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 70년대 중반에 연길분지 부르하통하 남쪽 하남가에는 꽤나 굵직굵직한 국영기업들이 폼잡고 들어앉아 활기차게 자랑을 떨쳤었다. 무슨 뻐스공장이요 통용창이요 농구창이요 화학비료공장이요 줄느런한 그 가운데는 연변신화인쇄공장이라는 기업도 있었는데 뭐랄가 ‘만록총중일점홍’이랄가? 아무튼 뭇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공장이였다. 기계설비나 생산조건, 경제효익 등 경성환경이 좋았고 그보다도 ‘꽃속의 꽃’이 라는 녀성종업원이 많았었다. 그것도 인물 곱고 체격이 잘 빠진 녀인들이 많았다. 그 시기에 인기몰이 분야였던 체육, 예술 등 전업단체에서 ‘배구의 꽃’, ‘빙설화’, ‘무대의 꽃’으로 영예를 떨치고 미모를 뽐내던 체육인이며 예술객들이 ‘청춘밥통’이 떨어질 즈음이면 온전한 기업으로 자리를 옮겨 앉는다고 그 공장으로 전근해가군 했던 것이다.
그중에는 자랑스럽게도 나의 장모님도 있었다. 나란 인간도 별로 똑똑한 축에는 못가는가부다. ‘가시어마이’말거리부터 들고 나서려는 녀석이 똑똑하면 얼마나 똑똑할가! 당시 인쇄공장 울안은 꽤나 크고 넓었는데 울울창창 록화도 잘되고 울긋불긋 화단도 잘 가꿔졌는바 척 들어서면 벌써 청신한 기분이 들었다. 거기에 잔걸음 치며 오고가는 녀성종업원들을 보면 꽃밭속에서 나풀거리는 나비들 같았다. 여기에서 장모님의 자랑을 슬쩍 스치고 싶은 욕심이 굴뚝같이 서지만 나중에 ‘바보’라는 모자를 쓸가봐 이쯤에서 스톱!
당시 부르하통하가 연길의 남과 북을 갈라놓았다면 와룡산 동쪽기슭을 핥으며 흘러내리는 연집강은 연길의 하북을 동서로 갈라놓는 은띠가 되여주었다. 그 연집강 하류에 놓인 공원다리가 시내쪽에서 공원가를 이어주었다. 그 다리 동쪽머리에서 북으로 한 2백메터쯤 가면 길녘에 ‘메탄부(煤炭部)’가 있었고 그 뒤로 가두 골목길이 동으로 삐뚤삐뚤하게 뻗어졌다. 그 골목길 어귀에 ‘연길시기관식량공급소’와 ‘신흥식량공응점’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량식국 산하에 ‘식숙식품가공공장’이란 자그마한 기업이 백지장을 들고 일어서면서 ‘기관식량공급소’는 그 공장의 한 전을굽는 생산직장으로 탈바꿈했다. 그저 전병이라면 그 종류가 하도 많아서 사람들은 손바닥만한 전병인지 발바닥처럼 길쭉한 전병인지 아니면 속에다 팥고물을 넣고 구워낸 전병인지 잘 분간 못한다. ‘짼빙’이라고 해야 종이장처럼 얇고 솥뚜껑처럼 둥글고 숯불에 구워낸 햇강냉이처럼 고소한 그 전병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하여 모두들 그 공장을 ‘짼빙창’이라 불렀다. 일단 ‘짼빙’이 생산되여 각 량식공급점을 통해 나가자 맛있다는 소문이 퍼져 줄을 서야 겨우 한두봉지씩 살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 헌데 그 ‘짼빙창’에서 짼빙보다 더 소문을 낸 일도 있었다.
‘짼빙창’이 설립되던 그 해 5.1절에 연길공원에서 종업원운동경기대회가 열리게 되였다. 축구, 배구, 롱구, 탁구 등 구류가 주요 경기종목이였다. 시체육위원회 통지를 받고 공장에서는 녀자배구대를 내왔다. 아직 공장의 설립 초기라 무엇이나 변변치 못한 처지에서 대충 세워진 배구대여서 어딘가 좀 시시해보이기도 했고 어설픈 데가 많았다. 헌데 한가지만은 똑 부러진데가 있었다. 선수들 모두 공장에서 제일 이쁘고 짼빙을 제일 맛있게 구워내던 처녀애들로만 뽑혀졌다는 점이다. 뭐 순애, 경자, 명화, 은옥이, 영숙이… 다 또릿또릿한 처녀애들이였다. 서로 생김새도 다르고 몸매도 달랐지만 보는 사람들 눈에는 다 맵시있게 보이는 모습이였다. 례컨대 순애는 순애대로 고운데가 있었고 은옥이는 은옥이대로 고운데가 있었다. 마치도 빨간 꽃은 빨간 멋에 곱고 노란 꽃은 노란 멋에 곱다는 격이랄가! 그 처녀애들이 얼마나 이쁘고 어떻게 곱다는걸 일일이 설명하며 초상묘사로 그려내자면 꽤나 아름찰것 같다. 그래서 명화란 처녀애 하나만 소개해도 기타 녀자애들이 얼마나 예뻤겠는가 하는게 짐작이 갈 듯 싶다.
명화는 학교때부터 배구도 치고 문예선전대에서 노래라면 꾀꼴이요 춤이라면 나비였다. 배초구중학교는 왕청현내에서도 규모가 크고 학생수도 엄청 많았다. 그 숱한 학생들, 동급동년 학생들은 물론, 3년제 전교 학생들이 명화를 모르는 학생이 없었다고 한다. 그건 학교에서 제일 고운 녀자애였기 때문이다. 하여 그녀는 어디로 가나 숱한 시선이 집중되는 초점이였다.
“얘들아, 저기 저 국방색 치마가 그 기집애야. 저런 애들은 옷을 대충 입어도 멋스러워…”
“남자친구 있대?”
“다닥다닥 달라 붙는다더라…”
그녀가 지나가면 뒤따르는 녀자애들의 수군거림이였다. 몇십년이 지난 얼마 전에 할머니가 된 명화랑 배초구촌에 가서 촌민활동에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웬걸, 촌민들 가운데서 한눈에 명화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야, 그 옛날 우리 학교에서 제일 고왔던 애가 아니구 뭐야! 아직도 여전하네…”
“고운 녀자들은 늙지 않는다더라…”
굳이 더 설명하지 않아도 명화가 얼마나 고왔다는게 짐작이 가지 않겠는가!
그런 미녀들로 무어진 배구대가 훈련을 시작하자 그 열정이 짼빙가마보다 더 뜨겁게 달아 올랐다. 허지만 빈 주먹에 일떠선 공장의 배구대라 그만큼 애로도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훈련장소도 없었고 공, 운동복, 신발도 변변치 못했다. 운동에는 뭐니뭐니 해도 잘 먹어야 잘 뛸 수 있는데 훈련하고 집에 돌아가면 대개는 궈테─가마굽에 붙여 구워낸 옥수수떡에다 김치쪼각을 먹어야 했다.
그녀들의 배구훈련이 가일층 긴장해지면서 직접적으로 짼빙생산에 영향을 끼치게 되였다. 하여 공장에서는 그녀들을 공장의 건축시공대에다 배치했다. 당시 기계화 짼빙 생산을 위해 새 공장을 광명촌에다 짓기로 하고 그 시공이 한창 힘겹게 진척되던 때였다. 당시 그 시공 현장을 책임진 시공대 대장이 바로 나였다. 미녀들이 시뿌연 시공현장에 나타나니 일터에는 어딘가 모르게 생기가 돌았다. 짼빙만 잘 굽는 줄 알았는데 그녀들은 시공현장의 이러저러한 힘겨운 일도 깔끔하게 잘 해나갔다. 벽돌 나르기와 같은 일에도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들은 늘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에다 하얀 땀방울을 줄줄이 달고 가분가분 돌아치군 했다. 그리고도 오후 일이 끝나면 배구훈련에 달라붙어 더구나 땀동이를 쏟군 했다. 5.1절이 닥쳐 오면서 이런저런 예선시합이 잦아지게 되자 아예 그녀들을 오전만 일하게 하고 오후엔 전문 훈련하게 하였다.
어느날 등뒤에다 배구뽈을 그물채로 멘 순애가 날 찾았다.
“저 이제 정식시합이 금방 눈앞인데 우리한테 오전오후 온 하루 다 떼주면 안되겠소?”
“안되오!”
나는 단호하게 잡아뗐다. 시공진척이 처졌고 일손이 딸렸다. 더구나 4, 5월이면 강우량이 적은 시기라 건축시공의 황금기나 다름 없었다. 하루한시가 새로웠고 어디 고양이손도 빌릴데 없나 해서 신경이 날카로워질 때였다.
“안돼?”
순애의 미간이 쪼프려지고 눈이 올롱해졌다.
“이봐 용철이, 다른 공장 배구팀에서는 집체주숙하면서 맨날 이밥에 고기장물 해먹으면서 훈련한대. 우린 아직 그렇게는 못해도 시간이야 좀 충족하게 줘야지…”
“순애, 자기도 보다싶이 지금 시공임무가 얼마나 중한가, 시간두 급하구… 배구야 뭐 두어번 치다가 시합이 끝나면 그만이 아닌가! 그것두 등수에라도 들면 모를가…”
그 말이 순애의 어느 신경을 자극했는지 그녀가 앵ㅡ 하고 달려들었다.
“뭐가 어쩌구 어째? 끝난다구? 등수에도 못든다구? 야, 너 뭐 시공대 대장질이나 하면 대단한 줄 알어? 우린 얼마든지 등수에 들수 있어. 꼭 들구 말거야!”
우리는 나이가 비슷했기에 롱담이 심할 때면 서로 말투가 “야! 자!”로 번지군 했었다.
“오, 그래? 내 미리 축하해주마. 힘내!”
“야, 시간이래두 줘야 힘내지, 이 딱갑재야!”
“시간이 아깝다. 등수에나 든다음 시간 팍팍 줄게.”
“야, 너 두고 봐. 우린 등수에 들 뿐만 아니라 일등을 할거야!”
순애의 고운 얼굴이 밉게 찡그려졌다…
마침내 우리는 5.1절을 맞았다. 그 날 연길공원에서는 축구, 롱구, 배구 등 구류시합이 여러 곳에서 동시에 벌어졌다. 그 가운데서도 녀자배구경기는 인기절정이였다. 경기는 사전에 시급 분조와 주급 분조로 나눠 진행되였는데 생각밖에 시급 분조에서는 짼빙창팀이 여러 강팀을 꺾고 결승전에 올랐고 주급 분조에서는 연변신화인쇄공장팀이 결승에 올랐다. 연변신화인쇄공장팀은 원체 오랜 강팀이라 관객들 심중에 수자가 있었다. 헌데 짼빙창팀은 처음 나섰기에 그 수준여하를 가늠할 수 없었다. 뭐 빗대여 말하자면 짼빙창팀은 금방 물장구나 치고 물우에 동동 뜨는 새끼오리에 불과했고 연변신화인쇄공장팀은 폭풍우 속에서도 자유자재로 날아예는 해연과도 같다고나 할가!
경기가 시작되자 두팀의 응원대가 서로서로 열기를 띄웠다. 특히 짼빙창응원대의 열기가 뜨거웠다.
“경자야, 깍아쳐! 왼쪽, 왼쪽이야! 그물밑에다…”
“은옥이, 영숙이한테 띄워!”
“명화, 받아! 엎어지면서라도… 에그, 그 고운 얼굴에 생채기를 낼가봐 엎어는 안지네…”
당시 경기장은 보드러운 모래가 섞인 적색점토를 펴고 다진 바닥이여서 어푸러지면 살갗이 찢어질 수도 있었다. 그래도 경자가 점프력이 좋았고 완력도 강했다. 대방이 번개치 듯 깎아 치는 공이 총알처럼 변선을 치려는 순간에 영숙이가 잽싸게 무릎을 꿇고 받아서 반공중으로 띄웠다. 찰나, 경자가 씽ㅡ 달려가며 몸을 훌 날리더니 벼락같이 내려치자 공은 대방의 빈 구석을 보기좋게 강타했다. 경기가 치렬해지면서 짼빙창팀은 어쩔 수 없이 수준차이를 보였다. 그래서 더 이악스레 치고 깎고 넘기고 하며 몸을 내번지는 것 같았다. 빨갛게 상기된 그 얼굴들, 이마전에서 줄줄이 흐름새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들이 부딪쳐낸 땀보라를 휘뿌리며 뛰고 솟구치던 그 몸매들… 그처럼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그날 연변신화인쇄공장팀도 아주 날쌔게 쳤다. 강팀이 다르긴 달랐다. 선수마다 키도 크고 몸매도 쭉쭉빵빵 빠졌고 점프력이 대단했다. 다년간 전업단체에서 훈련받은 기초가 있는지라 개인기량도 출중했고 서로간의 협동작전도 착착 맞아떨어졌다. 특히 얼굴이 갸름하고 내려치기에 강한 그 선수가 대단했는데… 이름이 뭐더라? 원래 알았는데 잊음이 점점 헤퍼지네…
경기결과는 불보듯 뻔했다. 짼빙창팀은 아쉬운대로 준우승을 따게 되였다. 기실 그것은 대단한 성과였다. 금방 선을 보인 풋내기배구대로서 준우승을 따냈다면 친히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날 저녁 공장 직공 충걸네 집에서 축하만회가 펼쳐졌다. 분위기가 떠들썩 했다. 낮에 열띤 응원에 목이 다 쉑쉑 쉬여서 서로들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듣지를 못했다. 체육위원회 문주임도 연변신화인쇄공장팀의 요청을 사절하고 우리팀 만회에 광림하여 덕담도 해주고 나중에 다음과 같이 긍정해 주기도 했다.
“비록 일등보좌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그보다도 더 큰 영예를 떨쳤습니다. 정신상에서, 풍격상에서 그 어느 팀보다도 우수한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연길시민들께 한떨기 문명의 꽃을 선물로 올린거죠…”
그 만회에서 배구대선수마다 다 한두잔씩 냈는지 얼굴들이 발가우리하게 상기되여 복사꽃 같았다. 순애는 몇잔 굽을 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알딸딸해진 것 같았다.
“야, 용철아, 우리 등수에 들었니 못들었니? 등수에 들면 어찌자구 했지?”
나도 취기가 올라 웬간히 흥분된 것 같았다.
“야, 순애야, 근심걱정일랑 매달아 둬! 이다음 시간 팍팍 줄게!”
밖에 나오니 오월의 밤하늘엔 별들이 총총했다. 시원한 공기에 취기가 날려가는듯 싶었다. 그 어떤 후회감이 가슴 한쪽으로 밀고 들어왔다. ‘배구대에 시간을 좀 더 충분하게 줬더라면 일등할 수도 있지 않았을가?’
그번 배구시합에서 짼빙창 녀자배구대가 연길 시내판을 들썽해놓았다. 그때 연길 시민들이 남긴 말이 있다.
“그래도 짼빙창 처녀애들이 곱긴 더 곱더라구요!”
그후 짼빙창 처녀들이 곱다는 소문이 쫙 퍼져나가면서 매일 퇴근무렵이면 짼빙창 대문앞에서는 새로운 진풍경이 이뤄지군 했다. 꽃이 고우면 꿀벌이 날아든다는 격이랄가! 연길시내에서 좀 괜찮게 번진다는 남자들이 대문어귀에다 자전거를 세워놓고 서로서로 머쓱해서 서성거리며 기다리군 했다. 누구를? 짼빙을 맛있게 굽는다는 그 녀자들이 온하루의 피곤을 분세수로 가셔버리고 새뽀얀 얼굴로 대문을 나서기만 하면 얼싸! 이때다고 남자들은 자전거를 갖다 댄다. 그 고운 녀자들을 뒤에 앉히고는 거리로 내달린다. 신바람나게, 행복하게, 줄기차게! 연길시내에다 자랑을 떨치는거다. 봐라, 내게도 이런 녀자가 있다고, 곱지?
그때 그 짼빙창 녀자들, 거지반 시집을 잘 갔다. 새살림 재미도 보고 아이들도 잘 키워 출세시켜 시집장가 보내느라 애도 쓰고 인젠 손자손녀도 안아보고… 아무리 고운 녀자들이라고 해도 그만하면 된거지… 아직도 모자라 더 고와지자고 요즘 그 녀자들, 아니 지금은 할멈이 다 됐지…그 할멈 미녀들이 슬그머니 멋을 부리며 다닌다. 돈도 푹푹 써가며 말이다. 치아도 돌아가며 임플란트시술로 교정하면서…
그렇다면 그 연변신화인쇄공장의 배구대 미녀들은? 장모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녀들도 대개 시집을 잘 갔고 슬하에 자식들을 한구들씩 키워 출세시켰고 지금은 다 천륜지락을 누리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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