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이 란 …□ 김영자

2024-08-22 16:53:23

덜컥, 나도 코로나에 걸렸다.

남들처럼 며칠 앓고 툭툭 털고 일어나리라 생각하며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웬걸!

코로나 후유증으로 생각지 못하게 현재 일년째 생판 고생이다. 원래 박약한 신체소질이 강렬한 코로나를 당하기 힘들었다. 심장에, 페에, 신장에 차례로 모두 문제가 생겼다. 참으로 힘들어 혼자 울기도 하였고 때로는 삶의 끈을 놓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한번 뿐인 소중한 생명에 대해 너무 쉽게 포기한다는 마음에 치료에 달라붙었다. 의사선생은 나를 진맥하더니 어디부터 치료를 시작했으면 좋을지 도무지 모르겠다며 어려운 표정으로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만큼 병이 몸속 곳곳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설명했다.

“끝장이구나!” 하는 생각에 참으로 서러웠다. 75세,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고 로인이니 죽을 때가 가까워져 목숨이 별로 아깝지 않으련만 본능적으로 삶의 욕망은 오히려 불탔다.

“80까지만 살았으면…”

손 놓고 있기보다 일단은 여기저기 용하다는 의사부터 찾기 시작했다.

솔직히 지난 일년은 지옥과도 같았다. 매일 숨이 차고 기침이 나서 제대로 호흡을 할 수 없는 데다 맥박은 미친년 널 뛰듯 시도 때도 없이 높이 뛰며 사람을 참으로 못 견디게 굴었다. 눕지도 앉지도 못하고 하루종일 무거운 몸을 질질 끌면서 집안을 왔다갔다 하며 맴돌아야 조금이나마 안정이 되였다. 두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몸이 균형을 잡을 수 없어 비틀거리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넘어질지 몰랐다. 그래도 누울 수 없어 이를 악물고 걸었다. 앉지도 눕지도 못하게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상황이니 병원에 의사들도 별 뾰족한 방법이 없어했다.

코로나에 걸린 지 얼마 안돼 어느 한번, 저녁을 먹자고 뜨거운 국그릇을 마주한 나는 갑자기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까지 가고 말았다. 별안간 가슴이 답답하고 속에서 울컥울컥 무엇인가 급하게 올리밀어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게다가 귀가 먹먹해나며 모든 소리가 아주 먼곳에서 울리듯 둔탁하게 들려 나 자신이 그 어떤 좁고 좁은 공간에 갇힌 것 같았다. 순간 나는 기가 딱 막혀 미칠 듯이 숨가쁜 이 순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나는 창문을 왈칵 열어젖히였다. 창문 아래는 큰 길거리여서 차나 사람들이 실북 나들듯 했다. 정말이지 층집에서 뛰여내리고 싶었다. 죽는 게 두렵지 않았다.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고 너무나도 힘든 그 순간에 영영 종지부를 찍고 싶었다.

내가 창문 앞에서 수상하게 움직이는 행동을 보이자 둘째아들이 뒤에서 나를 잡아당겼다.

“어머니, 왜 이러세요?”

“나, 나 뛰여내리고 싶다…”

깜짝 놀란 둘째아들은 그 자리에서 나를 둘쳐업고 층계를 내려와 택시를 불렀다.

병원에서 의사들은 그런 환각도 코로나 후유증의 하나라며 혈압이 200 밑으로 급상승하였다고 했다. 온밤 점적주사를 맞고서야 조금 호전이 되였다. 집에 왔으나 또 귀가 먹먹해지며 듣지 못하고 가슴이 답답해서 숨이 차 견디기 힘들었다. 이번엔 연변병원에 가 검사하니 귀에 물이 찼으니 수술하라고 했다. 귀수술을 끝내고 집에 왔으나 시도 때도 없이 뛰는 맥박은 사람을 정말 못살게 굴었다. 할 수 없이 입원치료를 해서야 병근원을 찾았다. 콩밭에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물론 그 사이 페에도 염증이 와서 둬달 페치료도 했었다.

하루이틀에 나을 병이 아니라며 의사들은 집에 가서 약을 쓰면서 정기검사를 하라고 권했다. 정작 집에 오니 간호할 사람이 문제였다. 나를 시중하다가 큰 아들애도 코로나에 걸겨 드러눕자 작은 아들애가 발벗고 나섰다.

몇달 동안 병원에 갈 때마다 차를 세내고 한발자국도 걷지 못하는 나를 업고 층계를 오르내리며 병원에서는 휠체어에 밀고 다녔다. 그리고 밥을 못 넘기는 나에게 소고기를 믹스기에 갈아서 넉달째나 소고기야채죽을 꾸준히 대접했다. 나는 때로는 너무 힘들어 맥을 놓고 싶어도 아들애의 정성에 코마루가 시큰해나며 입맛이 아무리 없어도 억지로라도 먹군 하였다.

내가 코로나에 걸렸다는 소식에 주변의 선배님들과 문우들이 지원의 손길을 보내왔다. 보내오는 위문과 배려는 나에게 무한한 힘으로 느껴졌으며 나더러 자신을 뒤돌아보게 하였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에 나는 얼마나 관심하고 베풀었던가? 별로 베푼 적이 생각나지 않아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내가 이런 베품과 사랑의 손길을 받을 자격이 되는가고 자신에게 물었다. 자그마한 리익 앞에서도 손해 볼세라 옴니암니 따지고 내가 밑지는 노릇 안한다를 명언처럼 외우며 자신을 단속해왔었다. 얼마나 자사자리 하고 리기적이였던가… 손에 쥔 것을 놓을 줄 모르다나니 그 누구에게 베풀며 배려하며 산다는 것은 나에게 꼬물 만치도 없었다. 혹시 약간 베풀었다면 남들이 몰라줄가 봐 자랑질 하고 요란을 떨었다.

내가 앓는 동안 지원의 손길을 보내준 모든 사람들의 넓은 흉금과 사랑을 나는 잊을 수 없을 것이며 내 삶의 거울로 될 것이다. 누구는 고급 우유와 율무차와 요구르트까지 보내주셨고 누구는 당뇨병 후유증으로 다섯 발가락을 잘라내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지원의 손길을 보내주셨다. 눈물 나게 고마운 분들이다. 나는 절망 속에서도 이런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의 손길에서 또다시 삶의 용기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중병을 앓는 사람에게 의사의 배려는 희망의 줄이였다. 연변병원의 정박사가 그러하다.

정박사는 내가 제일 힘들 때 찾아간 의사이다. 정박사는 세밀하게 진찰하고도 또 병원내의 다른 명망 높은 전문가를 두 분이나 찾아주면서 치료에 전력을 다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날, 정박사는 문우들의 병문안을 따라 우리 집까지 찾아와 진찰을 했다. 그리고는 집 부근의 진료소에 집적 련락하여 치료방안도 세웠다. 내가 뭐라고 휴식도 마다하고 찾아온 정성에 나는 눈물이 저절로 났다.

정박사는 일찍 조남기 장군의 보건의사로 8년을 복무한 의술이 뛰여난 분이지만 겸손하고 남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분이셨다. 썩 후에야 알았지만 정박사는 그때 간암 수술을 앞둔 중환자였다. 우리 집에 왔다간 후 이내 장춘에 가 간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수술 후 출근하여 사업에 열정을 다했다. 내가 며칠 후에 병원에 가니 수술한 지 며칠 안되는 정박사는 출근하여 환자들을 진찰하고 있었다. 병마 앞에서 락천적이고 생활을 사랑하는 정박사의 삶은 나에게 큰 촉동이 되여 가슴이 뭉클했다.

‘나도 저렇게 생명의 불꽃을 튕겨보리라’고 속으로 다졌다. 정박사의 뜨거운 배려는 내 생명의 삶에 불꽃을 지펴주었다.

앓는 사람에게 가족의 사랑은 생명수이다.

나의 둘째동생은 당뇨병, 고혈압으로 앓는 데다 코로나까지 앓아 몹시 허약해졌다. 그러나 입맛이 없어하는 나에게 입맛을 돋구어주겠다고 눈밭을 다니며 달래를 캐쓰고 햇장에 고추장까지 만들어가지고 날 보러 왔다. 농촌에서 살지만 경제적으로도 많이 도와주었다.

외국에 간 막내동생 역시 언니가 앓는다는 소식에 안절부절 못했다. 여기에서 보낸 병진단서를 들고 몇번이나 약방에 찾아가 한약을 지어 보냈다. 하물며 동생도 2년 전에 암수술을 하고 투병중인데야, 언니 걱정에 잠 못 이룬다고 했다.

둘째아들애는 나를 시중하느라 체중이 열몇근이나 줄었다. 하루에 왕복 300리 길을 오가며 식사걱정, 약걱정, 집안청소도 한마디 군소리조차 없이 하는 모습에 때론 가슴이 울컥해나군 한다. 큰아들애와 광주에 있는 손녀는 로임이 나오는 날이면 꼭 나의 앞으로 돈부터 보내온다. 돈걱정은 말고 치료에 전력을 다해라고 신신당부한다. 돈도 적지 않지만 엄마와 할머니를 사랑하는 가족의 따뜻한 관심과 애정은 내 삶의 힘이 되군 한다.

  물보다 진한 것이 피라면 피보다 진한 것이 가족사랑이다. 오늘도 힘들지만 그래도 나는 웃으며 나의 삶을 마주한다. 워낙 삶이란 웃고 울고 희로애락으로 점철된 드라마가 아닌가?!

来源:延边日报
初审:金麟美
复审:郑恩峰
终审:崔美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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