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겠습니다, 이곳의 아픈 력사를”
피눈물의 력사를 품은 연변침략일본죄증관(‘간도’ 일본총령사관 유적)

2025-05-26 09:01:41

‘간도’ 일본총령사관 옛 사진.

룡정시 륙도하로 869─1호, 지금의 룡정시 당위, 정부 뜰안에는 지하 1층, 지상 2층 그리고 중앙 남측은 5층 구조의 미황색 건물이 력사의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조용히 서있다. 언뜻 평범해보이는 이 건물은 ‘간도’ 일본총령사관이 있었던 자리로 표면상 외교기관이지만 실제론 일본제국주의가 중국 동북을 침략하기 위한 ‘전초기지’이자 정보수집, 항일운동 탄압의 중심지였다. 오늘날 이곳은 ‘연변침략일본죄증관’으로 관람객들에게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는 력사교육의 현장이 되였다.

“1909년부터 1937년까지 이곳에서 4000여명의 항일지사와 무고한 민중이 고문과 박해를 당했습니다.” 해설원의 목소리가 어두운 지하고문실 복원 공간을 울린다. 연변침략일본죄증관(‘간도’ 일본총령사관 유적)에서 펼쳐지는 참혹한 력사에 대한 생생한 ‘재현’과 전시관 곳곳에 진렬된 일본제국주의의 잔혹한 만행을 적라라하게 폭로하는 사진과 유물들은 마주한 관객들을  파란만장했던 지난 세월을 돌이키게 한다…

간도’ 일본총령사관 직원 옛 사진.

◆‘간도’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침략의 본질

“1907년, 일본은 ‘간도 영유권 분쟁’을 구실로 룡정에 독침을 꽂듯 ‘조선통감부 간도파출소’의 간판을 내걸고 주둔해 중국 침략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해설원의 단호한 목소리가 전시실을 가득 채운다. 그는 전시판의 력사 기록과 사진들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1909년 일본은 청정부를 강압해 불평등조약을 체결하고 조선통감부 간도파출소를 ‘간도’ 일본총령사관으로 개편, 확장했습니다. 이 순간부터 이곳은 연변인민을 탄압하는 악의 본부가 되였습니다.”

특히 <두만강중한계무조약>을 통해 일본이 연변의 철도 부설권을 손에 넣고 광산 자원을 착취한 사실, 그리고 총령사관내에 경찰서, 감옥, 법정을 설치하고 각 지역에 령사분관, 경찰서와 경찰분서를 설치하여 치외법권을 람용한 증거들이 관람객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올해 4월말 개방된 연변침략일본죄증관 일본총령사관저.

1920년대에는 조선총독부로부터 300여명의 경찰을 증파했고 연길, 화룡, 왕청, 훈춘 및 그 당시 봉천성에 속했던 안도현 등 5개 현을 장악하며 연변의 항일운동을 철저히 진압했다. 총령사관은 화재로 두차례 소실되였지만 일본은 20만엔을 투입해 3년간 재건하며 침략기지를 공고히 했다.

죄증관 내부 모습.

◆폭압과 략탈의 철저한 증거

력사 기록에 따르면 ‘간도’ 일본총령사관이 존재하던 기간 정치적 침투, 경제적 략탈, 문화적 식민통치 등의 수단으로 연변지역의 사회질서를 체계적으로 파괴했다. 일본어 교육 강제 시행부터 현지 산림과 광물 자원 략탈, 친일 단체조직까지 이 건물은 일본의 ‘대륙정책’을 실행하는 죄악의 도구가 되였다. 죄증관 1층 전시구역은 정치, 경제, 문화 면으로부터 일본제국주의의 전방위적이고 야만적인 파쑈통치를 적라라하게 보여준다. 어두운 조명이 깔려있어 암흑했던 그 시절에 부합되는 듯싶었다.

전시관내에는 광명중학교의 교실에서 일본어수업 장면이 재현된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 태여난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일본어를 배워야 했고 위만주국 국가를 부르고 위만주국 국기를 게양해야 했다.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계획적인 식민교육으로 아이들을 세뇌하여 한 민족을 노예화하려는 수단이였다. 해설원은 “일제는 연변에 거주하는 여러 민족 인민들에게 일본 성으로 바꾸고 일본어를 배우도록 강요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 학생들에게 식사 전에 일본 황성 방향으로 절을 하도록 요구하기까지 했습니다.”고 설명했다.

◆학살과 고문, 피로 얼룩진 력사

일본은 ‘간도’주재 일본총령사관을 연변침략의 대본영으로 하여 연변인민에 대해 잔혹한 착취와 압박을 하고 수만명의 무고한 백성을 살해했다.

4월 19일, 룡정 청년들이 해설원의 안내에 따라 죄증관을 참관하고 있다.

1931년 10월부터 1932년 12월까지 일본 군경은 연길현 해란유격구 화련리일대에 94차례에 걸친 대토벌을 단행하여 중화의 아들딸 1700여명을 학살했다. 이는 당시 전 동북을 충격에 빠뜨린 끔찍한 ‘해란강대참사’였다. 일본 군경은 항일 주민들을 총검으로 찔러 살해한 뒤 불더미에 던졌고 팔다리를 절단하여 끓는 물가마에 버렸으며 눈을 파낸 후 몽둥이로 때려 죽였고 목에 칼을 찌른 후 매돌 우에 올려놓고 깔아뭉개 죽이는 등 극악한 만행을 저질렀다. 일본 군경의 잔혹한 수단은 거의 인성을 상실한 수준이였으며 참사현장을 보여주는 복원장면과 대형 유화는 극히 소름 끼쳤다.

해설원의 안내에 따라 로투구만인갱 전시구역에 이르렀다. 로투구 ‘만인갱’은 로투구탄광 순난자들의 묘지로서 일본침략자가 동북을 점령한 14년간 164만톤의 석탄을 략탈해갔던 현장이다. 동서 길이 1000메터 미만, 남북 길이 700메터 미만의 범위에서 발견된 광부들의 유골 1만 958구중에는 어린아이들의 유골도 많았다. 어떤 유골의 목에는 철사가 매여있었고 어떤 유골은 여러 곳이 골절되여있어 생전에 받은 박해가 얼마나 잔혹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통계에 따르면 ‘간도’주재 일본총령사관은 설치되여서부터 1937년 12월 령사관을 철수할 때까지 반일지사와 여러 민족 민중 도합 2만여명을 체포, 살해했는데 그중 ‘간도’주재 일본총령사관 지하고문실에서 고문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살해된 사람만 4000여명에 달했다.


◆유적지의 재탄생: 기억에서 교육으로

“여기가 바로 지하고문실입니다.”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복원된 고문실 공간에서는 피로 물든 복장을 입은 배우들이 당시의 참상을 생생히 재현하고 있다. 쇠사슬 소리, 채찍 소리, 숨막히는 신음소리가 교차하며 관람객들을 력사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우리는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

지하고문실 모습.

한 ‘수인’의 웨침이 시공간을 가르며 울려퍼졌다. 이 장면은 연변 항일투쟁의 생생한 축소판이다. 중국 최초이자 가장 혹독한 항일투쟁지중 하나였던 연변에서 여러 민족 인민들은 피로 불굴의 서사시를 써내려갔다.

피와 눈물의 기억을 담은 이곳에서 해설원과 배우들이 펼치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대화를 들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한 항일지사(배우)가 고문을 받는 장면이 펼쳐졌다. 곤장을 휘두르는 둔탁한 소리에 이어 항일지사는 마지막 신음을 내며 학살당했다. 관람현장은 고요함에 휩싸였다. 이어 어둠 속에서 조명이 어슴프레 밝아지자, 항일지사가 힘겹게 일어나 철창 밖에 서있는 해설원을 향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해설원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저… 저는 여러분의 후대입니다. 새 중국에서 왔어요.”

항일지사의 눈빛이 반짝였다. “새 중국? 우리가 승리했단 말이오?”

“승리했어요, 이미 오래전에 승리했어요.”

“아, 좋아라… 우리 새 중국이 어떤 모습인지 무척이나 궁금하구먼.”

“지금의 중국은 행복의 꽃이 전국 각지에 피여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핀 혁명의 불꽃은 이미 중화 대지를 녹였고 여러분들이 전해주신 혁명정신은 저희가 영원히 명기할 것이며 전국 인민이 영원히 명기할 것이며 대대손손이 끝까지 기억할 것입니다.”

연변침략일본죄증관 일본총령사관저내 총령사사무실.

해설원은 감정을 담아 력사이야기를 전하고 배우들은 연변 여러 민족 인민이 항일투쟁에서 피와 생명으로 주조한 애국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위대한 정신을 생동한 연기로 재현했다.

죄악의 소굴은 이제 애국주의교양기지로 변모했다.

연변침략일본죄증관 접대판공실 주임 리호연(항일지사 역 배우)은 “고문 장면을 연기할 때마다 선렬들의 희생이 가슴 아픕니다. 이 력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야 할 책임감이 생깁니다.”고 말했다.

연변침략일본죄증관 경리 지곡빙은 “홍색 정신을 보다 생동감 있게 보여주기 위해 몰입형 연기와 해설을 결합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관람객들이 더 직관적으로 력사를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고 표했다. 소개에 따르면 올해초 몰입형 연기와 해설을 결합한 방식을 도입해서부터 달마다 1000여명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현재 연변침략일본죄증관은 단순한 력사의 ‘증인’을 넘어 새시대의 애국주의교양 현장으로 자리매김했다. 문물 보호, 사료 연구, 문화 전파를 통해 이 백년 건축은 새로운 모습으로 세계에 중국 인민의 불굴의 항전 정신, 평화 수호의 확고한 신념을 전달하고 있다.

룡정일본총령사관 유적 비석.

바람이 령사관 지붕의 기와를 스친다. 압박에 의한 비명은 흩어져도 력사의 철증은 영원히 남는다. 평화로운 오늘, 우리에게는 여전히 홍색교양이 필요하다.

연변침략일본죄증관(‘간도’ 일본총령사관 유적).

  글·사진 김은주 기자

来源:延边日报
初审:金麟美
复审:郑恩峰
终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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