디지털과학기술이 공동 제작한 AI 단편영상 <무형문화유산─조판인쇄>가 공개되였다. 원고쓰기부터 판각, 먹칠, 종이 얹기, 문지르기까지 조판인쇄의 각 과정이 약 3분 분량의 영상 속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동안 무형문화유산을 알리는 방식은 다큐멘터리와 전시, 전문가 해설 등이 주를 이뤘다. 이러한 방식은 관람객에게 어느 정도의 사전 지식을 요구한다. 양주무형문화유산보물관의 고효자 부총경리는 무형문화유산이 더욱 잘 전승되려면 현대인의 생활과 눈높이에 다가가야 하며 특히 젊은 세대가 흥미롭고 유익하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AI 단편 드라마에 주목했다. 디지털 휴먼 천여의 시선을 따라 관람객을 옛 서점으로 안내하고 조판인쇄의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리해하도록 하였다.
천여는 실제 력사 인물이 아니라 중국풍의 초실사 디지털 휴먼이다. 돈황벽화에 등장하는 비천상을 모티브로 탄생했으며 온라인 전체 팔로워 수가 500만명을 넘어섰다. 앞서 <천벽심종> 시리즈 단편영상에서 비파 연주와 건무, 바둑 등을 선보이며 젊은층 사이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쌓았다.
이번 영상에서 이야기의 주인공은 무형문화유산 기술 그 자체이다. 천여는 관람객을 이끄는 안내자로 등장해 옛 서점으로 들어가 장인이 칼을 움직여 목판을 새기는 모습과 먹이 종이에 스며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복잡하고 세밀한 조판인쇄의 전 과정이 직관적이고 생동감 있는 영상으로 펼쳐진다.
<무형문화유산─조판인쇄>는 기획부터 최종 영상제작까지 전 과정을 AI로 구현했다. 영상 초고해상도 기술을 적용해 목판에 새겨진 칼자국까지 선명하게 살렸다. AI 장면 생성과 력사적 장면 복원기술을 활용해 고서에 기록된 옛 서점의 구조와 도구의 형태를 구체적인 시각 이미지로 재현했다. 여기에 3D 유도 신경망 렌더링과 지능형 프레임 보간기술을 더해 천여의 모습과 동작이 주변 장면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했다.
제작과정에서 양주무형문화유산보물관은 다수의 소장유물과 문헌자료를 공개했다. 고효자 부총경리는 대본을 한 글자씩 꼼꼼히 검토하고 영상에 등장하는 도구와 목판의 형태까지 일일이 확인했다. 옛 서점의 공간은 어떻게 배치했는지, 조각칼은 어느 각도로 목판에 들어가야 하는지, 인쇄할 때 손목에는 어떤 힘이 실리는지 등 세부적인 부분까지 세심하게 점검했다.
“이런 세부 사항을 AI가 처음부터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사람이 검증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그는 짧은 영상이라 해도 공예의 원리와 력사적 사실 만큼은 정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람객이 영상을 본 뒤 조판인쇄를 더욱 명확하게 리해해야지 오히려 혼란스러워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천오디지털과학기술 관계자도 제작과정에서 지켜온 원칙을 거듭 강조했다.
“AI가 가장 잘하는 것은 생성이지만 우리가 가장 절제하는 부분 역시 생성입니다.”
AI를 디지털 표현과 력사적 장면의 복원에 활용하되 사실에 대한 판단을 대신하지 않도록 했다. 영상 속 세부내용은 모두 실제사료와 전문지식을 토대로 구성했으며 주요 장면은 무형문화유산 전승자와 보물관측의 확인을 거쳤다.
이처럼 엄격한 검증은 오늘날 AI 콘텐츠 제작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시장에 류통되는 일부 AI 영상은 부실한 각색과 력사적 오류로 비판을 받고 있다. 대규모 언어모델로 무형문화유산 해설을 자동으로 생성해 영상은 화려하지만 설명에는 오류가 가득한 사례가 있는가 하면 시각적 효과를 앞세우느라 전통복식의 형태나 기물의 비률을 임의로 바꾸는 디지털 휴먼 영상도 있다. 기술을 활용하는 문턱은 낮아졌지만 그만큼 콘텐츠의 질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가 더욱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무형문화유산─조판인쇄>는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관람객들이 오래동안 품어온 의문에도 답을 제시한다. 활자는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는 데도 조판인쇄가 오랜 기간 널리 활용된 리유는 무엇일가.
이러한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관람객은 옛사람들의 기술적 선택에 축적된 생산 경험과 관리의 지혜까지 리해하게 된다.
고효자 부총경리는 “디지털 휴먼이 관람객의 관심을 끄는 데 그치지 않고 평소에는 쉽게 떠올리지 못했던 질문까지 대신 던져주기를 바랍니다. 호기심이 지식으로 이어지는 길잡이가 됐으면 합니다.”고 말했다.
최근 몇년 사이 디지털 휴먼이 문화분야에 등장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이번 협업을 통해 보물관측은 다른 기관에서도 참고할 만한 경험을 얻었다. 박물관과 문화유산 전승자, 기술팀이 함께 콘텐츠 제작에 참여할수록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보물관은 실물 유물과 문헌을 제공하고 전승자는 공예기술을 설명하며 세부사항을 검증한다. 기술팀은 이렇게 축적된 지식과 정보를 이야기와 영상으로 구현한다.
이를 위해 양주무형문화유산보물관은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도 추진하고 있다. 게임 ‘여원’과 ‘강남백경도’에 조판인쇄를 접목해 문화유산과 게임의 경계를 넘나드는 협업을 진행했다. 영화 《1942》와 협력해 영화 마지막부분 자막을 조판인쇄 기법으로 제작함으로써 전통기술을 대형 스크린으로 옮기기도 했다.
양주무형문화유산보물관은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을 통해 매번 새로운 접점을 찾고 있다. 오래된 전통기술과 오늘날의 젊은 세대를 련결하는 길이다.
디지털 기술과 창의적인 콘텐츠의 결합을 통해 전통을 보존하는 데로부터 한걸음 더 나아가, 사람들이 직접 흥미를 느끼고 경험하며 그 가치를 리해하게 함으로써 무형문화유산의 전승과 확산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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