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국시’□ 윤 슬

2023-06-09 09:44:05

명절이 금방 지나가서 가족들은 련며칠 여러가지 기름진 음식에 속이 더부룩했던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옥시국시’를 먹자고 한다. 우리 집 설명절 음식준비 메뉴에는 빠지지 않는 음식이 바로 ‘옥시국시’이다.

오, 언제부터 우리가 ‘옥시국시’를 좋아했던가?

‘옥시국시’를 먹을 때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우리 아버지이다. 아버지는 국수를 유난히도 좋아하셨다. 어린시절 아버지와 함께 도문 시가지에 계시는 고모집에 갈 때면 아버지는 뻐스에서 내리기 바쁘게 제일 먼저 도문 랭면집에 들렸었다.

무더운 한여름이든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추운 겨울이든 아버지는 번마다 까만 메밀가루를 반죽해서 누른 랭면 한 그릇을 주문했다. 랭면육수는 공짜여서 아버지는 번마다 홀에서 분주히 돌아치는 아줌마한테 빈그릇에 랭면육수를 한 그릇 부탁하고는 거기에 랭면 면발을 반쯤 덜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러고 나서는 그릇에 남은 랭면을 후룩후룩 서너번 저가락질에 드신 후 육수물까지 굽을 내시였다. 빈 랭면사발을 내려 놓을 때면 아버지는 그동안 몸 속의 갈증을 다 풀었다면서 “어후, 시원하다!”라는 말씀을 꼭 곁들이군 하셨다. 랭면은 아마 우리 아버지에게 세상 별미의 음식이였던 것 같다. 랭면을 유난히도 좋아했던 아버지는 ‘옥시국시’도 랭면 못지 않게 즐겨 드셨다.

시골에서 랭면은 자주 먹을 수 없지만 대신 ‘옥시국시’는 가끔씩 먹을 수 있었다. 그때 내가 사는 곳에는 합작사 가족 아줌마들이 꾸리는 옥수수국수 가공부가 있었다. 그 때는 옥수수국수를 돈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옥수수쌀을 가져가면 가공비를 내고 바꾸어 왔다.

가공부는 매일 국수 바꾸러 온 사람들도 장사진을 이루었다. 아마 주위에 작은 촌 마을 사람들도 와서 바꾸었던 것 같다. 옥수수국수 바꾸는 날에는 아침 일찍부터 가공부 앞에 긴 줄이 이어져있었다. 순서 대로 번호패를 받고 오랜 시간을 기다려 자기 순번이 되면서 자기가 갖고 온 옥수수쌀로 옥수수국수를 바꿀 수 있었다.

우리 집에서 옥수수국수를 바꾸는 일은 번마다 나의 몫이였다.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면 나는 엄마가 준 옥수수쌀을 머리에 이고 옥수수국수 바꾸러 갔다. 매번 나는 아무런 투정도 없이 고분고분 나섰다. 물론 나도 ‘옥시국시’를 좋아하는 리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속으로 더 기대되는 것은 옥수수국수떡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옥수수국수를 바꿀 때면 엄마는 번마다 국수 바꿀 옥수수쌀 다섯근과 내가 즐겨먹는 옥수수국수떡을 바꿀 수 있는 옥수수쌀을 한되박 덤으로 주었다.

국수기계에서 갓 내려온 뜨거운 국수를 반근쯤 되게 가위로 싹뚝 잘라서 옥수수국수떡과 함께 주면 나는 그 옥수수국수떡이 식을 세라 보자기에 꽁꽁 싸안고 집으로 줄달음 쳤다. 구수한 옥수수맛에 쫄깃한 맛을 내는 따끈따끈한 옥수수국수떡을 먹을 때면 누가 빼앗기라도 할 듯 허겁지겁 먹군 하였다.

‘옥시국시’는 계절에 따라 때로는 랭면으로 때로는 온면으로 밥상에 오른다. 무더운 여름철이면 터밭에 오이가 주렁주렁 잘도 열려서 채칼로 썰어만든 오이김치를 고명으로 올려 놓는다. 오래동안 펌프를 자아서 받은 차가운 랭수에 사카린과 식초, 간장을 넣어서 육수물을 만든다.

뼈를 에이듯 추운 겨울이 되면 ‘옥시국시’는 집집의 별미로 밥상에 오른다. 한겨울 날씨에 쉽게 소화되는 ‘옥시국시’는 주로 저녁 음식으로 먹는다. 엄마가 손수 담근 움 김치를 잘게 썰어서 기름을 약간 두르고 달달 볶은 김치볶음을 얹고, 푹 끓인 구수한 감자국에 말아먹는 그 맛은 천하 별미였다.

아빠의 입맛을 닮아서인지 여름철이든 겨울철이든 우리 집 식구들은 너나 없이 ‘옥시국시’를 즐겨먹었다. 그때 우리 집 일곱 식구가 한끼에 먹는 옥수수국수 량은 다섯근이였다. 지금은 다섯근 분량의 옥수수국수를 열다섯사람이 먹어도 충족한 량이겠지만 그때 우리의 허기진 배는 아무리 먹어도 모자랐다. 남자 식구 셋하고 녀자 식구 넷이서 따로 밥상을 차리고 ‘옥시국시’를 먹군 했는데 녀자 식구들은 하얀 바탕에 사발 웃면에 파란줄을 두줄로 그은 질그릇에 한 사발씩 먹으면 되였지만 남자식구 셋은 큰 대접 같은 질그릇에 곱배기로 드셔야 성에 차했다.

‘옥시국시’는 별스레 먹은지 얼마 안 되면 인차 배고픔을 느끼게 된다. 우리 아버지는 ‘옥시국시’를 하는 날이면 꼭 야식을 드시는 습관이 있었다. 겨울철 ‘옥시국시’를 야식으로 드실 때면 아버지는 김치움에 들어가서 직접 김치국물을 떠다가 옥시국시 사발에 부어서 드셨다. 아버지는 야식으로 드시는 ‘옥시국시’가 제맛이라면서 식구들 이 단잠에 빠진 그 시간에 그렇게 달게 드시군 하셨다.

2010년 내가 처음으로 한국행을 하면서 한국의 딸집에 계시는 언니에게 드시고 싶은 고향 음식이 있으면 내가 갖고 가겠다고 하였더니 언니는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옥수수국수를 부탁하였다.

가격으로 치면 아주 싼 옥수수국수여서 비행기에 싣고 가기에는 수지가 맞지 않는 음식이라고 생각되여 다른 비싼 것을 말씀하시라고 하니 언니와 조카애는 이구동성으로 ‘옥시국시’가 제일 먹고 싶다는 것 이였다. 내가 조카집에 도착하여 짐 풀기 바쁘게 그 날 저녁 식단은 ‘옥시국시’였다.

김치볶음은 물론 계란말이에 청양고추도 가늘게 썰어서 볶아서 얹기도 하고 참깨에 소고기 편육까지 얹어서 제법 그럴싸한 온면이 만들어졌다. 언니와 조카는 몇년 만에 먹어보는 ‘옥시국시’라면서 두사발씩 게눈 감추듯 먹었다.

그후 몇년이 지나자 한국에 중국 슈퍼가 많이 들어서면서 옥수수국수를 쉽게 살 수가 있었다. 나는 가끔씩 한국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군 했는데 어느 한번은 중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함께 홀에서 일하던 언니들에게 고향 음식을 한번 대접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중국 슈퍼에 가서 옥수수국수를 사와서  집에서 먹던 조리법으로 ‘옥시국시’를 해서 올렸다. 그 때 가게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들중 세명은 한국 언니고 두명은 연변의 언니들이였다.

한국인들은 저가락을 휘휘 휘젓기만 할 뿐 별로 입맛이 당기지 않는지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것 이였다. 아마도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연변에서 간 언니들은 오랜만에 먹는 고향 음식이라면서 너무 맛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옥시국시’는 우리 연변의 음식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갈마들었다.

지난 음력설을 계기로 려행차 연변에 찾아온 관광객들은 양꼬치점을 많이 찾아갔다. 양꼬치를 다 드신 후 후식으로 의례 온면을 청하는데 그 온면이 바로 ‘옥시국시’이다. 나는 옆자리에 앉은, 남방에서 온 려행객에게 남방에는 ‘옥시국시’가 없느냐고 물었다. 손님들은 자기들 고향에도 가끔 온면을 하는 가게가 있기는 하지만 연변의 ‘옥시국시’처럼 맛이 있는 것은 아니라면서 연변의 ‘옥시국시’가 최고라고 엄지를 척 내보이는 것이였다.

너무나 수수한 ‘옥시국시’, 어쩌면 요즘 세월에 초라한 음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옥시국시’는 우리와 격동의 세월을 함께 해온 모두의 음식이 아닌가! ‘옥시국시’ 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고향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그것은 우리의 독특한 손맛의 향기가 아닐?

오, 우리의 음식- ‘옥시국시’! 그 맛 영원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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