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언어창조의 기쁨을 누릴 때, 이 즐거움은 텍스트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된다. 독자는 독서 과정에서 그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이야기 리듬이나 서술 진행에 점진적으로 동화되며 언어가 선사하는 희열을 계속 읽어나가는 정신적 동력으로 전환한다. "
문학세계에 들어서는 첫번째 관문은 언어이며 이는 문학 작품을 구성하는 기본재료이다. 한자는 오늘날까지 지속 사용되는 고대문자 체계로, 언어적 혁신우위는 다차원적으로 드러난다. 구조 자체의 독특성은 물론 문화전승과 정보시대에 대한 적응력까지 포괄한다. 발전사를 살펴보면 갑골문, 금문, 소전, 예서, 해서의 형태적 진화를 거치며 한자가 본질적으로 미래 지향적인 살아있는 문화유산임이 립증되였다.
세계 각국 언어 가운데 중국어로 창작하는 중국 작가들은 선천적으로 무척 강력한 우위, 즉 문학언어의 창조성을 지닌다. 풍부한 어의, 단일 음절, 복잡한 조합이라는 한어의 천연적 자질은 작가에게 무한한 확장과 천변만화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헤밍웨이는 “자신만의 문장을 찾는 것”을 즐겼고 진충실은 이를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아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다. 찾는 과정 자체가 창조과정이며 ‘자신만의 문장’은 언어의 개성화를 완성함으로써 타 작가와 구별되는 뚜렷한 특질이다. 성숙한 작가에게 매번의 창작은 새로운 언어 창조이며 매번의 창조는 자기 혁신, 초월, 부정이다. 우아함, 아름다움, 깊이, 소박함, 활기, 익살, 유머, 철리 모두 자신의 문장으로 표현된다. 이 점에서 언어는 창작개성의 중요한 정체성이다. 언어적 특징이 뚜렷한 작가들은 그 이름을 가린다 해도 평의위원들은 언어만으로 작품의 저자를 판별할 수 있다. 그들의 언어는 강렬한 식별력을 지니기 때문에 독서량이 많은 독자라면 즉각 대응시킬 수 있다.
1990년대 문학 실험장에서는 찬란하고 생동감 넘치는 언어의 수림이 우거졌다. 우수한 문장은 작가가 사회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생활을 세심히 관찰한 후, 이를 고도로 응축하고 형상적으로 표현한 결과물이다. 이는 태동 단계부터 가식적이고 과장된 어휘를 자각적으로 배제하고 타인 또는 자신의 기존 표현과의 류사성을 회피하며 독창적인 길을 개척해 삶과 사물의 본질과 세부를 포착한다. 관찰대상의 특정 면에 초점을 맞추어 남다른 방식으로 간결하면서도 정확하고 생동감 있는 묘사를 구사한다. 빛나는 언어는 사막의 오아시스, 고목의 새싹, 어둠 속의 초불과 같아 독자의 마음을 울린다.
프랑스 학자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의 즐거움’ 리론은 자신의 글쓰기를 통해 표현 방식과 효과를 완성하는 언술 행위를 주장한다. 그는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텍스트 창작과 수용 과정의 미묘한 복잡성을 자신의 깊은 통찰로 전달해야 함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비범한 창조성을 나타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기쁨은 희극적 효과를 지닌다. 왕요의 소설 <민요> 서두에는 “나는 부두에 앉아있었고 해빛은 종이 한장처럼 엉덩이 밑에 깔려있었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태양을 종이조각으로 상상한 것은 학자출신 왕요의 형상사고가 빚어낸 기묘함이다. 필비우는 반나절 동안 한 문장을 고민한다고 고백한 바 있다. 필자의 추측으로 그는 이야기 자체보다 어떤 언어로 서술할지 탐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필비우의 소설에는 음악적 서사리듬이 흐른다. 당나라 시인 가도가 “두해에 세구절 얻으니 읊조리며 눈물 흘린다.”고 한 것은 자신의 훌륭한 문장에 감동한 것이다. 글쓰기는 두뇌 로동으로, 작가는 자신의 창작에 몰입하여 농부가 밀밭을 수확하는 듯한 기쁨과 안락을 만긱하며 문장을 음미하고 다듬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 같은 애정과 축복을 문장에 담아낸다. 창작자의 행복은 이처럼 신비로우면서도 단순하다. 이는 작가가 왕성한 창조력을 유지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은 일반적으로 이야기 구조와 언어창조 능력에서 발현된다. 창작력 쇠퇴는 우선 언어 표현력 약화로 나타나며 종종 의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거나 평범한 문장을 낳는다. 의도와 어긋난 서사언어는 방향성을 상실하며 진부한 표현은 필연적으로 작품을 빛바래게 만든다. 따라서 언어적 창조는 작가의 일생일대의 과제이다. 작가가 언어창조의 기쁨을 누릴 때, 이 즐거움은 텍스트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된다. 독자는 독서과정에서 언어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이야기 리듬이나 서술진행에 점진적으로 동화되여 언어가 선사하는 희열을 계속 읽어나가는 정신적 동력으로 전환한다. 끝까지 읽기 힘든 글은 대체로 서사언어의 문제로 귀결되며 지루하거나 서사론리에서 리탈한 경우가 많다. 《홍루몽》과 같은 진정한 고전은 이야기 설계부터 인물 운명, 거시적 구조에서 미시적 문장에 이르기까지 흠잡을 데 없다.
소설창작에 형용사를 사용하지 말거나 최대한 줄여 소박한 표현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견해는 일리가 있지만 지나치게 단순하여 한어의 수사적 아름다움을 간과하고 창조성에 대한 경외심을 상실한 면이 있다. 만약 작가의 언어가 미흡할 경우, 특히 소설에서는 반드시 보완책이 필요하며 유일한 구제책은 흥미진진하고 긴장감 넘치는 줄거리 뿐이다. 이야기로 승부하는 일부 소설들이 언어적으로 거칠 수밖에 없는 리유이다. 작품 최종 심미적 면에서 독자가 마주하는 것은 통합된 텍스트 전체이지, 단순히 복잡한 플롯이나 인물운명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다. 언어는 기본 건축재료로서 문장의 모든 디테일, 모든 인물, 모든 환경을 관통한다. 마음을 울리는 문장이 없고 생생한 언어가 없다면 독자를 소설의 상황에 몰입시키고 정서적 공감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작가의 언어창조는 언어실천을 통해 획득한 심층적 기쁨으로, 개체의 심미적 체험을 포함하며 이를 독자에게 전달하여 작품의 전반 사명을 완수한다. 작가는 예민한 언어감각을 갖추고 시대의 맥박을 포착하며 개인의 심미적 추구와 사회 문화적 수요를 결부해야 한다. 동시에 독자는 개방적 태도를 유지하면서 언어의 다양성과 혁신성을 수용하고 감상해야 한다. 지속적인 언어창조는 문화갱신과 텍스트 혁신의 동력을 강화한다. 알고리즘 언어가 성행하는 시대에 한어도 끊임없이 업데이트되고 있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언어의 ‘기이한 꽃과 특별한 열매’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학언어 창조에 대한 열정을 유지하는 것은 인류의 정신적 쾌락을 수호하는 중요한 방식이며 진정으로 한어를 인류문화 보물고의 꽃으로 피우는 길이다.
(저자는 안강학원의 교수이며 소설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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