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 조려화

2023-11-09 15:05:39

“산다는 건 다 그런거래요~”

핸드폰 벨소리가 고요한 새벽을 가르며 들려온다.

“원장, 빨리 오쇼. 202호 할머니들이 싸움다. 빨리 오쇼.”

쑈왕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싸우신대?”

김화자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모름다. 아무리 말려도 말을 듣지 않슴다. 빨리 오쇼.”

너무 급해서 발까지 동동 구르는 쑈왕의 모습이 전화기너머로 보이는 것만 같았다. 씻지도 못한 채 남편이 운전하는 차에 앉아 시내와 멀리 떨어진 산밑에 자리잡은 양로원에 도착한 김화자는 곧바로 차에서 내려 마당을 가로 질러 본채로 향했다. 먼동이 트기 전이라 어두컴컴한데다 바람마저 쌀쌀한데 사람이 그리워 매일 일찌감치 기상하는 로인 몇분이 마당에 앉아 있다가 그녀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김화자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랴부랴 202호실로 올라갔다.

퀴퀴한 냄새로 가득 찬 방안에 들어서자 어쩔바를 모르고 있던 쑈왕은 구세주나 만난 듯 김화자의 손을 잡아 끌었다. 김화자도 수없이 겪는 일이지만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머리가 지끈지끈해나군 하였다.

“김원장, 잘 왔소. 당장 나를 다른 방으로 옮겨주오. 이 로친네하고는 도저히 같이 못 살겠소.”

“누가 할 소리! 김원장, 나도 이 로친네랑 같이 있기 싫소!”

두 로인은 다자고짜로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202호실에 사는 두 로인은 여든이 넘는 분들인데 평소에는 큰 불화가 없이 친자매처럼 서로 의지하며 지내고 있었다.

“진정하시고 천천히 말씀하쇼. 무슨 일임까?”

김화자는 겨우 두 로인을 자리에 앉혔다.

“저 로친이 화장실에 들어가서 일을 보면서 문도 닫지 않잖소. 더러워서 원.”

김아매가 팔을 휘휘 내저으며 저으기 격동되여 말했다.

“아니, 이 로친네야. 자기는 뭐 안 그러나?”

“내가 언제 그랬나? 나는 항상 문을 닫고 일 봐.”

“어이구, 싹 집어치워! 문을 닫는데 그 고약한 구린내가 방안을 진동하나?”

두 로인은 친구가 아니라 원쑤라도 되는 듯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언성을 높였다. 나이가 들면 애가 된다더니 그 말이 참 그른데 없는 것 같았다.

“로친네 저녁에 잘 때 왜 불을 끄지 않소? 랠 모레 당장 귀신이 될 로친이 뭐가 무서워서 불도 못 끄오? 눈이 새그러바서 자지를 못하겠구만.”

“한밤중에 서너번 씩 일어나 변소 가는게 누군데?”

“이 로친네는 허구한 날 티비를 틀면 쌈하는 영화만 본다오. 노래랑 듣고 춤 추는거랑 보문 기분이 얼매나 좋겠소. 제 무슨 전쟁이 나면 쌈하러 나가겠소? 랠 모레 당장 무덤 갈 로친네가?”

서로 질세라 네 한마디, 내 한마디씩 뱉어냈다.

“두분 다 그만하쇼. 별일도 아닌데 왜 그러심까.”

김화자가 말렸지만 소용 없었다. 쌓인 것이 많은 모양인지 두 로인은 아예 오늘 결판을 내려고 잡도리를 한 것 같았다.

“저 로친네 평소에도 나를 얼마나 업수보는데…”

“뭐이 라오? 내 저를 언제 업수봤소?”

“자기네 새끼들이 한번씩 왔다 가면 얼매나 우쭐댔소? 그 잘난 사탕, 과자 좀 사들고 와서 엉덩이도 붙이지 않고 가버리는 새끼들이 뭐 대단하다구. 한번 왔다 가면 온 밤 자지도 못하면서.”

김아매의 아들과 며느리가 드문드문 오긴 하는데 그때마다 지린내가 난다며 오만상을 찌푸리고 앉지도 않고 바로 돌아가는걸 김화자도 알고 있었다.

“로친네 꼭 그렇게 남의 아픈 곳을 건드려야겠소? 양?”

김아매가 울분을 토해냈다.

“그러니까 내 앞에서 새끼 자랑 좀 그만하란 말이요!”

“자기는 찾아오는 새끼들도 없으면서…”

“뭐이라오? ”

대화가 점점 격해지자 자리에서 일어설 태세던 박아매가 갑자기 털썩 주저앉으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어이구, 어이구, 내 신세야. 어이구 흑흑흑…”

갑작스러운 박아매의 행동에 셋은 눈이 휘둥그래서 서로를 멀거니 쳐다보았다.

“다 죽어가는 로친네도 새끼들이 곁에 있다고 잘난체하는데 내 새끼들은 어디서 뭘 하나? 어이구, 어이구, 이 감옥같은데를 아이 오겠다는데 기어코 데려다놓고, 어이구, 어이구…”

“아매, 그만 하쇼.”

김화자가 말리자 박아매는 더욱 서럽게 울었다.

“어이구, 어이구, 온갖 고생 다 해가며 새끼들을 키워놨더니 에미 보러도 오지 않는구나, 어이구, 내 팔자야, 어이구, 령감은 왜 그리 일찍 가버렸소? 어이구, 어이구…”

날도 채 밝지 않은 이른 새벽에 양로원이 떠나갈 듯이 곡을 하니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여기저기서 문을 열고 내다보느라 갑자기 부산해졌다. 당장 다른 방으로 옮기겠다고 길길이 뛰던 김아매도 통곡하는 박아매를 앞에 두고 아무 말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가만히 앉아있었고 조선말을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쑈왕은 어쩔바를 몰라 눈치만 연신 보고 있었다.

“아매, 사람들이 놀라서 깼슴다. 그만하쇼.”

김화자가 또 말렸지만 역부족이였다.

“아이고, 아이고…”

로인은 더욱 서럽게 통곡을 했다.

“인차 데릴라 온다더니 이제는 이 에미를 아주 버릴라고 작정을 했구나. 아이고, 나쁜 자식들, 새끼 키워봐야 다 소용없다더니 아이고, 내 신세야…”

로인의 울음소리는 그칠줄을 몰랐다. 양로원이란 곳은 저 세상으로 가는 마지막 정거장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로인들은 들어오기를 극도로 꺼려하는 곳이다. 슬프고 안타깝고 화나고 기가 막히는 각자의 사연을 안고 들어오긴 하지만 하루하루를 지루하고 애타는 기다림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 아닌가.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무수한 날들에 대한 하소연과 자식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과 원망, 언제 이 세상을 떠나게 될지 알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한데 섞인 통곡소리는 듣고 있는 사람의 가슴을 허벼팠다.

모두가 속수무책으로 어쩔바를 모르고 있는데 갑자기 잠자코 있던 김아매가 어기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통곡하는 박아매한테 다가가 꼭 안아주는 것이였다.

“에구, 이 보우, 그만 좀 우오. 내 잘못했소. 양? 그러니까 그만 우오, 어이구.”

“어이구, 어이구.”

방금전까지도 양로원이 떠나갈 듯이 말다툼을 하던 두 로인은 서로를 끌어안고 가슴 속에 쌓인 모든 한을 토해내듯 꺼이꺼이 통곡했다. 누군들 이곳에 오고 싶을 것이며 누군들 가족도 없는 이 곳에서 생을 마치고 싶어하겠는가. 해가 저물듯 저물어가는 인생의 마지막 날들을 언제 올지 기약도 없는 자식들을 기다리면서 살아가고 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손 잡아줄 사람 하나 없는 이들이 아닌가.

“미안하오, 미안하오…”

연신 미안하다며, 또 괜찮다며 서로를 다독이는 두 로인을 바라보던 김화자는 솟구쳐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 밖으로 나와버렸다.

(휴…사실대로 말씀드려야 하나…)

통곡하는 박아매를 보며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겨우 삼킨 그녀다.

“우리 어머이를 잘 부탁함다. ”

박아매를 양로원에 모셔오던 날, 차마 머리도 들지 못하고 연신 김화자한테 허리를 굽히던 박아매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돌아서서 연신 눈물을 훔치던 박아매 아들의 눈길이 너무 슬퍼보였었다.

“우리 애가 상해에서 회사 다니는데 차로 사람을 쳤담다. 몇십만원 배상해야 되는데 한국 가서 벌어온 돈을 다 보내고도 부족함다. 또 나가야지 어떡하겠슴까. 어머이한테는 인차 모시러 온다고 했는데 사실 우리도 모르겠슴다. 언제나 돌아오게 될지. 휴…”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나이보다 많이 겉늙어보이는 박아매네 며느리는 체념한 듯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한숨만 나오는 딱한 사정에 김화자는 뭐라고 위로의 말을 해야 될지 몰랐다. 세상 살아가는게 왜 이리도 힘이 들고 고난의 련속일가 싶었다.

“박아매네 아들 며느리는 언제쯤 돌아오려나, 그때까지 로인이 잘 버텨줘야겠는데…”

좁은 복도를 가득 메우던 통곡소리가 즘즘해지자 김화자는 마당으로 나왔다. 어느덧 아침해가 떠올라 눈부신 빛을 뿌리고 있었고 로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초점잃은 눈으로 대문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은 어느 집 자식들이 찾아오려나…”

  나무에 겨우 매달려있던 이파리들이 아침바람에 날려 맥없이 떨어지고 계절은 어느덧 가을을 넘어 초겨울로 들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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