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귀 □ 최희애

2023-12-08 08:29:53

련옥이는 온밤 흥분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래일이면 꿈속에서도 선망하던 재무실로 발령 나게 된다. 옆에 누워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꿈나라에서 헤매는 남편을 깨울세라 련옥이는 살며시 이불을 젖히고 베란다로 나섰다.

자정이 지난 밤거리에는 인적이란 찾아볼 수 없이 조으는 듯한 가로등이 고독하게 밤거리를 지키고 서있었다. 구름 한점 없는 밤하늘에는 둥근달이 휘영청 걸려있고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의 보석처럼 반짝이는 크고 작은 별들이 달과 함께 조용히 대지를 굽어보고 있었다. 늦가을의 밤하늘은 이런 모습이였구나. 오랜 시간 마음 편히 밤하늘을 감상해본 것 같지 않았다. 얼마 만인가, 꼬박 1년 8개월이란 시간을 련옥이는 끝없는 근심과 일에 쫓긴 것 같았다.

전문학교에서 회계전업을 전공하고 작은 기업에서 출납으로 근무하면서 적성에 맞는 일터라고 현실에 만족하면서 안온한 나날을 보냈던 련옥이는 어느날 갑가지 기업이 파산을 선고하면서 정리실업을 당하게 되였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회의 버림을 받았다는 좌절감에 련옥이는 한동안 외출을 자제하고 의기소침하여 집에만 붙박혀있었다. 마음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했던 련옥이는 몇달 후 정신을 차리고 이곳저곳 다니며 자기에게 알맞는 일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러다가 그녀는 몇백명의 직원을 거느린 병원에서 직원을 초빙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응시하였는데 운이 좋게 합격되였다.

그녀가 안배받은 곳은 문진 수금실이였다. 수금실에 배치받았다니 주위사람들은 하루종일 기차바곤처럼 줄을 서있는 환자들에게 어떻게 시달림받겠냐며 오히려 걱정 어린 관심을 보이는 것이였다. 하지만 정리실업이 가져다준 가슴 아픈 경력을 겪은 련옥이는 철밥통이나 다름없는 사업편제를 가질 수 있는 이 기회가 너무나 소중히 느껴졌다.

수금실에서 업무에 능숙한가를 가늠하는 표준은 처방지의 의료비를 정확히 계산하고 환자의 돈을 오차 없이 빠른 속도로 결산하는 데 있다. 혹여 처방지의 의료비를 잘못 계산했다면 심성이 너그러운 환자를 만나면 그래도 괜찮은데 성격이 조폭한 환자는 창가에서 삿대질을 하며 크게 욕설을 퍼붓거나 령도를 찾겠다고 소란을 피울 때도 있었다.

까근하고 눈썰미가 빠른 련옥이는 열심히 업무를 전공한 결과 환자들을 접수하면서 의료비를 잘못 계산하여 환자들을 불편하게 한 적이 없었다. 련옥이는 한동안 수금실에서 일하면서 하루종일 수금하는 것보다 저녁 직일을 서는 것이 더욱 힘들었다. 밤 직일은 두명을 안배하였는데 밤 12시를 기준으로 바꿔 잠자리에 든다. 잠자리를 바꾸면 한잠도 못 자는 련옥이는 저녁 직일 서는 날이면 온밤 한시도 눈을 붙이지 못하고 만다. 직일 서고 이틀 쉰다지만 온밤 자지 못하다 보니 이튿날이면 꼬박 하루 낮시간은 잠에 빼앗기기가 일쑤였다. 낮에 아무일도 못하고 잠을 자지만 몸은 늘 찌뿌둥하고 기운을 차리지 못하였다. 며칠에 한번씩 직일을 서다 보니 몸은 늘 피곤에 절어있었다.

수금실은 업무강도가 높지만 련옥이의 월급은 낮았다.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 련옥이는 직함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중급경제사시험에 등록했다. 그때 련옥의 나이는 이미 30대 초반이였다.

그녀한테 넉달이란 학습시간이 차려졌다. 안해가 수금실에서 하루하루 힘들게 일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남편은 그녀가 직함시험에 도전하겠다니 두 손 들어 지지했다. 저녁식사를 끝내고 설겆이도 자신이 도맡아하면서 책을 보라고 서재로 안해의 등을 떠밀었다.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거의 십년 만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련옥이는 책장을 펼치고 리론지식을 들여다보자니 책장에 꽉 박힌 작은 글들이 자기와 숨박곡질하는 것만 같아 눈만 피곤하고 머리속에 쏙쏙 들어오지 않았다. 기억력도 감퇴되여 전날 본 내용은 이튿날이면 대부분 잊어 먹고 말았다. 이 나이에 무슨 공부를 시작해가지고 이제라도 그만둬야 하나 하며 뒤걸음 치려 하다가도 시도도 해보지 않고 포기하는 자기가 한심하여 되든 안되든 최선을 다해보려고 결심하고 이악스레 학습을 견지했다. 매일 저녁 늦게까지 넉달 동안 악전고투한 결과 운이 좋게도 시험을 통과하여 경제사자격증을 따게 되였다. 수금실에서는 처음 중급경제사 시험에 합격한 것이였다. 시험에 합격하자 동료들이 조금 다른 눈길로 그녀를 보기 시작했고 그녀는 1년 8개월 만에 병원 재무실로 발탁되게 된 것이였다.

병원 재무과에는 수금실, 입원병동 수금실, 재무실이 포함되는데 재무실은 재무과의 핵심이기도 하였다. 수금실과 입원병동 수금실은 직접 환자들과 접촉하다 보니 1선이라고 말할 수 있고 재무실은 행정구역에서 업무를 보고 후근에 속하였다. 재무실은 기타 수금실에서 근무하는, 회계증이 있는 직원들이 모두 선망하는 곳이였다.

밤하늘을 쳐다보며 깊은 명상에 잠겨있던 련옥이는 정신을 차리고 나서 보름달처럼 환한 둥근달을 향하여 두 손을 맞잡고 “재무실에 가서 모든 일이 순리롭게 풀리기를 기원합니다.”하고 소원을 빌고는 살며시 남편 옆에 누워 잠을 청했다.

이튿날, 련옥이는 흥분된 심정을 가까스로 진정하며 단위청사의 제일 높은 10층에 있는 재무실로 첫 출근의 발걸음을 옮겼다. 10층에는 원장실, 부원장실, 의무과, 인사과, 재무실 등 행정과실이 집결하여 사무를 보고 있다. 병원에 출근한 후 한번도 10층에 올라온 적 없는 련옥이는 시끌벅적한 대청과는 너무 다르게 조용하고 엄엄한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위축감을 느끼면서도 나도 이제부터 이런 분위기에서 업무를 보겠구나 하는 생각에 긍지감이 살짝 들기까지 하였다.

재무실에는 도합 일곱명의 재무일군이 있었는데 재무과 과장이자 총 회계인 엄과장을 비롯한 회계 여섯명에 어린 출납 한명이 있었다. 인연이랄가? 정부부분에서 출근하는 련옥의 남편과 엄과장의 남편 박씨는 같은 단위 같은 과실에 출근하고 있다. 과장인 남편은 박씨와는 형님, 동생하며 가깝게 보내면서 생일이며 명절 때마다 서로 인사를 다니는 사이였고 엄과장과는 어느새 누나라고 부르는 절친한 사이가 되였다.

재무실에 있던 한 회계가 정년 퇴직하여 자리가 비게 되였을 때 병원 재무과에 속하는 수금실, 입원병동 수금실의 직원들 뿐만 아니라 다른 단위에서도 그 자리를 넘보는 사람이 많았다. 어쩌면 엄과장이 30여명이 되는 재무과에서 경제사자격증을 딴 사람은 련옥이 뿐이니 그녀가 재무실로 발탁되여야 한다고 외부에 일찌감치 공개 발표한 덕에 련옥의 재무실 발령이 순조롭게 진행되였는지도 모른다.

재무실로 조동한 후 련옥이는 엄과장을 언니처럼 존경하고 무척 따랐다. 엄과장은 련옥이를 잘 이끌어주라고 재무실에서 가장 선배인 차회계한테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겸손하고 부지런한 련옥이가 업무에 차츰 능해지면서 엄과장은 련옥이를 점점 신뢰하면서 속심말도 곧 잘 털어놓았다.

련옥이가 재무실에 온 지 거의 일년이 되였지만 재무과의 부과장 자리는 계속 비여있었다. 꽤 오랜 시간 비여있었다고 했다. 다른 과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 전의 부과장은 엄과장과 모순이 생겨서 부과장자리를 떠났다고 하는 것이였다. 열정적이고 성격 좋은 엄과장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철석같이 믿는 련옥이는 그 소문을 믿지 않았다.

어느날 엄과장이 련옥이를 사무실로 불렀다.

“련옥이 재무실로 온 지도 벌써 일년철을 넘었소. 업무도 능숙하고 동료들과도 두툼한 감정을 쌓았는데 부과장을 맡아보면 어떻소? 그동안 합당한 사람이 없어서 고민이였는데 그래도 련옥이가 제일 적합할 것 같소!”하고 말하는 것이였다. 련옥이는 너무나 뜻밖이라 뭐라고 대답했으면 좋을지 몰라 한동안 잠자코 있다가 어줍게 “제가 해낼 수 있겠는지 모르겠습니다.”하고 겸손하게 대답했다.

“아무 근심하지 마오! 내가 잘 밀어줄 테니 련옥인 지금처럼 하면 되오! 앞으로 과장을 목표로 하려면 지금부터 단련해야 할게 아니요?”

“아니, 엄과장 무슨 말씀을요? 엄과장이 퇴직하자면 아직 멀었어요! 제가 언제 과장까지…”

과장이라는 말에 련옥이는 더 몸둘 바를 몰라하였다.

“괜찮소! 난 련옥일 믿소! 앞으로 잘해보오!”하며 엄과장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 것이였다.

련옥이는 이렇게 뛰여난 업무능력으로 인해 재무과의 부과장 직무를 맡게 되였다. 부과장이라지만 실권은 별로 없었다. 다만 최회계로 불리던 련옥이는 듣기 좋게 ‘부’자를 빼던진 최과장으로 불리웠다.

시간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빨리도 흘러 련옥이가 부과장자리에 임명된 지도 어느덧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차회계가 퇴직하면서 그 자리에 련옥이와 동갑인 경숙이라는 회계가 다른 병원에서 전근해왔다. 깔끔하면서도 약삭바르게 생긴 경숙이는 동료들과의 관계 처리도 잘하고 엄과장과도 부쩍 친하게 보냈다. 경숙이의 남편은 어느 단위에서 큰 령도직을 맡아하고 있다고 한다.

경숙이가 오면서 련옥이는 자기와 엄과장과의 관계가 미묘하게 변화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전에는 크고 작은 일마다 련옥이를 찾았고 때론 한가할 때면 재무실 안쪽에 있는 과장실 문을 빼꼼 열고 “련옥이…”하고 과장실로 불러들여 한담도 하군 하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경숙이를 부르는 차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그날은 재무실 막내인 출납의 잔치날이였다. 부서에서도 오랜만에 빠짐없이 모였는지라 다른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서 가볍게 한잔 기울이는중이였다. 술이 몇순배 돌자 차츰 분위기가 뜨겁게 익어가기 시작했다. 련옥이가 “자! 우리의 멋진 미래를 위하여 한잔 건배합시다!”하며 술이 찰찰 넘치는 술잔을 쳐들자 동료들도 흥을 돋구어 “우리의 멋진 미래를 위하여! 위하여!”하며 잔을 부딪쳤다. 련옥이가 술잔을 비우고 보니 동료들은 잔을 깨끗이 비웠지만 항상 통쾌하게 제일 먼저 잔을 비우던 엄과장이 찰찰 넘쳐나는 맥주잔을 그대로 놓고 팔짱을 낀 채 눈살이 꼿꼿해서 앉아있는 것이였다.

“엄과장은 왜 안 마십니까?”

련옥이의 어쩡쩡한 물음에 엄과장이 불시에 “내가 널 얼마나 생각해줬는데… 네가 날 이렇게 욕 먹여? 넌 량심도 없어!”하며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불시에 련옥이를 향해 모진 말을 쏟아붓는 것이였다. 직원들 앞에서 난데 없이 모욕을 당한 련옥이는 삽시에 술기운이 싹 날아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 이래요? 과장님! 오늘은 이만해요!”

눈치 빠른 경숙이가 엄과장을 억지로 끌고 음식점을 빠져나가는 것이였다. 한창 뜨거운 술 분위기에 빠져있던 다른 직원들도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 눈치 보더니 끼리끼리 련옥이를 관계치 않고 음식점을 빠져나갔다.

외롭게 홀로 남은 련옥이는 뭐가 뭔지 통 머리가 돌지 않았다. ‘엄과장은 불시에 왜 저러지? 동료들은 왜 또 이래?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날 이렇게 혼자 두고 도망치듯 가버리는 거야?’ 버림받는 느낌에 락심하고 상심한 련옥이는 먹다 만 음식물이 지저분히 널려있는 식탁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며 꼼짝도 못했다.

큰 타격을 받은 사람처럼 혼자 얼이 나간 듯 앉아있는 그녀가 이상한지 복무원이 자꾸 힐끔힐끔 보더니 안되겠던지 “손님! 혹시 더운 물이라도 드릴가요?”하고 관심조로 물어오는 것이였다. 복무원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련옥이는 “아니 괜찮아요.”하며 몸을 일으켰다. 밖에 나오니 보슬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었다. 련옥이는 머리가 된 몽둥이에 맞은 것처럼 뻥하여 휘청거리면서 차를 탈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비를 맞으며 집에 돌아왔다.

이튿날, 출근하니 사무실 분위기는 어딘가 모르게 묘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컨디션 괜찮아요?”

“…”

련옥이가 사무실 문을 떼고 들어서면 너도나도 따뜻하게 인사를 건네던 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련옥이가 옆을 지나가도 저마다 책상 앞의 장부책을 들여다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녀는 맥없이 사무실 안쪽에 있는 자기의 자리에 걸어가 의자에 몸을 던졌다. 언제나 이맘때면 책상 우에 따뜻한 보리차가 놓여있었는데 오늘은 그것도 보이지 않았다.

과장실 문이 꼭 닫혀있는 걸 보니 엄과장이 자리를 비운 것 같았다. 련옥이는 조용한 시간을 타 서로 정신이 맑은 상태에서 자기가 대체 엄과장한테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똑똑히 물어보고 싶었다. 이맘때면 전날 모임에서 있었던 일들을 한두마디 주고받을 법도 하지만 오늘은 누구도 어제 일에 대해 까딱 함구하고 있었다.

침침하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똑딱똑딱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가 점심 퇴근 시간이 되였다.

‘엄과장도 어제는 무슨 기분 상한 일이 있어 실수했겠지. 오후에 오면 서로 풀고 나가면 되는거야!’

련옥이는 혼자 자기를 위안하면서도 저도 몰래 후…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였다.

오후에 출근하니 엄과장이 출근한 것 같았다. 방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누군가와 담화하는 인기척이 들려왔다. 누군지 이제 나오면 들어가 담화해보려고 조용히 앉아 컴퓨터를 들여다보는데 과장실에서 경숙이가 나오면서 련옥이를 힐끔 쳐다보고는 아무일도 없는 듯이 제자리에 가 앉았다.

어제저녁 엄과장을 붙들고 먼저 일어나더니 둘이 또 어디 가서 한잔 했나? 아무렴 엄과장과 친하지 못해 안달을 떠는 경숙이가 그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이젠 엄과장과 담화하러 가야지…

련옥이는 무거운 마음으로 몸을 일으켜 과장 사무실로 건너갔다.

한창 창가에 서서 더운물을 마시며 밖을 내다보던 엄과장이 똑똑 노크하고 들어오는 련옥이를 힐끔 쳐다보더니 못 본 것처럼 계속 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둘만 있을 때면 련옥이는 엄과장을 언니라고 부르기도 했다.

“언니, 속은 좀 괜찮아요? 혹시 제가 언니한테 잘못한 일이라도 있나요? 항상 친언니처럼 저를 믿고 아껴주던 언니가 불시에 저한테 왜 그러는지 몰라 제가 너무 당황스러워요. 제가 뭘 잘못했는지 가르쳐주면 제가 고칠게요.”

련옥이는 엄과장의 이전과 확연히 다른 랭기가 흐르는 눈길을 마주 쳐다보지도 못한 채 구구절절 제 할 말을 했다.

련옥이가 머라고 말하든 들었는지 말았는지 밖을 주시하던 엄과장이 “할 말 다 했으면 나가 보오.”하며 쌀쌀맞게 한마디 던졌다. 담화가 필요없으니 어서 나가라는 과장의 싸늘한 태도에 련옥이는 더 뭐라고 말할 엄두도 못 내고 자기 책상으로 기분 없이 돌아와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정말 어제부터 천당에서 지옥에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무슨 일인지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뭐가 뭔지 통 갈피를 잡을 수 없어 가슴을 졸이며 암흑 속을 걷는 느낌이였다. 동료들까지 하루 사이에 180도로 확 변한 태도여서 누구하고 물어보기도 그렇고 물어본다고 해도 자존심이 너무 상할 것 같아서 그대로 있었다. 련옥이는 일이 있다고 청가를 맡고 가방을 들고 과실을 빠져나와 집의 침대에 맥없이 누워버렸다.

요즈음 다른 단위의 부국장으로 승진한 남편은 매일 늦게 귀가했다. 련옥이는 아들애를 재우고 객실 쏘파에 앉아 남편을 기다렸다. 혹시 남편과 엄과장의 남편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밤이 이슥히 깊어 집에 돌아온 남편을 보고 련옥이는 “당신 혹시 단위에서 우리 과장 남편과 모순이 있은 건 아닌가요?”하고 의문조로 물었다. 남편은 의아한 눈길로 “모순은 무슨 없는데… 왜?”하고 되물었다.

“아니, 요즈음 우리 과장이 절 대하는 태도가 좀 이상해서요. 혹시 우리 과장과 무슨 일은 없었겠죠?”

련옥의 물음에 남편은 한참 생각을 더듬더니 “무슨 큰일은 없는데… 얼마 전에 누나가 전화 왔습데. 나 이번에 승진하여 다른 단위로 조동하게 되면서 과장자리가 비여있지 않소? 그 자리에 어떻게 자기 남편을 올려놓을 수 없는가 하더구만…”하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 일 때문일가?

“그래 당신이 뭐라 했어요?”

련옥이는 화장실까지 따라가며 다그쳐 물었다.

“그건 내 능력범위가 아니라고 했소! 매부도 곧 50인 데다 과장자리에 적합한 사람도 아니고… 더군다나 요즘은 능력 있고 패기가 있는 젊은이들을 중용하는 시대라 과장직무를 맡아하던 사람들도 50이면 젊은이들한테 자리를 양보하오! 했더니 남편이 한평생 출근하며 장자가 붙은 직무를 못 가져 유감이라더구만. 그리고는 별말 없이 전화를 놓습데… 후에 조용한 시간을 타 형님과 얘기를 나누었는데 형님도 젊은이들한테 기회를 줘야지 하면서 누나가 별짓 다한다고 나무라더군…”

남편은 별 큰일이 아니라는 표정을 지으며 “혹시 단위에 무슨 일이 있소?”하고 물었다. 아직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한 련옥이는 항상 바쁜 남편한테 걱정을 안기고 싶지 않아서 “아니, 아무일도 없어요!”하고는 객실 쏘파에 앉아 혼자 생각에 잠겼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재무과장을 십여년간 해온 엄과장이 남편이 퇴직하기 전에 한번 존엄을 세워주고 싶었던 모양이구나. 하지만 남편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본인도 싫다는데 그 일 때문에 몇년간 언니 동생하며 친형제처럼 보낸 나를 구박할 필요가 있을가? 뭔가 필시 내가 모르는 일이 있을 거야! 하지만 엄과장은 누구든지 한번 잘못 보면 영원히 마음을 풀지 않는다고 소문이 있는데 이제 다시 이전처럼 나를 대할 수 있을가? 부과장이라지만 과장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처진데 령도와 의견이 맞지 않으면 어떻게 계속 사업을 한단말인가? 드센 엄과장은 재무실의 모든 실권을 장악하고 동료들도 늘 엄과장의 눈치를 보는 상태이다. 련옥이는 자기의 앞날을 생각하니 근심이 태산같았다.

그 후부터 동료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녀와 거리를 두고 말을 섞기 싫어했다. 필요한 업무상의 일만 처리하고 다른 불필요한 얘기는 일체로 건네지 않았다. 경숙이는 엄과장과 부쩍 친했고 엄과장실에 들어가 종종 한담하군 하였다. 이전에 엄과장이 문을 빼꼼 열고 “련옥이…”하고 부를 때마다 시기와 질투로 입을 삐죽거리던 경숙이가 요즈음은 그 전날 련옥이처럼 엄과장 사무실에서 종종 붙어있다.

자기를 투명인간으로 대하는 동료들 속에서 련옥이는 암흑 속을 걷는 기분으로 매일매일 억지로 버텼다. 엄과장과의 관계를 완화시키려고 일거리를 찾아 들고 사무실로 찾아갔지만 공기도 얼어붙을 것 같은 랭랭한 표정에 기가 질린 련옥이는 화해하려는 시도도 못해보고 포기하고 말았다.

꿔온 자루처럼 동료들과 제대로 어울리지도 못하며 련옥이는 장장 반년이란 시간을 버텄다. 그동안 그녀는 실면에 시달리며 밤잠을 하루도 제대로 자본 적이 없었다. 힘들게 얻은 기회인지라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지만 동료들의 버림을 받은 것 같다는 생각에 제일 힘들었다. 더 버티다가는 자신을 잃고 우울증에라도 걸릴 것 같았다. 그동안 재무실을 떠나려고 수없이 생각했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였는데 더는 버틸 의지도 힘도 없었다. 실로 제일 넘기 어려운 것이 사람의 벽인 것 같았다. 이기지 못할 바엔 피하란 말도 있지 않는가? 나를 환영하지 않는 곳에서 억지로 자기를 괴롭히며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오랜 고민 끝에 련옥이는 끝내 용단을 내리고 재무실을 주관하는 김부원장을 찾아갔다. 똑똑 문을 두드리고 원장실에 들어가니 김부원장이 “최과장이 어쩌다 오셨습니까? 어서 앉으십시오!”하며 깍뜻이 맞아주었다. 련옥이는 쏘파에 앉아 어떻게 입을 뗄가 망설이다가 단도직입적으로 “원장님, 아무래도 제가 재무과 부과장을 계속 한다는 건 무리인 것 같습니다. 절 다시 수금실로 보내주세요!”하고 찾아온 연유를 얘기하였다.

김부원장은 몹시 놀란 표정을 지으며 “최과장이 업무도 깔끔히 잘 처리하고 수금실이며 기타 부문의 직원들도 최과장에 대해 평가가 높은데 무슨 일로 그만두겠다고 하시는 겁니까? 무슨 일인지 제가 나서서 조률해볼 수 있을가요?”하며 리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련옥이는 차마 영문도 모르게 집단 따돌림을 당한 사실을 차마 입 밖에 내비칠 수 없었다.

“원장님의 호의에 감사합니다. 저에게는 재무실 업무보다 수금실 업무가 더 적합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꼭 저를 수금실로 내려보내주세요!”

련옥이의 강경하면서도 간곡한 부탁에 김부원장은 “네, 알겠습니다. 최과장한테 꼭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럼 일단 엄과장과 상의하고 결정하는 대로 통지하겠습니다.”하며 참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틀 후 련옥이는 수금실로 출근했다. 부원장의 전화를 받았다면서 수금실 반장 쇼왕이 반갑게 맞아주는 것이였다. 부과장으로 있었던 기간 련옥이는 자기가 수금실에서 고생하였던 경력을 떠올리며 수금실 직원들에게 능력껏 관심을 주었다. 명절 때면 꼭 과일꾸레미를 들고 수금실과 입원병동에서 당직을 서는 직원들을 찾아 명절 인사를 하였고 매년 재무실만 참가하던 봄, 가을철 들놀이도 련옥이가 부과장직을 맡으면서 수금실, 입원병동 수금실 직원들까지 다 함께 참가하게 하였다. 수금실 직원들은 이런 따뜻한 관심에 련옥이를 무척 존경했다.  

련옥이가 재무실에 있은 몇년 사이 수금실 업무도 많은 개진을 가져와 의사가 환자의 진단서 내용을 컴퓨터에 입력하면 환자는 수금실에서 돈만 지불하면 되였다. 몇년 전보다 능률이 빨라져 환자들이 너무 오랜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도 없었고 수금실 직원들이 의사들의 처방 글씨체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 의료비를 틀리게 계산하던 상황도 발생하지 않아 수금실 전체가 환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련옥이가 수금실로 자리를 옮긴 후 경숙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부과장으로 승진했다. 련옥이는 일층 수금실의 창가에 앉아 엄과장과 경숙이가 안하무인격의 표정을 짓고 대청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언젠가 수금실로 환자를 모시고 왔던 재무실의 꼬맹이 출납이 기어코 수금실에 들어와 련옥이와 이말 저말 하더니 “언니가 떠난다니 난 마음속으로 너무 서운했어요. 우리 그동안 얼마나 재미있게 보냈어요? 그날 음식점에서 나온 후 언니만 빼고 다른 곳에서 모였어요. 그때 우린 다 눈치챘어요! 언니와 엄과장은 무슨 꼭 큰 모순이 있겠다구요. 아마 다른 사람들도 언니를 그렇게 대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엄과장의 눈에 날가봐 그랬을 거예요!”하며 옛날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이였다. 비록 늦었지만 어린 출납이 마음을 털어놓고 말해주니 그동안 재무실에서 쌓였던 억울함이 다소 가셔진 듯 마음이 한결 개운해졌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지나간 일인 데 이제 다시 생각한들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런 욕심도 가지지 말고 조용히 수금실에 있다가 퇴직하기만을 기다리자! 련옥이는 퇴근하면 아무런 걱정도 없는 단순한 직장일에 차츰 마음을 안착하고 있었다. 남편은 안해가 제시간에 맞춰 퇴근하여 집을 지키는 것이 퍽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그날도 련옥이가 예전처럼 출근하여 아침부터 수금하느라 다망히 보내는데 반장 쇼왕이 “언니, 김부원장실에서 언닐 찾아요. 여긴 내가 보고 있을 테니까 얼른 올라가봐요.”하며 련옥이를 재촉하는 것이였다.

    무슨 일로 나를 찾는 것일가? 련옥이는 머리속에 온통 의문을 품고 눈길도 돌리고 싶지 않았던 행정청사 10층으로 올라갔다. 똑똑 하고 부원장실 문을 떼고 들어갔더니 사무상에 앉아있던 김부원장이 일어나 반기면서 쏘파에 앉으라며 자리를 권한다.

    “최과장님, 요즘 수금실 업무는 좀 어떤가요? 최과장의 능력으로 사실 거기가 있어야 할 자리는 아니지요. 제가 오늘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최과장이 우리 병원 재무과를 이끌어 달라고 부탁하려는 겁니다.”

    부원장의 말에 련옥이는 하마트면 쏘파에서 용수철마냥 튕겨 일어날 번했다. 그러는 련옥이를 바라보며 부원장은 계속 말을 이었다.

    “아직은 단위에서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엄과장과 경숙 부과장이 기률검사실에서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증거를 다 확보한 상태입니다.”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라더니 이런 일 다 있다니?

    련옥이는 놀란 가슴을 진정하며 너무 급작스러운 사태 전개에 뭐가 뭔지 통 머리가 돌지 않아 멍해 앉아있었다.

    “최과장과 그동안 지내와서 알지만 실력도 있고 정직하고 과원들한테도 많은 관심을 보내여 수금실에서도 최과장에 대해 평가가 좋습니다. 우리 령도층에서는 연구와 토론을 거쳐 최과장이 재무과 과장을 맡는 것이 제일 적합하다고 결정했습니다. 재무과에 지금 두 과장이 자리를 비웠으니 아마 많이 당황해하고 있을 겁니다.”

    김부원장은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

    “이제 얼마 안 지나 병원의 결정이 공개되면 외부에서도 과장자리를 탐내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령도측에서 연구 결과 그래도 우리 병원 내부에서 업무에 능숙하고 사람 됨됨이도 훌륭한 최과장한테 과장 자리를 맡기는 것이 합당하다고 결정 지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오늘 급히 찾았습니다. 지금 당장 결정 내리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될수록 빨리 결정하고 저한테 알려주십시오.”

    김부원장의 정중한 태도에 련옥이는 일단 “령도층의 신임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에게 좀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인츰 답장을 드리겠습니다.” 하고는 부원장실을 빠져나왔다.

    행정구역 복도는 이전과 같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하였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가? 과장자리에 앉으면 유혹도 클 것이다. 엄과장도 십여년간 청렴하게 자신을 지켜오다가 왜 그런 착오를 범했을가? 휴… 경숙이는 그 부과장자리에 얼마나 올라가고 싶었으면 횡령까지 했을가? 엄과장은 경숙이 때문에 날 그렇게 내쳤을가? 련옥의 머리속은 불시에 오만가지 생각으로 터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남편과 상의 끝에 다시 재무실로 돌아가기로 했다. 비록 재무실에서 가슴 아픈 일이 었었지만 자기가 업무상, 생활상에서 착오를 범한 것도 아닌데 다시 당당하게 돌아갈 수 있지 않는가? 그녀가 재무실로 돌아간다니 수금실의 동료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면서 앞으로도 자기들을 많이 관심해달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권리로 자기의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엄과장의 허영심이 결국은 본인을 해쳤고 그 허영심을 리용하여 동료를 짓밟고 자기 욕심을 채웠던 경숙이에게도 마땅한 징벌이 내려졌다. 사람의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고 죄를 지었으면 언제든지 징벌을 받게 되여있는 것이다. 련옥이는 자신을 재무실로 데려오고 동생처럼 생각해주던 엄과장이 안스럽고 안타까왔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지금 련옥이는 엄과장과 재무실 동료들을 용서하리라 마음먹었다. 엄과장이 없었다면 재무실로 옮길 수도 없었을 것이고 그래도 엄과장 덕분에 많은 업무 지식을 배우지 않았는가? 그리고 남들이 겪어보지 못한 그 힘든 시간들이 자신를 더 단단해지고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성장시키지 않았는가? 그동안 현실에 만족하며 살려고 악을 쓰며 노력해도 늘 가슴 한구석에 숨어서 련옥이를 못살게 굴던 증오와 원망이 풀리자 련옥이는 주위의 모든 사물들이 명랑한 모습으로 그녀한테 다가오는 것 같았다.

    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낯익은 얼굴들이 그녀를 반갑게 맞아주는 것이였다. 언제 준비했는지 제일 나이 어린 출납은 아름다운 꽃 한묶음을 련옥이 가슴에 안겨주었다. 두 남자 회계도 어색하게 웃으며 “재무실로 돌아온 걸 환영하오.”하며 그녀를 맞아주었다.

    련옥이는 열정적으로 동료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하고 허리 굽혀 공손히 인사를 하였다. 일년 만에 또다시 재무실로 돌아온 련옥의 마음은 감개무량하기 그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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