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련못을 잠재우던 햇솜 같은 안개발이 새벽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축구공을 두 손에 품어 쥐고 8층 호화아파트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송이에게로 애솔나무가 안겨들고 있었다.
너울너울 춤을 추는 능수버들 곁에 나란히 터를 잡은 련못가의 애솔나무!
어느날, 학교 공부 쉬던 날에 송이는 뻐스를 타고 하남 시교에 자리 잡은 묘목장을 찾아갔었다.
묘목장 키큰 아저씨가 앞치마에 묻은 흙모래를 털면서 일어났다.
“꼬마손님께서 꿈나무들을 구경하려구 오셨구나?”
“아저씨, 애솔나무 한그루를 하북에 있는 하늘련못가에 심으려구요.”
송이의 도두룩한 이마 아래 쌍거풀진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 빛났다.
그러자 아저씨의 굵은 눈섭이 꿈틀하더니 구레나룻으로 덮힌 얼굴이 놀란 빛으로 번졌다.
“꼬마는 아직 소문 못들었나 보구나. 그 하늘련못을 밀어버리고 축구장으로 만든다던데…”
“아저씨, 그런 떠도는 소문을 믿지 마세요. 그럴리가 없어요.”
“그럼 오죽 좋겠니. 해마다 여름철 련꽃이 활짝 필 적에 련꽃마냥 아름다운 전설 꽃핀 푸른 숲을 찾아들면 불볕더위가 싹 가시고 저도 몰래 웃음꽃이 피여나고, 신선같은 두루마기 둥실둥실 꽃나비같은 한복차림 너울너울, 도라지 양산도 아리랑 노래가 절로 흘러나오던 놀이터, 쉼터 아니냐. 시내 안팎 남녀로소 할것 없이 찾아드는 명당터 하늘련못인데…”
송이는 뻐스를 놓칠 것 같아 호주머니에서 얼른 200원을 꺼내 건네려 했다.
“아저씨, 알틀살틀 키운 애솔에 비하면 이 돈 너무 적어요.”
“그 돈은 학용품 살 때 쓰거라. 자, 이건 꼬마에게 선물하는 푸른꿈나무인 거다. 하늘련못가에 심어서 잘 키우거라. 후날 아무 때나 이 아저씨가 애솔이 얼마나 컸나 찾아가 볼테다.”
“아저씨! 정말 고마워요.”
묘목장 아저씨는 뻐스가 서는 길옆까지 애솔그루를 아기처럼 품어 안고 따라와 송이를 바래주었다…
애솔을 련못가에 심어 가꾼지 여러달이 지나갔다. 해살을 받아 먹으면서 애솔은 푸르싱싱한 솔가지를 펼치고 있었다. 아직은 송이보다 작은 키지만 련못에 비낀 그 맵시가 씩씩하고 당차보였다.
축구공을 두 발로 몰기도 하고 어깨에 싣고 달리다가 동동 띄워 이마로 박치기를 하면서 련못가를 에돌던 송이는 애솔 곁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졌다. 애솔이 하늘만큼 크기 전에 기념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휴대폰을 꺼내 쥐고 서성거릴 때 마침 련못가를 산책하던 낯 익은 젊은 남자가 련못가로 내려오고 있었다.
“꼬마야, 애솔과 함께 사진 찍고 싶은 게로구나.”
“네. 아저씨, 수고 좀 해주세요.”
송이는 축구공을 가슴에 품어 안았다. 국가 축구선수로 되고 싶은 야무진 꿈이 크고 있었던 것이다.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련못가를 따라 나무들 사이사이로 공을 굴리는 재간이 늘어서 한번도 물에 빠뜨린 적이 없었다. 핸드폰에 찍힌 사진을 본 송이의 가슴은 푸른 애솔마냥 설레였다.
그런데 아저씨가 돌아서면서 담배꽁초를 련못에 뿌려던지는 것 같았다. 담배 꽁초가 련못에 동동 뜨다가 싯누런 물감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아저씨!ㅡ ”
송이는 저도 몰래 부르짖으면서 련못에서 그 담배꽁초를 건져냈다.
“아저씨, 여기 련못에서 헤염치며 노는 금붕어들이 보이잖아요?”
아저씨는 송이의 물음에는 바로 대답을 잊은 듯이 말머리를 돌렸다.
“꼬마야, 저기 청동오리가 물놀이 하는 걸 좀 봐. 푸드득 날개를 터니까 해살이 꽃보라를 휘뿌리는 것 같구나!”
찰나, 송이도 하늘련못에 눈과 마음이 한꺼번에 빠져들고 있었다.
“아저씨, 제비들이 수상스키를 타고 있네요. 연미복 차림새인 가위꼬리로 물결을 싹둑! 싹둑! 베더니 바람결 잡아 타고 구름 속을 가로세로 날아예는 걸 보세요… 련못이 작아도 푸른 하늘 다 담고 있잖아요.”
“꼬마야! 하늘과 련못이 하나구나. 와아! 구름송이가 꽃 피네. 흰토끼들이 깡충깡충 뛰놀다가 하얀 물오리로 되여 동동 배놀이도 하고…”
아저씨는 금방 동심으로 돌아간 듯 애들처럼 짝! 짝! 박수를 쳤다.
“아저씨, 얼마나 황홀한 하늘련못인가요. 그런데 아저씨는?”
“내가 어쨌단 말이니?!”
아저씨는 대뜸 놀라며 가뜩이나 큰 쌍거풀눈이 덩둘해졌다. 송이는 담배찐이 노랗게 물든 손바닥을 펼쳐 보여드렸다.
“련못 속 금붕어들이 이런 담배를 먹으면 병들어요. 죽을 수도 있어요.”
“넌 공만 잘 차는 꼬마인줄 알았는 데 아름다운 대자연을 사랑하는 착한 애로구나. 그런데 얘야, 여기 하늘련못을 밀어버리고 축구장을 펼친다는 소문 떠돌던데…”
“정식 공문이 나왔나요? 아저씨는 그래 하늘련못을 축구장으로 바꿨으면 좋겠어요?!”
“아니, 아니지! 이 아저씨는 어릴적부터 하늘련못에 정든 사람이다!”
아저씨는 담배갑을 련못가 쓰레기통에 버리고 손을 저으면서 멀어지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학교로 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송이는 가슴에 공을 안고 가까이 호화아파트로 달려갔다.
밥상에 마주 앉은 송이의 곁에서 휴대폰에 담긴 사진을 보던 아빠가 놀라는 것이였다.
“네가 심은 애솔이 벌써 이렇게 컸니?”
“아빠, 애솔나무가 하늘련못을 지키는 초병같죠?”
“그래그래. 푸른 초병을 꼭 닮았구나.”
그러자 송이는 아빠에게 다짐 따듯 의미심장한 말깃을 펼쳤다.
“그 누구도 하늘련못을 지워버리면 안돼요! 내가 막아설 거얘요. 애솔이 나와 함께 당당하게 맛서 싸울 거얘요.”
아빠는 휴대폰을 놓고 창가로 다가서더니 하늘련못을 내려다 보신다.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벌써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 머리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아빠는 혼자말처럼 무겁게 입을 열었다.
“청룡축구협회에서 저 아래 하늘련못을 축구장으로 만들자고 상급부문에 청시했다는데…”
송이가 홰치듯 걸상을 밀치고 창문 쪽으로 다가섰다.
“아빠, 그건 안돼요!”
아빠는 송이를 일깨우듯이 다음 말씀을 이어나갔다.
“얘야, 우리 나라 축구운동을 발전시키려면 축구장을 더 늘여야 되지 않겠니? 너는 축구에 남다른 장끼가 있고 집 가까이 축구장 생기게 되면 아빠는 물론…”
송이는 서슴치 않고 아빠의 말씀을 딱 잘랐다.
“아빠! 하남 동쪽 기차길 옆 목장 빈터를 축구장으로 해도 되잖아요? 시내 서쪽 민둥산아래 갈대밭을 밀어도 축구장이 되잖아요? 그리고 또… ”
송이는 아빠의 어깨를 흔들었다.
“아빠, 우리네 하늘련못을 빼앗겨서는 안돼요! 하늘련못을 지켜려는 시민들의 한결같은 눈길이 자연자원국 국장이신 아빠를 지켜보고 있어요.”
밥상에 반찬가지를 챙기던 엄마께서 한마디 보태시는 것이였다.
“우리 송이가 작문을 써서 소년보에 척척 싣더니 말솜씨도 옳바르고 우렁차네! 엄마가 아빠에게 하고 싶던 말 네가 속 시원하게 해드렸다. 조상 때부터 예쁜 련꽃을 피우면서 대대손손 함께 살아온 하늘련못을 그 누구도 없애려는 꿈 꾸지도 말래라! ”
아빠께서는 금방 얼굴빛이 붉어졌고 머리가 무거운 듯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송이는 밥상에서 물러나 책가방을 둘러메고 뻐스역으로 달려갔다. 시내 중심가로 달리는 통학뻐스에서 붉은 넥타이 소학생들이 떠들고 있었다. 그 속에서 5학년 한학급의 별명 까불이의 목소리가 나팔통처럼 높았다.
“누가 감히 우리 마을 련못을 축구장으로 밀어버리면 그저 보고 있지는 않을 걸! 이 내 팔뚝 근육이 풀떡풀떡 뛰는 한 되기나 할가?”
까불이는 옷소매를 겨드랑이밑까지 걷어부치고 여윈 팔뚝을 쳐들면서 송이에게 대들듯이 퉁방울눈을 굴렸다.
“까불이야, 누구를 겁 주는 거니?”
송이는 대수롭지 않게 눈총을 쏘면서 마주섰다.
“너의 아빠가 자연자원국 국장이니까 하늘련못을 좀 잘 지켜달라고 해.”
갑자기 한결같이 초롱초롱한 눈빛들이 송이 쪽으로 날아왔다. 꼬리 이어진 물음들이 수문마냥 터지고 있었다.
“송이야, 하늘련못을 세멘트와 모래, 자갈로 숨 막히게 메꿔버리는 거야 아니겠지?”
“송이야, 네가 아빠를 설복하기가 진짜 힘든 거니?”
“얘들아! 우리 모두 송이의 아빠를 찾아가자.”
그 소리에 다시 힘을 얻은듯 까불이는 대구입을 너펄거리며 빈정거렸다.
“축구광 송이는 하늘련못을 밀어버리면 천하를 얻는 것 같을 거야. 집 바로 코앞이 축구장으로 될테니깐. 송이의 아빠도 물론 반대할 리유가 없을 거고…”
송이는 가슴에 짚이는 데가 있는지라 성깔이 곤두섰다.
“까불이야! 넌 내 주먹맛 보고 싶어서 그런 터무니 없는 소리야?!”
뻐스가 교문 앞에 서자 송이는 까불이의 잔등을 밀어부치며 내렸다. 그 서슬에 까불이는 엎어지는 척하면서 울상으로 입귀를 비죽거렸다. 애들이 우우우 하면서 몰려들어 팔을 벌리며 송이의 앞을 막았다.
“송이야, 그렇게 성낼 거야 뭐 있니. 까불이 말이 틀린 거야 아니잖니.”
“뭐야?! 너희들도 울 아빠를 그렇게 보는 거니?”
“너의 아빠가 자연자원국 국장이니깐 그러지 뭐. 너의 아빠께서 한마디 말씀만 떨어지면 하늘련못을 살릴 수도 있는 것 아니야?”
“너희들은 내가 하늘련못을 축구장으로 만드는 걸 좋아하는 줄로 생각하니까 난 정말 너무 억울해!”
며칠 뒤의 어느 주말, 학생들은 언제 싸웠던가 싶게 학교 운동장에 모여서 축구경기를 펼쳤다. 송이가 공을 몰고 슛하려는 순간이였다. 까불이가 멀리서부터 달려오며 다급한 목소리로 웨쳤다.
“얘들아, 큰일 났어! 하늘련못이 사라지게 생겼어! 아저씨들이 삽을 둘러메고 모여있었어!”
친구들은 대뜸 축구경기를 멈추고 어쩔 바를 몰라했다. 이때 송이가 앞에 나섰다.
“동무들! 우리 함께 하늘련못으로 찾아 갑시다. 하늘련못을 지켜냅시다.”
“와아! 송이 최고! 우리 다 함께 하늘련못을 지켜내자!”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들끓었다.
삼십여명 붉은 넥타이들이 송이의 뒤를 따라 하늘련못으로 달려갔다.
“친구들, 축구경기를 하다 말고 어디로 가는 겁니까!”
교실에서 창문너머로 간간히 축구경기를 지켜보던 담임선생님은 학생들이 어데론가 우르르 사라지는 것을 보고 너무 걱정되여 뒤쫓아갔다.
하늘련못가에는 트럭 몇대가 서있었고 기름톱과 삽과 곡괭이를 어깨에 멘 장정들이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두 주먹을 부르쥔 송이는 앞장서서 그쪽으로 뛰여갔다.
“련못가의 나무를 절대 베지 못합니다! 하늘련못가에 곡괭이와 삽날을 박지 못합니다!”
송이에게서 천둥치는 소리가 터졌다.
장정들의 놀라움과 의혹 실린 눈빛이 이쪽으로 쏠려오고 있었다.
“학생동무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어깨 곁고 나선 학생들을 둘러보던 구레나룻 장정이 가까이로 다가왔다. 그 장정은 선생님 곁에 선 송이를 알아보고 하늘련못이 떠나갈 듯이 통쾌하게 웃었다.
“하하하… 몇달전에 우리 묘목장 애솔을 떠옮겨간 꼬마로구만!”
송이는 그 아저씨한테로 안길듯이 달려가 두툼한 손을 잽싸게 잡았다. 그리고 희망으로 벅찬 간곡한 물음을 건넸다.
“아저씨! 여기 련못을 밀어버리자고 온건 아니죠?”
“꼬마야! 록색도시를 매우 중시해 온 자연자원국 김국장께서 묘목장으로 전화소식을 보내왔다. 하늘련못을 더 풍성하고 아름답게 살리잔다. 저길 좀 봐! 우리 일군들이 벌써 트럭에 나무묘목을 싣고 왔구나.”
아저씨들이 대형트럭으로 실어온 벼라별 나무묘목들을 부리우고 있었다.
“아! 우리가 오해했네요.”
그제야 송이와 친구들은 서로 마주보며 쑥스럽게 웃었고, 뒤늦게 당도한 담임선생님도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담임선생님은 트럭에서 미인송 아기묘목을 정히 업어서 받아 내렸고 송이와 까불이는 뿌리 굵은 애솔을 두 어깨로 받쳐 메고 허기영차! 구령에 맞춰 옮겼다. 녀학생들은 철따라 봄나비 모양의 꽃을 피우는 홰나무 묘목을 맞들어서 구뎅이를 파놓은 곳까지 옮기였다. 봇나무, 가문비나무, 상수리나무, 느릅나무, 호두나무, 라일락, 아카시아… 등 묘목들도 하늘련못가 여기저기로 옮겨지고 있었다. 세월바람을 이기지 못해 쓰러질듯이 기울고 속창이 고삭은 나무를 골라 톱으로 베고 뒤엉킨 뿌리를 쇠줄로 걸어서 크레인으로 들어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푸르싱싱한 묘목을 심었다. 담배와 인연을 아주 끊은 아저씨도 산책을 나왔다가 늙은 나무들 사이사이에 삽과 곡괭이로 구뎅이를 파고 아기나무 여러 그루를 심었다…
문득 큰길 쪽에서 하이야가 달려오더니 련못가에 멈춰섰다.
하늘빛 넥타이를 날리면서 멋진 타입의 중년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송이는 대뜸 환성을 지르면서 뛰여갔다.
“아빠!ㅡ”
모두의 눈길들이 한결같이 송이쪽으로 쏠리였다.
자연자원국 김국장이 현장고찰을 온 것이였다. 그 찰나! 하늘련못에 어두운 구름장처럼 떠돌던 괴문과 턱 없는 날조와 요언들이 확실하게 말끔히 지워졌다. 상급부문에서 하늘련못을 시1급 자연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단다.
텔레비죤방송국에서 달려온 촬영기자가 자연자원국 김국장과 담임선생님, 그리고 송이와 묘목장 키다리아저씨를 찾아서 실황록화를 하기에 바빴다.
송이는 선생님과 아빠의 도움을 받아 할아버지가 생전에 들려주신 하늘련못에 깃든 전설을 련꽃마냥 아름답고 향기로운 우리말 우리글로 정리해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렇다. 송이는 하늘련못을 세상에 빛내면서 훌륭한 축구선수로 자랄 것이다!
우렁찬 성원의 박수소리가 하늘가로 울려펴지고 있었다. 애솔나무 곁에 무릎을 세우고 앉은 송이의 어깨에 손을 얹으신 담임선생님을 중심으로 붉은 넥타이들이 반달모양으로 진을 쳤고 그 뒤로 김국장과 묘목장 아저씨 그리고 식수일군들이 배경으로 지켜섰다. 촬영기자가 찰칵! 찰칵! 해살 튕기는 음향을 울리며 아름다운 화면을 영상에 담았다.
오늘따라 하늘련못가 능수버들 곁에 뿌리 박고 키높이 자란 애솔나무는 더욱 푸르게 설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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