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연변축구의 재기, 그것이 그립다 (1)
여기 독특한 축구문화가 살아 숨쉰다

2023-03-14 08:55:54

글을 실으며

    연변의 뜨거운 관광열기를 모두가 체감하는 가운데 이 곳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과 연변홍보대사 역할의 주축인 이 고장 사람들에게 ‘축구의 고향’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환기시키는 작업도 보람찬 일이 될 것 같다. 올 시즌 갑급리그 출전을 시작으로 새롭게 비상의 나래를 펼쳐가는 연변축구를 화제로 ‘연변축구의 재기, 그것이 그립다’라는 컽을 달고 매주 화요일 <스포츠> 지면에 나가는 이 기획 시리즈가 축구팬들에게 선물이 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편집자


‘축구의 고향’ 연변은 순박하고 열정이 넘치는 연변인민 특유의 독특한 축구문화가 살아숨쉬는 고장이다. 이네들에게 있어서 축구는 생활 그 자체요, 활력소이며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이 동네의 축구열기는 침체기를 겪기도 했지만 항상 끊기질 않았으며 그러한 열기는 이름만 들어도 흐뭇해지는 수많은 스타들을 길러내기도 했다.


‘축구의 고향’ 연변만의 축구열기를 보여주는 귀중한 사진이다. 사진은 1980년대 연길공원에 위치해 있던 연길시축구장에서 첫 경기를 펼치고 있는 길림성팀의 경기 한장면이다. (자료사진)


생활에 뿌리 박고 전통 체육종목으로까지 발전한 축구운동은 이 땅에서 어언간 한세기를 넘긴 긴 력사를 남겼다. 새 중국 창건과 더불어 연변의 도시와 농촌, 학교들에서는 크고작은 규모의 축구대회가 경상적으로 열렸다.

탄탄한 축구토대를 갖고 있던 이 땅에 1952년 정식으로 연변축구협회가 설립되였다. 1955년부터 우리 나라는 각 성에 축구대표팀을 두게 되였는데 이 해 길림성에서는 축구토대가 훌륭한 연변팀을 위주로 길림성팀을 무었다. 1956년, 상해에서 경기가 끝난 뒤 국가체육운동위원회 주임인 하룡 원수가 길림성팀 주력멤버 리광수 선생을 접견했다. 하룡 원수는 리광수 선생을 “튼튼하고 용맹완강하며 훌륭한 돌파능력과 공격능력을 가진 ‘중형 땅크’”라고 높이 치하했다. 이는 길림성팀 즉 연변축구사업에 대한 원수의 큰 긍정이였다. 1964년 전국축구을급팀련맹전에서 2등을 하고 다시 갑급팀으로 올라선 길림성팀은 1965년 전국축구갑급팀련맹전에서 1등의 보좌에 올랐다. 이 우승이 바로 우리가 지금까지도 자랑스레 입에 올리는 연변축구의 첫 전국우승이다.


1965년, 전국축구갑급련맹전에서 우승을 한 길림성팀은 풍격상까지 받아안으며 연변축구의 위상을 만방에 과시했다. (자료사진)


지난 세기 50, 60년대 연변의 축구수준은 북경, 상해와 같은 대도시에 못지 않았으며 전국 27개 축구팀에 270여명의 선수를, 성급 축구팀에 370여명의 선수를 수송했는바 이 선수들은 우리 나라 축구운동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하여 국내 축구계에서는 연변을 ‘축구의 고향’이라고 불렀으며 길림성팀을 <동북호랑이>라고 일컬었다. 70년대에도 길림성팀은 축구초청경기 등에 참가하며 그 기량을 이어갔으며 80, 90년대에는 고종훈 등 명장들이 주축이 된 연변팀이 화제에 자주 올랐다. 1993년 전국 제7회 운동회에서 리호은 감독이 팀을 이끌고  ‘전면공격, 전면방어’의 전술을 구사하여 침침하던 중국축구무대에 생기를 주입시켰다. 그때 전국의 수많은 축구팬들이 리호은 감독이 이끄는 길림성팀으로부터 중국축구의 새 희망을 보았다고 했다. 이후 연변의 중소학교들에서도 축구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며 90년대 연변축구의 발전을 위하여 토대를 닦아놓았다. 썩 긴 세월 속에서 이 땅의 인민들은 축구에 큰 관심을 돌려왔으며 그 승패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해왔다.


1953년 3월, 전국 11개 도시 청년축구팀경기에 참가한 연변청년팀이 2등을 쟁취, 박만복 대장이 상해시 진의 시장으로부터 2등컵을 수여받고 있다. (자료사진)


갑A 시절, 슈퍼리그 시절, 갑급리그 시절 연변팀 경기시간대엔 자치주 수부도시 연길 거리가 한산했으며 홈경기가 있을 때면 온 도시의 관심과 화제가 축구에 집중되고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도가 컸다. 축구가 가히 최고 스포츠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는 곳이 연변이라 자랑스레 말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축구가 없는 연변을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한다. 연변팀 경기 때마다 우리의 축구팬들이 ‘붉은 악마’ 유니폼을 입고 함께 아리랑을 열창하던 그 장면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여보, 좀 빨랑빨랑 움직이라구, 경기시간 늦어지겠수…” 변강의 오지인 연변에 축구열기가 부쩍 달아오르던 2015, 2016 시즌 주변의 이웃집 할머니, 할아버지들 사이에서 오고가던 말들이다. 이 시기 연변의 꼬치집, 맥주집을 찾는 고객들의 주요 화제가 ‘연변축구’였으며 누구나가 ‘기자’요, 누구나가 ‘평론가’였다.

현재 우리 고장에는 아리랑축구공원, 연길공원 축구광장 등 정부가 작심하고 손을 댄 프로젝트들이 빼여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중국 축구무대선 박성, 지충국, 김경도, 고준익 등 쟁쟁한 명장들이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으며 연변땅에서는 소학교, 초중, 고중 경기가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 또한 150여개의 업여축구팀들이 주말마다 크고작은 경기장에서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경기를 하는 모습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진정 연변에서 축구는 이미 문화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올 4월 하순 갑급리그 개시를 앞두고 있는 이 고장의 축구열기도 이제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올 시즌 이 땅에서 어떤 진풍경이 펼쳐질지 필자의 가슴은 벌써부터 뛰기 시작한다.  


리영수 리병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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