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 전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온 후 나는 가끔 토요일날 아침 식사 후 주변의 골목을 즐겨 누빈다. 토요일 아침이면 이사를 가거나 집정리를 하면서 책을 버리는 집들이 간혹 있는데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기 편리하도록 박스에 차곡차곡 담아서 아빠트 쓰레기장에 가져다 놓는다. 이렇게 누군가 내놓은 헌책 꾸러미나 박스를 발견하면 무척 반갑다. 비록 헌책이라도 읽을 만한 내용이면 나는 스스럼없이 골라서 집으로 가져오곤 한다.
오늘도 여느 토요일과 마찬가지로 아침식사 후 주변골목을 누비려고 집 문을 나섰는데 ‘대박’을 맞았다. 바로 내가 거주하는 아빠트 쓰레기장에서 두 박스에 차곡차곡 담아서 내놓은 책이 보이길래 급히 다가가 꺼내 보니 웬걸 그 책들 대부분이 외국명작들이 아닌가? 똘스또예프스끼의 《죄와 벌》이 있는가 하면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씨》도 있었다. 이 책들은 전부 다 내 서재에는 없는 것들이라 거의 읽어본 적이 없고 읽어본 것 몇 권도 전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것이다. 과연 오늘은 억세게 ‘운 좋은 날’ 이였다. 나는 거기서 20여권의 책을 골라 다른 두 박스에 갈라 담아서 안고 낑낑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실은 올해 이미 오늘처럼 이렇게 억세게 ‘운 좋은 날’ 이 한두 번만 있은 것이 아니다.
지난 여름 어느토요일이였다. 아침 식사 후에 청탁원고를 쓰느라 집에서 한창 글을 쓰고 있는데 밖에 산책을 나간 안해한테서 전화가 왔다.
“나 지금 XX아파트 앞에 있어, 여기 쓰레기장에 누군가 책을 두 박스나 버렸는데 자기 혹시 수요되는 거 있는지 인츰 와봐. 내가 여기서 지키고 있을 게.”
이게 또 웬 떡이야? 나는 글을 쓰다 말고 부리나케 자전거를 타고 안해가 기다리는 곳으로 갔다.
책들은 헌책이 아니라 완전히 새책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는 외국명작도 있었고 저명한 산문가 여추우의 《사색의 즐거움》 등 번역된 중국책도 여러권 있었다.
“책이 새것처럼 보이기에 불렀는데, 혹시 어디 쓸만한 책들이 있어? 괜히 온 거 아니야?”
안해가 다가와 물었다.
“아니 너무 좋은 책들이야, 오늘 또 자기 때문에 횡재 했어. 허허.”
나는 그 가운데서 책 10여 권을 골라 미리 준비해간 비닐주머니에 담아 자전거바구니에 얹고 신나게 안해와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왔다. 올해 안해 덕에 책 횡재를 벌써 여러번 했는데 그 책들이 무려 수십 권이 된다. 이밖에 안해는 평소에도 골목 산책을 하다가 누군가 버린 좋은 책을 발견하면 한두권씩 주어서 가져오는데 나로서는 여간 반갑지가 않다. 이렇게 어느날 문득 흔치 않은 책, 자신에게 소중한 책을 뜻밖에 공짜로 얻었을 때의 기쁨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지난 5월의 어느 토요일 아침이였다. 이날은 특근이 있는 날이라 평일과 마찬가지로 일곱시가 못되여 집문을 나섰다. 출근길임에도 토요일이라 혹여나 해서 아빠트 쓰레기장이 많은 골목길로 걸어가는데 운 좋게도 어느 아빠트 쓰레기장에서 누가 가져다 버린 큼직한 책 꾸러미를 발견했다. 급히 다가가서 펼쳐보니 거의가 내가 즐겨 읽는 인문학 책들이였다. 나는 시간이 급한 대로 대충 10여 권을 고른 후 급히 안해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뭐 놔두고 간 거 있어? 말해, 내 곧 가져다 줄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여기 A아빠트 앞에서 책 10여 권 얻었어. 내가 집까지 다시 갖다 오면 출근 시간이 늦을 것 같아 자기한테 전화한 거야.”
“알았어, 내 인차 갈게.“
나는 이런 날에는 지각 같은 것을 크게 념두에 두지 않는다. 까짓 반시간 늦어봐야 그날 로임에서 얼마간을 까일 뿐이니 어찌 이 소중한 책들과 비하랴.
나에게 책 수집은 습관이 되였다. 책을 많이 모으면 지적 수준이 올라가는 것도 아닌데 나는 계속 책을 모았다. 시중에서 볼 수 없는 초반 혹은 절판된 책 역시 운이 좋으면 만날 수 있다. 그렇게 특별한 책을 만난 날은 정말 귀한 보물을 찾은 것 같은 뿌듯한 마음을 안고 귀가하게 된다.
한 1년간 인력사무소의 배치로 일용직으로 다닐 때다. 가끔 이사짐 나르는 일도 하게 되는데 이사 갈 때마다 주인들이 버리는 책들이 있다. 이때는 그 책들을 공짜로 얻게 되는데 그럼 나는 만사를 제쳐놓고 먼저 책들을 멜가방에 담아 놓는다. 한번은 책을 20여권 얻게 되였는데 종이 박스를 얻어다 한쪽 구석에 챙겨놓고서야 일을 시작하느라 책임자의 꾸중을 듣긴 했지만 나는 조금도 불만이 없었다. 그 많은 책을 공짜로 얻은 데 비하면 그까짓 꾸중 몇마디가 뭐가 대수인가. 이런 날엔 설사 그날 일을 못하더라도 그 책들만 가지면 만족할 수 있다. 이렇게 그때 일용직으로 이사짐을 나르면서 얻은 책을 합치면 백 권은 실히 된다.
손세차장에서 2년 간 일할 때도 나는 책을 공짜로 꽤나 얻었다. 차주인들은 세차장에 올 때마다 차 뒤의 트렁크도 함께 청소해달라면서 트렁크를 정리하는데 이미 보고 난 책은 거의 버리다싶이 한다. 그러면 나는 즉시 그 책들을 따로 치워 놓았다가 집으로 가져온다. 그렇게 이태간 세차장에서 얻은 책도 수십 권에 달한다.
나에게 있어 인생의 즐거움은 책을 찾는 데도 있다. 그러므로 많은 물건 중에 유독 책은 더더욱 소중히 여긴다. 솔직히 책에 대한 집착이 유독 심해서다. 나는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퍼그나 싼 값으로 책을 여러 번 구매할 기회를 얻었다.
어느 날 해질 무렵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참인데 마침 고물수거장 앞에서 고물을 잔뜩 실은 리어카와 마주쳤다. 혹시나 싶어 그 리어카에 다가가 온갖 잡동사니를 요리조리 훑어보았더니 헌책 한 박스가 마음을 끌었다. 그래서 넝마주이 로인에게 혹시 볼만한 책이 있으면 사겠다고 했더니 로인은 즉시 응낙하며 고서를 담은 박스를 꺼내주었다. 생각밖에도 그 박스에 담긴 책들은 꽤나 볼만한 것들이였다. 나는 그 중에서 책 열 권을 골라 들고 돈 만원을 건넸다. 전에도 가끔 넝마주이 로인들에게서 한권에 천원씩 주고 사던 관례를 따른 것이였다. 생각밖에 많은 돈을 받아서인지 로인은 연신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는데 오히려 감사해야 할 사람이 나인지라 여간 송구스럽지 않았다.
나는 돌아오면서 물각유주라는 옛말이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만일 이 책이 내 눈에 띄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아까운 책들이 종이공장 가마에서 형체도 없이 녹아버리고 말았을 게 아닌가.
몇 해 전 부평에서 살 때였다. 어느 일요일날 단골로 다니던 리발관에 리발하러 가는 도중 어느 단독주택 대문 앞에 책을 잔뜩 쌓아놓고 ‘한권에 천원씩 처리합니다’ 라는 글을 대문에 큰 글씨로 써놓은 것을 보았다. 책이라면 오금을 못쓰는 나는 즉시 그 자리에서 책을 열권 골랐다. 그리고 돈을 지불하려고 집주인을 찾아 집 안으로 들어가니 객실에는 책이 가득 찬 책장 하나가 있었는데 집주인은 그 책들도 다 팔 것이라고 하였다. 하여 그 후에 시간나는 대로 그 집으로 찾아가서 번마다 책 열 권씩 도합 50권의 책을 더 샀다. 물론 매번 10권을 사곤 다시는 그 집에 책을 사러 가지 않을 것 같았지만 며칠이 못 가 그 집 책장에 아직 남아있는 책들이 눈앞에 삼삼히 떠올라 또 찾아가군 했다. 글쎄 책이 좋은 걸 어찌할가. 꼭 그 책들을 사서 내 책장에 들여앉히고 싶은 욕심을 어찌 하느냐 말이다. 그래 봐야 그때 책값을 도합 6만 원밖에 지불하지 않았는데 서점에 가면 그 돈으로는 겨우 4~5권밖에 살 수 없으니 말 그대로 책을 공짜로 얻은 거나 별반 다름없지 않은가? 이 어찌 흥분하지 않으랴.
책은 읽기 위해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쌓아놓기 위해 수집하는 것이다. 원래 책은 수집하는 게 맛이다. 독서의 시작은 일단 책을 모으는 것이다. 당장은 안 읽고 쌓아놓는다고 해도 언젠가는 읽게 될 것이다. 책꽂이를 봤을 때 읽지 않은 책들이 많아 고를 수 있는 즐거움도 가지고, 책을 읽고 싶다는 욕구도 채울 수 있으니 나름 책 수집이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나는 평소 서점 앞을 그냥 못 지나친다. 신간, 구간 가리지 않고 읽고 싶은 책들을 구입한다. 시중에 없는 책을 구하려고 서울 청계천 헌책방거리,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 서울동묘역앞 헌책방거리를 무더위나 한파를 아랑곳 않고 두세 번씩 찾아가기도 했고 부천 알라딘 중고서점과 인천 구월동 알라딘 중고서점은 수도 없이 다녀왔다.
이 몇 해 나의 서가에는 새로이 책이 몇백권 불어났는데 이렇게 주어오고, 싼값으로 사고, 문인친구들이 보내주고, 출판사에서 기증받고 하여 그 책들이 말그대로 잡동사니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게 오히려 나의 독서풍격에 제격으로 들어맞는다. 독서광이라지만 사실상 나의 독서는 실리를 위하지 않기에 즐겁고 한가하며 편안하다. 나는 평소 책을 람독한다. 편독을 하지 않는다. 나는 좋아하는 책, 근사한 책, 재밌는 책을 한가할 때 손 가는 대로 넘겨보는데 이런 종류의 책들은 심심풀이용 책이다. 사실 심심풀이 책은 말 그대로의 심심풀이 책이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한서(闲书)를 읽는 것은 각종 책을 보는 것과 같다. 잡학은 안목을 넓혀주고 지식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데 도움을 주니 그 소득을 낮게 평가할 순 없다. “신경 써서 꽃을 심었지만 꽃은 피여나지 않고, 무심코 심은 버드나무가 그늘을 이루는” 효과에 이를 수 있다.
한가롭게 읽는 독서는 내가 동경하는 경지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별로 가리지 않고 이 책 저 책 닥치는 대로 읽는다. 그러다 읽고 있는 책이 머리속에 들어오지 않으면 그대로 밀어치우고, 뭔가 비수처럼 꽂히는 게 있으면 그 책을 계속 흥미진진하게 읽는다. 하기에 나는 책을 아무리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심심풀이 삼아 한가롭게 책을 읽으니 지루함을 느끼지 못한다. 한서의 종류는 사람에 따라 다른데 나는 산수소품을 특히 읽기 좋아한다. 요 이틀은 얼마 전 중고서점에서 산 《중국 시, 서, 화 풍류담》을 읽는데 붓 한자루에 담긴 재미있는 시, 서, 화 이야기에 푹 빠져있다.
예로부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을 사면서 책을 산다고 말하지 않고 ‘책을 찾는다(淘书)’고 말한다. 사마천, 소동파, 동기창 등 옛 문인학자들이 좋은 책을 얻기 위해 천리길, 만리길을 걷는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정신은 칭찬할 만 하다. 하기에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길을 가다’ 라는 말은 내가 무척 좋아하고 공감하는 말이다. 꿀을 모으는 벌처럼, 인간은 일평생 가치를 수집하는 수집가가 아닌가? 누군가 ‘위대한 수집은 창조’라고 했는데 이 말은 과연 명언이라 할만하다. 독서는 즐거운 일이고 장서도 고상한 일이며 모두 의미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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