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내음□ 김미란

2024-05-31 09:19:50

민들레아빠트 구역이 가까워오자 청미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무거운 책가방이 가냘픈 어깨에 매달려 숨을 할딱거리고 있었다. 청미는 내키지 않은 걸음으로 늘쩡늘쩡 아빠트입구에 들어섰다. 배에서 꼬르륵- 신호가 울렸다. 그제야 하루종일 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이였다. 청미는 환성에 가까운 엄마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여났다.

“여보세요! 이리 와봐요. 우리 왕자님이 노란 닭알부침을 만들었어요!”

호기심에 객실에 나가보니 엄마가 누런 오물이 묻은 기저귀를 손에 받쳐들고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청미는 가까스로 구역질을 삼켰다. 하지만 밥상에 마주앉은 청미는 더는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재수 없게 닭알부침이 달랑 앉아 얄궂게 웃고 있었던 것이다.

겨우 점심을 기다려 도시락을 집어든 청미는 하마트면 비명을 지를 번하였다. 커다란 닭알부침이 거기에서 혀를 홀랑거리고 있었다. 청미는 겨우 구역질을 참고 밖으로 나갔다.

출입문에 매달아놓은 고추에 눈길이 미치자 청미의 얼굴에는 얇은 그늘이 언뜻 스쳐지났다. 머리 속에는 건용이가 태여나던 날의 추억이 영화필름처럼 떠올랐다.

사랑을 송두리채 빼앗아가고 속옷에 들어간 껄끄러운 도꼬마리처럼 청미를 불편하게 만드는 남동생의 이름은 건용이였다. 돈을 퍼주고 지은 이름답지 않게 너무너무 평범하고 또 귀에 거슬리였다. 건용이가 태여나는 날, 온 집 식구가 총출동하여 수술실입구에 대기하고 있었다. 아빠는 커다란 꽃바구니까지 안고 왔었다.

수술실 문이 벌컥 열리자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 우르르 몰려갔다. 할아버지는 후들후들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꿈이냐? 생시냐? 드디여 고추가 태여났구나. 우리 장손! 어디 보자!”

청미는 문가에 외롭게 서서 웃고 떠드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면서 외로움에 몸을 흠칫 떨었다.

“요 녀석, 너무 잘 생겼구나! 엄마, 아빠의 좋은 것만 닮았네. 강굴강굴 곱슬머리에 쌍거풀까지…”

이모가 다가와 외롭게 서있는 청미의 등을 떠밀며 말하였다.

“얘는 누굴 닮았나요? 가무잡잡한 얼굴에 눈까지 작잖아요.”

“글쎄다. 혹시 다리 밑에서 주어왔잖았을가!”

할머니가 이모를 흘깃 흘겨보며 다소 청미의 서운한 마음을 달래주었다.

청미는 시답잖은 눈으로 강보에 싸인 아기를 흘깃 바라보았다. 아기의 머리도, 얼굴도, 손도, 발도 조그마했다…

아기침대에 누운 건용이를 모두들 머리를 맞대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청미는 자신이 건용이와 바뀌였으면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였다…

건용이가 태여나기 전 엄마는 청미에게 줄곧 경어를 사용하였다. 그때는 이런 엄마가 얼굴에 돋은 여드름처럼 싫었었다. 청미가 신도 벗지 않았는데 엄마는 련주포 쏘듯 묻군 하였었다.

“미술학원에 가 무엇을 그렸어요? 전자풍금학원에는 제시간에 갔어요?”

그때마다 청미는 꼬박꼬박 대답을 잘했다. 그러나 지금은 옛말로 되였다. 지지콜콜 잔소리를 듣지 않으니 속이 없는 물만두를 씹었을 때처럼 맹랑하였다. 하학하면 엄마가 직접 숙제를 지도해주군 하였는데 지금은 아예 학원에 맡겨버리였다.

건용이가 태여난 후부터 엄마는 도시락도 챙겨주지 않았다. 건용이가 태여나기 전 엄마는 정성을 들여 도시락을 챙겨주었다. 새하얀 이밥 우에는 완두콩으로 하트가 그려져있었고 반찬통에는 나비모양으로 곱게 접은 쪽지와 예쁘게 깎은 과일이 담겨있었다. 옆에 앉은 짝꿍은 번마다 그 쪽지를 부러움에 어린 목소리로 애들에게 읽어주군 하였다.

튀김도 늘 은박지에 곱게 싸서 넣어주군 하였다. 애들한테 튀김을 나눠줄 때 청미는 가장 행복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애들과 함께 맛없는 도시락을 먹어야 하였다.

소스라치듯 추억에서 깨여난 청미는 떨리는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꽉 닫혔던 출입문이 왈칵- 열리자 청미는 깜짝 놀라 뒤걸음질 쳤다.

“문을 두드리지 말라고 몇번이고 말했니! 건용이가 놀라 깬다!”

엄마의 고성에 몸을 흠칫 떨었다.

그래도 청미는 엄마가 정답게 다가와 가냘픈 어깨를 무겁게 지지누르고 있는 책가방을 벗겨주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엄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방에 들어가  음조가 틀린 자장가를 반복해 불렀다.

건용이가 태여나기 전 엄마는 청미가 집에 들어서면 책가방부터 받아내리였다. 그리고 힘있게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공주님, 어서 씻고 오세요. 엄마가 맛있는 떡볶이 만들었어요. 따뜻한 우유와 함께 먹어요.”

엄마의 목소리는 늘 맑고 명랑했다. 그래서 학교생활에 그을려 누렇게 시들어졌다가도 새순이 돋아나듯 기운이 저절로 났다.

엄마에게서는 늘 맛있는 음식냄새가 풍기였다. 떡볶이는 매콤하면서도 달콤했다. 쫄깃쫄깃 씹히는 맛, 혀끝에 감도는 치즈향기… 떡볶이는 엄마가 제일 자신 있게 만드는 료리중의 하나였다.

지금은 아기분냄새만 풍기였다. 숙제를 하려던 청미는 연필을 팽개치고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남동생 건용이가 태여난 뒤로 식구들이 자신을 미워한다는 생각이 들며 설움이 북받쳤다. 온몸의 힘이 발가락 사이로 살살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엄마는 피곤하다는 말을 늘 밑반찬처럼 달고 살았다. 웃음기라군 조금도 없이 늘 잠이 모자란 사람처럼 하품만 하였다. 건용이가 자면 엄마는 코를 드렁드렁 골면서 잠을 잤다. 머리가 삼거웃처럼 흩어져 잠옷만 입고 있는 엄마를 볼 때면 청미는 숨이 막혀왔다. 자리를 차고 일어나 발을 탕탕 구르면서 2층 층계를 올라가던 청미는 그만 날카로운 침에 찔려서 박제된 나비표본처럼 그 자리에 정물처럼 박혀버리고 말았다.

2층 아빠의 서재문에 난데없이 ‘왕자방’이란 깜찍한 패쪽이 붙어있었다. 문손잡이에는 분홍색 리봉이 매여져있었다. 청미는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섰다. 저도 몰래 탄성이 터져나왔다. 아빠의 서재는 새롭게 꾸며져있었다. 앙증맞은 벽지, 깜찍한 침대, 천정에 대롱대롱 매달린 장난감… 백화상점 장난감매대를 통째로 옮겨온 듯싶었다.

커다란 장난감을 매달아놓은 아기침대는 구름 우처럼 폭신할 것 같았다. 강아지 베개를 보자 한번 베보고 싶었다. 청미는 까치발을 하고 아래층을 내려다보았다. 잠기 어린 자장가소리만 단조롭게 들려왔다. 시름 놓고 홀짝 아기침대에 올라가 베개를 안고 몸을 옹송그리고 누웠다. 침대에서는 젖내음이 솔솔 풍기였다. 너무나 향기롭게 폭신해 소르르 졸음이 왔다…

찰칵-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햇솜처럼 나른해 일어날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눈을 떠보니 건용이였다. 놀랍게도 건용이가 강보에 싸인 채로 다가와 베개를 빼앗으려고 하였다. 청미는 베개를 꼭 그러안았다. 건용이가 이발도 없는 이몸을 드러내면서 물려고 달려들었다. 청미는 비명을 지르며 베개를 팽개쳤다.

엄마가 다가오더니 가볍게 꾸짖었다.

“곰같이 실팍한 몸집에 침대가 망가지겠다. 얼른 내려!”

청미는 서운한 마음을 안고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건용이가 태여난 뒤로 엄마는 몰라보게 변해버리였다. 청미와 말도 별로 하지 않았고 조금만 뛰여다녀도 무섭게 눈을 흘기였다. 친구들을 불러들여 놀려고 해도 “니들 나가 놀아라, 어느 땐데 놀러 다니니?”하고 곡식밭의 참새떼를 몰아내듯이 내쫓군 했다.

아이들은 입에 묵직한 따발을 걸고 물방울처럼 흩어지군 했다.

엄마는 소리에 특별히 민감했다. 음악을 들으려고 하면 “건용이가 잔다. 소리를 낮춰라! 소리를!” 하고 소리쳤는데 엄마가 질러대는 소리에 건용이가 도리여 깨나 울군 하였다.

성격이 가시 끝처럼 민감해지는 엄마 때문에 청미는 음달 밑에서 자란 풀처럼 시들어갔다. 게다가 아빠는 청미를 두둔하는 대신 번마다 혀를 홀랑 내밀며 식지를 입가에 대고 아닌 보살을 떨군 하였다. 청미는 늘 폭죽소리에 놀란 새처럼 집안에서도 몸을 움츠리였다.

건용이가 태여난 후 엄마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이전에는 누가 방귀를 뀌면 더럽다면서 한겨울에도 창문을 와락와락 열어 젖히였다. 그러나 지금은 건용이가 똥을 싸도 기뻐하였다. 엉덩이에 뽀얗게 아기분을 발라주고도 성차지 않아 따라다니며 입을 맞추면서 말하였다.

“왕자님 엉덩이 금방 쪄낸 밀가루빵 같아.”

청미는 베개를 안고 무작정 아빠 엄마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여느때처럼 건용이한테 젖을 먹이고 있었다. 건용이는 엄마의 품에 안겨 꼴깍꼴깍 젖을 빨아먹고 있었다. 젖을 먹는 모습이 재미있고 부러웠다.

청미의 머리속에서는 숱한 물음표가 맴돌아쳤다.

“나도 엄마 젖을 먹었나요? 발이랑 손이랑 요렇게 작았나요?”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모유는 어떤 맛일가? 완달산우유 맛일가? 아니면 쵸콜레트맛일가?

청미는 한모금 먹고 싶었다. 아니 단 한번이라도 엄마 냄새를 맡으면서 엄마 가슴에 코를 묻고 자고 싶었다. 청미는 엄마가 고개를 돌린 사이 건용이의 입가에 묻은 젖을 손가락 끝으로 살짝 찍어 맛보았다. 식어버린 우유맛이라 할가?

“엄마, 나 오늘 여기서 잘래.”

엄마는 청미를 품에 안고 볼에 뻑- 소리 나게 뽀뽀를 해주었다.

“우리 공주님, 서운했구나.”

아빠는 청미의 이마에 가볍게 꿀밤을 먹이고는 객실로 나갔다.

엄마는 청미를 꼭 그러안았다. 향긋한 엄마 냄새가 코끝에 와닿았다. 엄마의 품은 포근했다. 해볕 좋은 베란다에서 잘 말려진 이불 같이 포근했다. 문득 손이 엄마의 봉긋한 젖가슴에 닿았다. 고무풍선을 만졌을 때 느꼈던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촉감이였다. 청미는 몸을 옹송그리고 엄마의 품을 한사코 파고 들었다… 엄마 냄새에 취해 졸음이 왔다. 청미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잠결에 문 닫는 소리가 가볍게 들려왔다. 어둠 속에서 엄마를 부르며 몸을 일으켜 탁상등을 켰다. 방안의 모든 것이 너무나도 익숙하게 안겨왔다.

“분명 엄마의 품에서 잤는데…”

깊이 잠든 사이에 살짝 안아다 놓은 것이 분명했다. 청미는 배신감에 몸을 흠칫 떨었다. 자신이 비바람 속에 홀로 팽개쳐진 아이처럼 느껴졌다. 가슴 한구석에는 엄마에 대한 미움이란 싹이 움트기 시작했다.

건용이가 미웠다. 아니 싫었다.

청미는 앙큼한 보복을 감행하기로 하였다. 바로 건용이한테 하루종일 운동화 속에 있었던 고약한 발냄새를 맡게 하는 것이였다. 청미는 엄마가 곁에 없는 틈을 타서 건용이한테 시커먼 양말을 들이댔다. 건용이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더니 손을 내밀었다. 양말이 손에 닿자 입을 짝 벌리였다. 청미는 황급히 손을 움츠렸다. 양말은 건용이의 얼굴에 떨어졌다. 엄마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지자 청미는 재빨리 양말을 감추었다. 속으로는 깨고소하였다.

건용이는 기여다니면서부터 점점 얄미운 짓만 하였다. 손에 쥐기만 하면 무엇이든 진저리가 날 정도로 물어뜯거나 빨군 했다. 자칫 한눈을 파는 사이에 필갑통을 마구 뒤집어놓지 않으면 핸드폰에도 침을 잔뜩 발라놓았다. 복습제강도 건용이의 손에서 곤죽이 되여버리였다. 청미는 울며 겨자먹기로 밤을 지새우면서 다시 정리하였다.

엄마는 위로 한마디 하지 않았다. 청미의 작은 어깨에는 외로움이 가득 쌓여있다. 가슴속에는 괴로움이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마구 뒤엉켜있었다. 그 누가 다가와 뒤엉켜진 가슴속을 헤집고 꽁꽁 닫긴 마음통에 열쇠라도 꽂아준다만 홀가분할 것만 같았다.

언젠가 하던 이모의 말이 귀가에서 맴돌아쳤다.

“다리 밑에서 주어왔잖을가?”

허겁지겁 일어나 가족사진을 꺼내보았다. 아빠, 엄마를 닮은 구석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설음이 솟구치면서 머리가 빠개질 듯이 아파났다. 청미는 필기장을 북- 찢어 색연필로 비뚤비뚤 글을 썼다.

“친부모는 어데 있어요? 그동안 날 키우느라고 수고 많았어요. 돈을 팔아 뚱뚱하게 키우느라고… 나를 찾지 마세요.”

눈물이 뚤렁뚤렁 종이장에 떨어지면서 꽃살을 그리였다. 쥐도 새도 모르게 집을 떠나고 싶었다. 머리속에는 울고불고하는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청미는 얼굴에 깨고소한 웃음을 그리며 종이장을 랭장고문에 붙여놓았다. 그리고는 출전하는 전사마냥 문을 쾅- 하고 소리 나게 닫고 집을 나섰다. 강변길을 따라 무작정 걷다가 다리 밑을 내려다보았다. 다리 밑에 버려진 나를 누가 주어왔을가? 만약 주어오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였을가? 청미는 어데론가 떠나고 싶었다. 그 어느 곳에서 누가 기다리는 것 같았다.

청미가 향한 곳은 역전이였다. 널직한 대합실은 휑뎅그레했다. 청미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친부모가 어데선가 지켜보는 것 같았다. 다리 밑에서 앙앙 우는 아기의 모습이 떠올랐다… 설음이 북받쳐 플라스틱의자에 얼굴을 파묻었다.

“청미야, 청미야…”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나를 찾았을가?

엄마는 허겁지겁 다가와 청미를 꼭 그러안았다.

“그동안 많이 서러웠구나. 엄마가 미안해. 넌 엄마의 살점이야.”

아빠가 청미의 잔등을 어루쓸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넌 아빠, 엄마의 친자식이야, 그동안 우리가 너에 대해 관심이 적었던 것 같은데 그것은 절대 네가 미워서가 아니란다. 엄마는 건용이를 낳을 때 출혈이 심해서 몸이 허약해진 데다가 산후우울증까지 겹쳐서 지금 극도로 피곤한 몸이야. 엄마가 이렇게 힘들 때이니 우리 한집식구가 리해해야 해. 아빠도 안팎으로 바빠서 그동안 너에게 무심했던 거 반성하고 있어. 엄마는 그렇게 힘든 몸을 가까스로 지탱하면서 밤중이면 일어나 네가 입을 세타를 직접 뜨군 하였단다.”

청미는 분명 엄마의 몸에서 달콤한 젖내음이 뿜겨나와서 자신의 몸을 감싸는 것을 보았다…

아빠, 엄마의 사랑이 청미를 포근히 껴안았다. 달콤한 젖내음이 청미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사랑이 느껴지자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뚤렁뚤렁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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