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 단상 □ 박성우

2024-02-02 08:41:42

쌓아온 년륜의 두터움에 감동이나 한 듯이 오늘은 대설이나 해빛이 맑게 비추면서 눈이 올 기미는 보이지 않고 날씨가 부드럽다. 참으로 아름다운 하늘이다. 이런 날씨를 미리 예측이라도 했는지 오늘 학교 퇴직교원 지도부에서는 송년회모임을 조직하였다.

오늘따라 가슴이 설레이고 마음이 들뛴다. 선물을 준다 해서도 아니고 점심식사가 마련되여서도 아니다. 오늘 가면 보고 싶던 얼굴들을 볼 수 있고 회포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2007년에 퇴직하였을 때만 하여도 퇴직교원들의 모임이 나로서는 아주 서먹서먹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2005년에 전근한 학교를 2년 후 퇴직하였는데 앞서 퇴직한 선생님들 얼굴과는 초면이였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같은 교연실이였던 선생님이 있어 많이 의지되였다. 그럭저럭 몇년 지나서 타향살이 10년까지 하고 오다나니 서먹하긴 마찬가지였으나 그사이 낯익은 몇몇 선생님들이 퇴직조직에 합류하여 말동무가 많아졌다. 금년 로인절과 교원절 활동에 참가하고 나니 퇴직교원조직에 많은 애착이 갔다. 사람이란 언제나 지난날 미련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줄 알아야 함을 느꼈다.

세월의 궁둥이에는 불이라도 달렸는지 어느덧 한해가 저물고 또 송년회를 하게 되였다. 회의실에 들어서니 낯익은 얼굴들이 한눈에 안겨온다. 기분이 좋아져서 집에서 떠날 때 머리가 좀 어지럽던 것이 말끔히 사라졌다. 회의실 앞쪽에서는 조장선생님들이 한창 퇴직인원들을 위한 보험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서 보험비를 내니 “감사합니다.”  하는 친절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슴이 훈훈해났다. 수고는 그들이 하는데 내가 감사의 인사를 받으니 말이다.

이번 송년회 모임엔 80여명 퇴직교원들이 참석하였는데 모두들 희색이 만면하였고 60대 녀성들은 차림새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십년은 젊어보여 회의장은 아름다운 화원을 방불케 하였다. 그 꽃밭 속에 끼워 함께 수다를 피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주책인 것 같아 차마 속내를 못 내고 점잖게 앉아있었다. 그러다 나니 보고 싶었던 몇몇 녀성교원과도 몇마디 인사말 밖에 건네지 못했다.

회장이 송년회 시작을 선포하면서 한 나이 지긋한 녀교원을 무대에 모시는 것이였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모두들 의아한 눈길로 집중하였다.

“여러분, 이분 누구신지 아시죠. 바로   리직하신 김은숙 선생님이십니다. 오늘 우리 퇴직조직에 2천원이나 기부하셨습니다.”

회장의 말소리가 끝나기 바쁘게 “와!” 하는 감탄의 소리와 함께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대단하군. 이 년세에 돈을 기부하시다니.’

나는 탄복을 금할 수 없었다.

“김은숙 선생님께서는 몇년 전에도 우리 활동경비로 보태라고 천원을 기부하셨습니다. 오늘 선생님께선 두 아들의 부축을 받으시며 이 장소에 참가하셨습니다. 얼마나 대단하십니까.”

회장이 마이크를 김은숙 교원의 손에 쥐여주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의 저그마한 마음입니다. 제 나이  아흔하나인데 이 늙은 것을 행사 때마다 잊지 않고 불러주신 회장선생님과 여러 선생님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 말에 나는 가슴이 울컥해났다.

‘내가 만약 저 나이가 되면 어떤 모습일가.’

순간 남이 마련해준 밥상에 생각 없이 숟가락만 얹은 내가 한없이 초라해났다. 아, 배려와 사랑의 빛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구나. 나 뿐만 아니라 다른 교원들도 감동을 받고 충격을 느낀 모습이였다.

김은숙 선생님은 무대에서 내려오며 춤을 둥실둥실 추었는데 다른 교원들도 제꺽 박수치며 합창을 하여 분위기를 끌어올리였다.

이어서 조회장이 오늘 송년회를 조직하게 된 경위에 대해 상세한 보고를 하였다. 무대 우 조회장의 모습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조회장을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것은 지난해 한학교에서 근무하던 어느 선생님의 장례식에서였다. 나한테 반갑게 인사하길래 어정쩡히 인사를 받았다가 다시 뜯어보고서야 누군지를 알아보고 반색을 하였다. 너부죽한 얼굴에 인자하고 자애로운 빛이 함뿍 담긴 그녀에게서 나는 감동을 받았다. 학교 재직, 퇴직일군의 관혼상제에 모두 참가하는 조회장에게 순간 존경의 마음이 확 솟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책임감이였다. 퇴직교원조직 회장이 이런다고 영예가 차례지는 것도 아니고 누가 수당금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기가 맡은 책임이라는 끈이 그녀로 하여금 마음과 몸이 움직이게 이끈 것이 아닐가 싶다. 물론 배려와 관심의 마음이 우선일 게다. 수년간 하루와 같이 여러 사람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은, 그것도 로인들을 위해 굳은 일에 발벗고 나선다는 것은 말이 쉽지 가슴에 뜨거운 사랑이 없이는 될 수 없는 것이다.

이어서 지난해 활동경비 사용 상황을 설명하는 부회장의 목소리에 나는 상념에서 벗어났다. 이쁘장한 얼굴에 청량한 목소리는 무대를 한결 환하게 하였다. 그녀의 활달한 표정은 앉은 모든 사람들이 앞으로 더욱 이들을 믿어주고 격려해주며 뒤받침해주리라는 마음을 가지게 하였다. 8년간 두 회장은 실로 수고가 많았는데 우리의 어머니다운 녀성상이였다. 퇴직조직 성원들은 모두다 로인들이라 여기에는 궂은 일 내놓고 뭐가 더 있을가. 한해에 서너번 대형 활동만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불상사, 병문안, 운신이 어려운 분들이 머무는 양로원 방문도 다닌다 하니 그 수고가 참으로 존경과 찬양을 받고도 남음이 있지 않는가.

점심식사가 시작되자 모두의 모습은 마치도 유치원 어린이들이 밥 먹듯이 조용하고 사랑스러웠다. 식사할 때 떠드는 것이 실례인 듯 모두 그렇게 얌전하다.

“식사하시고 노래 부르고 춤추며 잘 놀아봅시다.”

그런데 반응이 별로이다. 아마도 평생을 교원사업에 몸담은 그 습관이 몸에 그냥 배여있는 듯하다. 재직일 때 우리에게 오락은 너무나 멀리 있었다. 식사를 끝낸 90대, 80대, 70대 후반들은 슬밋슬밋 자리를 뜬다. 아마도 오락에 흥취가 없는 모양이다. 어쩐지 마음이 짠해났다. 평생 휴식일이 따로 없이 사업에만 몰두하다 보니 퇴직해서도 오락을 마음놓고 즐기지 못하고 조신한 모습이다. 남성선생님들 상에도 열명이서 술 한병이니 족했다. 인젠 나이도 들고 몸도 따라가지 못하니 술도 적당량만 마시고 강권하는 옛 모습이 사라졌다.

이윽고 60대 녀교원들이 마이크를 들고 노래하는 모습이 안겨온다. 남자들도 두 어깨를 들썽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여태껏 듣지 못하였던 청량한 노래소리이다. 한창 흥이 돋으며 노래하고 춤추니 청춘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오락이 끝나니 너도나도 얼굴을 마주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몇달에 한번 만나는 얼굴이 되였으니 어찌 아쉽지 않으랴.

“자주 만납시다. 이런 모임이 아니라도.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는데 가끔은 만나서 마음도 밥도 나누며 삽시다.”

지난 로인절을 쇨 때의 일이 떠오른다. 나와 이웃하고 있는 어느 사업단위 퇴직녀성과 얘기가 오갔다.

“우리 학교에서는 8월 16일에 로인절을 쇱니다. 선생님네는 언제 쇱니까.”

나의 물음에 그녀가 손사래를 쳤다.

“아이구, 말도 마세요. 우린 오래동안 명절이란 거 못쇴어요.”

“왜요?”

나의 물음에 그녀는 풀이 죽어 대답했다.

“나서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요. 대부분 녀자들인 우린 책임자도 없단 말입니다. 누구도 하려 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실망스러운 일인가. 순간 우리도 이런 상황에 놓이면 어떻게 할가는 생각이 스쳤다. 더불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를 새삼스레 느끼게 되였다.

지난날 나는 퇴직교원 생활과 활동에 대해 강 건너 불 보듯하며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 여겨왔고 늘 적극적이 못되고 울며 겨자먹기로 참가하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얼마나 못나고 어처구니 없었냐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혹시 다른 퇴직인원들도 나와 같은 그릇된 생각을 가진 분이 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도 든다.

퇴직일군들이 의지할 곳은 퇴직조직 뿐이다. 그러니  조장들과 회장들의 수고에 물개박수를 힘차게 쳐주며 호응 잘하는 것 또한 우리의 책임이라 생각한다.

우린 정말 행운아이이다.  60대, 70대, 80대, 90대들로 이루어진 우리, 140여명으로 이루어진 식구들이 어찌 모두 마음이 맞으랴. 손가락도 길고 짜른 것이 있듯이 성격이 다르고 마음도 다르며 처한 환경도 다를 터이다. 그러니 투정을 부리는 로인들도 가끔은 있을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의 고운 일도 미운 일도 다 가슴에 품고 일하는 회장과 조장들이 한없이 존경스럽다.

석양은 붉고 아름답지만 이미 내리막 길에 들어섰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 없다. 우리 네 세대 사람들은 살아온 세월 만큼, 밤하늘의 별 만큼 사연도 많다. 그러나 이젠 흘러간 물이다. 교원 그리고 학교라는 이 끈이 우리 모든 퇴직교원들을 이어놓고 묶어놓았다. 그러니 우리 모두 ‘친구’라는 이 단어에 뭉쳐 우정을 쌓아가야 함이 옳지 않을가. 언제나 ‘나는 동산 마루의 둥근 태양이다.’라는 희망을 품고 매일 기분 좋으면 그만이다. 세월이 좋아 우리에겐 훌륭한 활동 여건이 주어졌고 믿음직한 키잡이들이 있다. ‘송년회’란 지나간 한해의 흔적들을 정리하며 항상 음지가 아닌 양지에 있다는 즐겁고 유쾌한 심정과 행복한 마음을 가지도록 하는 활동이라 생각된다.

퇴직일군들의 여생의 목표는 건강을 챙기면서 사회에 유익한 영향을 주는 것 뿐이라. 항상 인, 의, 례, 지, 신이 가슴에서 끓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유한한 여생을 의미 있게 보내자. 잔병이나 근심 걱정을 모두 다 털어버리고  항상 긍정에 넘치는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것 뿐이라.

희망도 행복도 우리 마음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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