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촌은 예로부터 스물두호가 사는, 오붓하고도 그림 같은 동네였다.
동서쪽으로 산이 우뚝 솟아있는 이 마을은 봄이면 진달래가 피여 산이 붉게 타오르고 여름이면 산새들의 울음소리가 귀맛 좋으며 가을이면 자연이 내주는 온갖 곡식이 익어서 구수한 냄새가 가을바람에 실려 마을을 싱그럽게 했다. 마을 앞은 또 고동하가 가로질러 흐르는데 여름이면 그 강은 아낙네들의 빨래터이자 이야기터였고 청장년들이 더위를 식히는 피서처이기도 했다.
개혁개방 후 마을은 더구나 수려한 한폭의 그림으로 변했다. 덩실한 기와집, 골목마다 아스파트길, 집집마다 도시 부럽지 않은 인테리어…
그런데 언제부턴가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외국으로 떠나는 바람에 마을은 적막해졌다. 골목마다에 울려퍼지던 웃음소리가 적어졌고 흥에 겨워 부르는 젊은이들의 코노래에 걸음 멈추던 꽃구름도 보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건 늙은이 아니면 아이들이였다. 늙은이들은 서로 만나면 등허리를 두드리며 아픔타령을 했고 서로 전하는 안부도 한결같았다.
“집에 자식들은 언제 온답데?”
“모르오. 아픈 몸으로 손군을 공부시키는 게 힘들어서 돌아오라고 하면 대답도 없다오. 이 고생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쯧쯧.”
“고향을 깡그리 잊은 것 같고 집에 남아있는 우리를 잊은 것 같소. 정말 기막힌 일이요.”
처음에는 자식들이 아이를 부모한테 맡기고 외국돈벌이를 간 것이 그토록 자랑스러웠다. 공부하는 손군들의 뒤바라지를 좀 해주면 자식들이 보내오는 돈으로 농사일을 하지 않고도 풍족하게 살 수 있어서 행복지수가 올라가는 것을 느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차츰 삶의 행복이 물질적인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였다.
로인들은 이제는 서로 마주치면 골목에서 삶의 설음을 토해낼 뿐이였다. 한두해도 아니고 지루한 십년 혹은 더 긴 세월 동안 손군을 돌보고 공부시키면서 정작 자기는 놀랄 정도로 폴싹 늙어갔으니 말이다.
젊은이들은 떠날 때는 몇년만 벌고는 돌아오마 하던 것이 정작 돈벌이에 재미가 들렸는지 누구든 돌아온다는 기별이 없다. 뿐만 아니라 어떤 젊은이들은 그곳의 생활환경에 적응되여 혹간 집에 왔다가는 못있겠다면서 인차 훌쩍 떠나버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남편만 떠나간 집이 많았는데 후에는 안해들마저 다 가버렸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골치 아픈 건 촌 지도부대오 문제였다. 촌간부라면 그래도 나이도 한창이고 힘꼴이나 쓰며 무엇보다 머리가 명석한 사람이여야 하는데 30대부터 50대 지어는 60대도 보기 드문 상황이라 몇년 전부터 촌장 겸 지부서기를 부득불 전립선염을 수술한 민석이를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 60대중반인 데다 병으로 해서 얼굴이 가무잡잡하고 몸은 바짝 말라서 한눈에 환자란 걸 보아낼 수 있는 민석이였지만 언제 봐도 행동과 언어가 묵직하고 매사에 어긋남이 없었다. 이전에 돈 벌겠다고 외국에 갔다가 건강에 이상이 생겨 돌아온 후로는 그냥 약을 달고 살다가 몇년 전에 끝내 수술까지 받았다.
촌간부를 겸하면 1년에 만원도 넘는 수입은 올릴 수 있으니 조금은 힘들었지만 마다하지는 않았다. 하물며 민석이는 오래전부터 촌의 재무관리도 해온 터라 그만큼 리더십 기질은 있었다. 거기에 성격도 맺고 끊는 성미라 마을의 일들을 결단성 있게 내밀 줄 알았다.
마을 앞을 흘러지나는 고동하는 예로부터 물고기가 많아서 외국문이 열리기 전에는 여름 내내 집집의 반두가 마를 새 없었는데 지금은 물고기들이 자유세상을 맞아 들끓었다. 그저 혹간 재수없는 물고기들이 가끔씩 도시에서 오는 낚시군들의 유혹을 못이겨서 잡힐 뿐이였다. 고동하는 너비가 100메터 정도인데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은 어른들의 목까지 온다. 성격이 온화한 고동하는 60년대에 한번 마을을 침범한 적이 있은 후로는 수십년 동안 점잖은 모습으로 달렸는데 지난해에 무슨 심술이 났는지 사정없이 마을을 들이쳤다. 그래서 온 마을이 다 물에 잠겼다. 너무도 급작스레 들이치는 바람에 마을사람들은 겨우 옷견지만 싸들고 피신했다.
물사태가 물러가자 지원자들의 도움으로 복구사업이 일사천리로 진척되였다. 하지만 전기밥가마, 액화가스 그리고 저녁마다 매달려있다싶이 하면서 문화생활을 즐기던 텔레비죤도 새로 사야 했는데 대부분 가정이 이 모든것에 근심이 없었지만 일부 결손가정의 로인들은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문득 스피커에서 촌장의 흥분에 들뜬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촌민 여러분, 오늘 한가지 기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금방 청빈이가 전화왔는데 외지에 있는 우리 마을사람들이 마을의 수재정황을 알고는 합심해서 의연금을 저한테 보내왔습니다. 집집마다 필수품인 전기밥가마와 액화가스, 랭장고 그리고 텔레비죤을 사라고 말입니다.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 건 이번 의연금활동은 우리 마을의 말썽꾸러기였던 학수의 제안으로 진행되였다고 하는데 제일 먼저 10만원이나 쾌척했다고 합니다. 마을에서 그토록 골치거리였던 학수가 이런 행동에 앞장을 서리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지요? 정말 가슴 뜨겁게 스며드는 감동입니다. 이제 그들이 돌아오면 우리 꽃다발을 안겨줍시다. 그리고 이번에 련락이 닿아서 알게 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마을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학수라고 하면 마을에서 누구나 싫어했던 젊은이였다. 어릴 때부터 여기저기 시비를 걸고 다녀 소문났고 공부도 겨우 초중을 졸업한 데다 마을에서 농사는 뒤전으로 하고 무리를 지어 싸워서 몇번인가 파출소에 불리워가기도 했었다. 어른이 되고서도 버릇은 여전해서 부모의 속을 무던히도 태웠었다. 그러던 학수가 친구의 소개로 남방에 돈 벌러 가서야 마을이 조용해지게 되였다. 마을사람들은 은근히 그가 다시는 돌아오지 말았으면 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이 변하는 건 정말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고 학수가 이런 감동의 이벤트를 연출해낼 줄은 누구도 생각 밖이였다. 더군다나 워낙 말썽이 많았던 사람이라 모두 두 눈이 휘둥그래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후 며칠 동안 지원자들이 마을에 와서 집집이 깨끗이 청소를 해주었고 또 그 후 며칠간은 집집마다 전기밥가마와 액화가스 그리고 텔레비죤이 송달되였다.
홍수가 기세등등하게 마을을 덮쳐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지만 나라의 혜택과 마을 젊은이들의 후원 덕분에 마을은 다시금 면모가 일신되였고 어느 정도 안녕을 찾았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청빈이가 마을에 나타났다. 이어서 종국이, 호익이, 상진이, 학수…
로인들은 만나면 여전히 등허리를 두드리기는 했지만 안부인사가 바뀌였다.
“집에 아들은 또 간다오? 우리 아들며느리는 영 돌아왔답데.”
“우리 집 애들 말로는 다시는 안 간다고 합데…”
한달내에 열명도 넘는 젊은이들이 륙속 돌아왔다. 마을에는 다시금 생기가 넘쳤다. 골목에서 젊은이의 모습이 보이기만 해도 로인들의 얼굴은 공연히 해살이 내려앉은듯이 환해졌다.
어느 날 촌장이 자기 집에서 귀국한 사람들을 위한 환영식을 열었다. 환영식에 참가한 로인들은 술잔을 들고 너도나도 속심을 한마디씩 털어놓았다.
“자네들이 정말 인차 돌아오지 않으면 앞으로 늙은이들이 하나둘 돌아가고 마을이 텅 비여 이 좋은 기와집들을 어쩌나 싶었는데 끝내 돌아왔군.”
“앞으로 마을이 무인촌이 될가 봐 은근히 걱정했는데 이제는 우리도 시름을 놓았소.”
“여러분, 안 돌아오면 마을에 부강의 손길을 펼쳐주는 당에 미안하고 우릴 낳아주고 키워준 고향에 미안한 일이죠. 지금은 그 어디에서든 부지런히 일하기만 하면 잘살 수 있는 걸요. 고향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겠어요. 이제부터 우리는 고향을 잘 지켜나갈 것입니다.”
청빈이의 우렁찬 말에 젊은이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이구동성으로 웨쳤다.
“우리 고향의 부흥을 위해 건배! 건배! 건배!”
모두들 술잔을 굽냈다. 잔에 담긴 것은 술이라기보다 가슴 뜨거운 고향정이였다.
“힘꼴이나 쓰는 우리가 없는 줄 알고 홍수가 덮쳐온 것 같은데 인제부터는 우리가 무서워 다시는 범람하지 못할걸요.”
학수의 유머에 여기저기에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ㅡ”
술잔 부딪치는 소리, 서로 오가는 정겨운 이야기와 호탕한 웃음소리는 창문을 넘어 거리의 고요함을 깨우고 하늘가로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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