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 □ 백진숙

2023-11-02 16:09:51

아버지가 자신의 안위도 잊고 뛰여들었던 우물은 이미 사라졌지만 아버지는 우리 자식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우물 하나를 남겨주고 떠나가셨다.


얼마전 텔레비죤에서 결혼을 며칠 앞둔 젊은 남녀가 물에 빠진 생면부지의 아이를 구하다가 둘이 다 목숨을 잃은 사적을 눈물겹게 보았다. 그들의 감동적인 사적을 보노라니 문득 몇십년 전 죽음도 무릅쓰고 서슴없이 우물에 뛰여들어 한 아이를 구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라 내 가슴이 먹먹해왔다.

“사람 살려요!”

헐떡헐떡 달려온 일여덟살되는 한 아이가 교실문을 벌컥 열고 소리쳤을 때 학교에서는 한창 교직원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백선생님은 오지 마십시오. 우리 젊은이들이 가면 됩니다.”

교장과 체육선생들, 그리고 젊은 교원들 저마다 모두가 말렸다. 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순이 다 된 아버지가 아픈 다리를 끌며 숨이 턱에 닿도록 그들의 뒤를 따라 달려 갔을 때 우물에 빠진 아이는 이미 바닥에 가라앉았고 시꺼멓게 흐린 수면만이 두눈을 부릅뜬채 공포에 질린 사람들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우물가에는 교원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미 와있었는데 죽음의 신이 부르는 이 우물앞에서 발만 동동 구를 뿐 누구 하나 선뜻 뛰여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 우물은 보통 우물이 아니라 채소대에서 관개용수로 쓰는, 깊이가 7,8메터나 되는 깊고 큰 우물이였다. 서뿔리 구하러 들어갔다가 자칫 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는 판인데 누가 감히 우물에 뛰여들어 남을 구할 엄두를 내랴!

아버지는 급히 사람들을 헤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자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듯 길을 비켜주었다. 아버지는 나이도 신체도 생각할 사이없이 옷을 훌훌 벗어 던졌다. 그리고는 허리에 바줄을 잽싸게 매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짤막하게 한마디 했다.

“내가 바줄을 흔들면 인츰 잡아당겨 주십시오.”

아버지는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는 물속으로 급히 뛰여 들어갔다. 찰칵찰칵 숨막히는 일분일초가 흘러갔다. 사람들은 모두 손에 땀을 쥐고 우물안을 초조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런데 우물밑에는 사람들이 던진 벼라별 잡동사니들이 가득 깔려 있었는데다가 바닥 또한 감탕천지여서 그야말로 아무리 애써도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만져지질 않았다고 한다. 숨이 막혀 더는 물에 있을 수가 없었던 아버지는 허리에 맨 바줄을 힘껏 흔들었다. 허나 물이 너무 깊어서 우물밖의 사람들은 아버지가 보내는 이 신호를 감감 모르고 있었다. 여러번 반복하여도 마찬가지였다. 밑은 바닥도 보이지 않고 물렁물렁 끝없이 빠져드는 수렁창이여서 땅을 차고 솟구쳐 올라올 아무 물건도 없었다.

“여기에서 내가 오늘 이렇게 죽는구나.”

순간 이런 무서운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고 한다. 삶의 본능은 아버지로 하여금 젖먹던 힘까지 다내여 살길을 찾게 하였다.

“제발 무엇 하나라도 걸려다오.”

아버지는 속으로 이렇게 빌고 또 빌면서 우물안을 더 깊게 더 깐깐히 훑으면서 필사적으로 돌고 돌았다. 찰나 손에 무엇인가 딱딱한 것이 하나 맞혀왔다. 끝끝내 수면 밑바닥에 박힌 큰돌의 조금 솟아난 웃부분을 찾아냈던 것이다.

“살았구나, 내가 살았어!”

마침내 생명의 끈을 쥔 아버지는 속으로 이렇게 웨치며 그 돌을 힘껏 박차고 우물밖으로 솟구쳐 올라왔다.

“백선생님이 올라오셨다.”

누군가 큰 소리로 웨치자 사람들은 일제히 아버지를 겹겹히 둘러쌌다. 7월 초의 여름이건만 아버지는 추워서 와들와들 떨고 있었고 입술은 새파랗다 못해 검푸른색이 났으며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고 한다. 여러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와 앞다투어 자기의 옷을 벗어 씌워주었고 모두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는 재빨리 주변을 휘둘러보았다. 우물에 빠진 아이의 엄마가 이미 정신을 잃은 채 우물옆에 쓰러져 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아버지는 한마디 말도 할 사이없이 다시 우물에 뛰여들었다.

허나 두번째에도 아버지는 아이를 찾지 못하고 헛탕을 쳤다. 세번째로 다시 뛰여들려 하자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렸다고 한다.

“이제 들어 가면 안됩니다. 들어가지 마세요. 백선생님!”

허나 아버지는 다시 우물에 뛰여들었다. 피를 말리는 일분일초가 또다시 흘러갔다. 우물안에서 아버지는 또다시 필사적으로 아이를 찾고 또 찾았다. 그야말로 생과 사의 판가리 싸움이였다. 이렇게 세번째만에야 아버지는 끝끝내 꺼꾸로 박힌 아이의 발 하나를 움켜 잡았다고 한다.

“불쌍한 애야, 제발 살아다오.”

아버지는 이렇게 속으로 부르짖으며 축 늘어진 아이를 꼭 안고 돌을 박차 다시 우물밖으로 솟아 올라왔다.

아버지는 옷을 입을 사이도 없이 급히 인공호흡을 시켰으나 아이는 반응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다시 홍문에 손을 넣어 보았는데 손가락이 인차 쑥 들어갔다고 한다. 사람이 죽으면 먼저 홍문이 풀린다며 아이가 이미 잘못되였다고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힘없는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아이의 엄마는 또 정신을 잃어버렸다.

아버지는 천천히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휘청휘청 앞으로 걸어갔다. 한번도 아니고 세번이나 우물에 뛰여들어 생명을 내걸고 아이를 구했는데 죽은 아이를 건졌으니 얼마나 기막혔을가! 이미 탈진상태에 빠진 아버지는 몇걸음 못가고 그만 그 자리에 쓰러졌다고 한다.

후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그날 죽은 애는 친구와 우물가에서 웃고 까불며 놀다가 웬일인지 한참 말없이 우물안을 들여다 보더니만 마치 누가 부르기나 하는듯 저절로 뛰여들었다고 한다. 철부지인 친구도 인츰 나오겠지하고 한참을 기다렸으나 나오지 않으니 그제야 급해맞아 학교로 달려갔다고 한다. 학교에서 우물까지 오자 해도 10여분은 착실하게 걸리니 그 아이가 아무리 물재간이 좋은 아버지를 만났다 해도 살아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아버지가 오시기 전에 그앤 아마 잘못되였을 거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출중한 물재간을 가진 아버지는 젊었을 때 고향에서 물에 빠진 사람 여럿을 구해주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학생이였던 영채네 자매가 물에 빠졌을 때에는 혼자서 둘을 한꺼번에 구해주었다. 그날 학교에서 원족을 갔는데 고향의 류수하에서 놀던 영채와 그의 언니가 그만 함께 물에 빠졌다고 한다. 급해맞은 아버지는 옷을 입은 채로 물에 뛰여들어 량쪽 겨드랑이에 두 자매를 하나씩 끼고 두 다리로 헤염쳐 나오셨다고 한다.

죽은 사람을 건진 건 이때가 처음이라고 했다.

“여보, 베개를 좀 내려다주오.”

그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없이 그저 피곤하다며 저녁도 안 잡숫고 코만 드렁드렁 골면서 내처 주무시기만 하였다.

“여보, 일어나 저녁이나 좀 잡숫구 다시 쉬세요.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요?”라고 하며 아무리 흔들며 깨워도 일어나지 못하자 어머니는 “저렇게 힘들어하는 너희들 아버지를 내 처음 본다. 오늘 참 이상하시다. 무슨 일이 있었지?”라고 하며 절레절레 자꾸 머리만 흔들었다.

이튿날 학교 선생들이 너도나도 어머니와 얘기해서야 우리 식구 모두가 알게 되였다. 그날 놀란 가슴을 붙들고 얘기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너네 아버지가 글쎄 어제 하마트면 죽을 번했다누나. 아이구 내 심장이야! 교장이요, 지부서기요, 그 숱한 젊은 선생들도 다 죽을가 봐 못 뛰여드는데 글쎄 너네 아버지가… 당신 그 나이에 어디라고 그 깊은 우물에 뛰여들어요? 다리가 아파 쩔뚝거리며 겨우 걸어다니면서, 그것도 세번씩이나 우물에 뛰여들어요? 당신 정신 있어요?  학교에서 억울한 일로 사람 취급도 안 해주는데 그런 위험한 일에는 왜 나서요? 그러다 잘못되면 어쩌자구요?”

그때 아버지는 사람 좋게 그저 이런 한마디만 했을 뿐이다.

“나 원 참. 그 사람들이 안 뛰여든다구 해서 그래 나도 안 뛰여 들면 아이는 어떻게 되는데? 그게 또 억울한 일과 무슨 상관이요? 그 와중에 그런 걸 생각할 사이가 어디 있는데? 그저 아이를 구해야겠다는 생각만 했을뿐이지.”

평범하지만 의미심장한 아버지의 이 말씀은 지금도 내 마음에 커다란 감동으로 메아리친다. 세월이 많이 좋아진 지금이라면 60 고개인 아버지의 이 의로운 행동은 신문이나 방송에 얼마나 대서특필 되였으랴!  허나 이 이야기는 그저 오랜 세월 동안 이 사람의 입에서 저 사람의 입으로 아름다운 전설처럼 전해졌다.

이 사실을 목격했던 한 선생은 몇십년이 지난 얼마 전에도 나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눈굽을 적셨다. 그리고 이런 한마디를 남겼다.

“백선생님은 어느 모로 보나 너무나 훌륭한 분이셨어. 이 시가지에서 살 사람이 아니였지. 나는 선생님을 생각만 하면 그냥 눈물이 나거든.”

아버지는 바로 이런 사람이였다. 아무리 엄혹한 세월도, 아무리 큰 시련을 당해도 아버지의 인간됨됨이에는 티가 묻지 않았다. 작가이고 교육자이기 전에 아버지는 무엇보다 순수하고 인격이 높은 참된 인간이였던 것이다. 인간애가 그 누구보다 철철 흘러넘쳤던 아버지는 자신의 실제 행동으로 사람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셨다.

신문이나 인터넷에나 여러 매체들에서 보도하는 소식들을 보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러 들어간 사람들은 열에 아홉은 거개가 다 생명을 잃고 만다고 한다. 물에 빠진 사람이 살겠다고 죽기내기로 붙잡는 바람에 구하러 들어갔다가 결국 맥이 진해 헤여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매번 이런 소식들을 들을 때 나는 몇십년 전의 일이긴 하나 그때의 아버지를 떠올리고 저도 모르게 심장이 쿵쿵 뛰고 손에 식은 땀을 쥐군 한다. 한번도 아니고 세번이나 우물에 뛰여든 아버지, 너무나 선량했기에, 너무나 훌륭했기에, 너무나 물재간이 좋았기에 신은 아버지에게 삶의 끈을 다시 쥐여주었으리라. 침묵으로 일관했던 아버지의 삶, 그러나 가슴에 하늘보다, 바다보다 더 큰 사랑을 품고 일생을 사셨던 아버지, 또 죽음 앞에 남먼저 선뜻 나섰던  아버지는 진정 넓은 가슴과 높은 인격을 소유한 진짜 사나이였던 것이다.

아버지가 자신의 안위도 잊고 뛰여들었던 우물은 이미 사라졌지만 아버지는 우리 자식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우물 하나를 남겨주고 떠나가셨다. 마를 줄도 지칠 줄도 모르고 솟아나는 이 사랑의 맑은 샘물은 그대로 감로수가 되여 마음에 흘러들면서 나로 하여금 나라와 인민을 사랑하고 가족과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고무격려해주면서 기나긴 내 인생을 동반해줄 것이다.

이젠 추억으로밖에 아버지를 만날 수 없지만 삶에 지쳐 힘들 때면 늘 아버지를 가슴깊이 불러본다. 그러면 저도 모르게 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며 또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리유와 힘을 얻게 되고 참된 삶의 도리를 깨우치게 된다. 그러면서 나도 다시한번 아버지와 같은 그런 넓은 가슴과 큰 사랑을 가졌는지를 반성해본다. 비록 저 세상으로 가셨지만 내 심장이 뛰는 한 아버지는 영원히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아버지 아, 나의 아버지.

목메게 아버지를 다시 불러본다. 내 눈물 속에 자애롭고 인자한 아버지의 모습이 어린다. 오늘도 인생의 등불로 내 앞에 웃으며 조용히 서계시는 나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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