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에 놓인 작은 화분의 들국화가 고개를 들었다. 아침해살이 스며드는 그 순간 꽃잎 가장자리에 맺힌 이슬 한방울이 반짝이며 스르르 굴러내렸다. 문득 그 물방울 속에 내 인생 전체가 담겨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스물, 서른, 마흔… 지나온 수많은 해들이 물방울 하나에 스쳐지나가는 듯 그 많은 세월 그 많은 이름들 속에서 진짜 ‘나’는 도대체 어디쯤에 있었을가.
‘딸’이라는 이름은 가장 오래, 가장 깊이 내 마음에 자리잡았다. 어린시절 부모님의 엄한 눈빛과 기대는 공부하는 책상 앞에 항상 함께 했다.
“우리 딸은 똑똑하니까.”
그 말은 칭찬이면서도 무거운 짐이였다. 밤늦게까지 책상에 앉아있노라면 창밖으로 보이는 별들이 부러웠다. 별들은 그저 빛나기만 하면 되였으니까. 부모님의 딸로서 나는 항상 잘해야만 하는 존재였고 그 기대에 조금이라도 부응하지 못할가 봐 숨이 막힐 때가 많았다. 나의 작은 욕심과 꿈은 뒤로 미뤄져야 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딸’이라는 역할에 너무 충실했던 탓에 스스로를 위한 공간은 좁아지기만 했던 것 같았다.
스물다섯 분홍 치마, 저고리 차림으로 나는 낯선 집 문턱을 넘어섰다. 그 순간부터 나에게는 ‘안해’라는 이름이 붙었다. 우리 부부는 결혼과 동시에 작은 집에서 독립적인 삶을 시작했다. 안해라는 이름은 내게 가장 달콤하면서도 복잡한 숙제를 안겨주었다. 시댁과는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는 건강한 거리를 유지했다. 명절이면 시댁을 방문했고 동서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며 수다스럽게 웃는 시간이 오히려 즐거웠다. 시어머니는 주방에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따뜻한 위로와 사랑으로 감싸주셨다. 나는 좋은 며느리라는 틀에 맞추기보다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이 되려 노력했고 안해로서는 희생보다 함께 성장하는 것을 선택했다.
‘엄마’라는 이름은 내 인생의 중심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첫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의 그 감동, 그 무게감은 어떤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었다. 한 생명이 나에게 완전히 의지한다는 사실이 신비롭고도 무서웠다. 밤낮없는 수유와 육아, 아이의 웃음이 내 세상의 전부였고 그의 울음소리는 내 마음을 뒤흔드는 지진과 같았다.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듯 살아가는 날들은 팽이처럼 돌아갔다. 회사에서는 능력 있는 직원으로, 집에서는 완벽한 엄마와 안해로 그 사이에서 나 자신은 점점 옅어져갔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은 피로로 무겁게 축 처져있었고 그 눈빛 속에는 ‘나’를 잃어버린 허무함이 스멀스멀 피여올랐다.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나는 정말 행복한지에 대한 질문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저 해야 할 일들을 해내고 있다는 생각 뿐이였다.
‘엄마’라는 이름이 점점 가볍게 느껴지기 시작할 때쯤 나는 ‘할머니’라는 새로운 칭호를 얻게 되였다. 손주를 처음 안았을 때 아이의 부드러운 뺨에 닿은 내 주름진 손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 작은 생명을 보며 아이들을 키우던 날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런데 이제는 달랐다. 할머니로서의 나는 조금 더 여유로웠고 조금 더 나다워질 수 있었다. 아이들의 엄마였을 때는 가르치고 훈육해야 한다는 압박이 컸지만 할머니는 그저 사랑으로 안아주고 지켜보는 존재였다. 손주가 내게 다가와 할머니 라고 부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면서도 그 사이에 흘러간 엄청난 세월에 가끔은 서늘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들은 결혼해서 제 집을 잡고 나갔다. 빈집이 되여버린 거실 쏘파에 나와 남편은 나란히 앉았다.
“이제 우리만의 시간이 시작되는구나.”
그의 말에 문득 신혼시절의 작은 집이 떠올랐다. 다시 찾아온 둘만의 시간은 낯설게만 느껴졌다. 아이들이 떠난 자리에 나와 남편이 서로를 새롭게 마주하는 시간이 되였다. 우리는 부모가 되기 전의 그 젊은 련인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지만 함께 려행을 다니고 새로운 취미를 찾으며 인생의 가을을 함께 걷는 동반자로 다시 련결되고 있었다.
그 많은 이름들-딸, 안해, 며느리, 엄마, 직장인, 할머니 그 무수한 역할의 옷을 입고 살아오는 동안 진짜 ‘나’는 어디에 있었을가. 내가 원하는 음식을 마음껏 내 맛대로 지어 먹어본 적이 있었던가? 하고 싶은 대로 시간을 보내본 적이 있었던가? 그저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내 안의 작은 목소리들은 점점 더 작아져갔고 결국엔 묻혀버린 듯했다. 인생의 커다란 흐름에 휩쓸려 나는 스스로의 배를 저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바람이 부는 대로 파도가 치는 대로 흘러왔을 뿐이다. 다행히 ‘엄마’라는 이름은 나를 옥죄지 않고 날개를 달아주는 힘이였지만 그 자유로움 속에서도 완벽한 녀성이 되여야 한다는 사회의 속삭임은 여전히 내 귀가에 맴돌았다.
베란다의 들국화가 살며시 바람에 흔들린다. 누군가의 정성을 기대하지 않고 그저 스스로의 힘으로 땅을 박차고 올라와 해빛을 맞으며 피여난 들국화 그 꽃을 바라보며 문득 깨닫는다. 지금 이 순간 이 화분 앞에 앉아 꽃을 바라보고 있는 이 녀자가 그 모든 역할들을 겪어내고 남은 진짜 나 자신이라는 것을 느껴본다.
그동안의 나는 사라진 것이 아니였다. 딸로서 부모님을 사랑했던 그 마음, 안해로서 한 사람과 깊이를 더해가며 배운 상호 존중, 며느리로서 시댁과 쌓아온 건강한 관계, 아이들을 향해 온갖 정성을 쏟았던 엄마의 그 사랑 그리고 이제 손주를 품에 안으며 느끼는 새로운 감동, 그 모든 것이 겹겹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 밑바탕이 되였다. ‘안해’라는 이름은 특히 내 인생의 버팀목이였다. 서로의 꿈을 지지하며 때로는 의지하고 때로는 지탱해주는 그 관계 속에서 나는 혼자서는 결코 알 수 없던 나 자신의 깊이를 발견했다. 각각의 역할 속에서 나는 내 일부를 내여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경험들은 나를 더 풍요롭고 깊게 만들었다. 눈물과 웃음 좌절과 성취가 교차하며 짜여진 그 인생의 두꺼운 직물이 바로 나 자신이였다.
그동안 나는 ‘나’를 찾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많은 역할들 속에서 나는 온전히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 모든 경험이 내 안에 스며들어 이전에는 없던 어떤 단단함과 평온함을 준다. 자식들 걱정에 밤새 잠 못 이루던 그 마음은 이제 세상을 향해 좀더 너그러워졌고 안해로 반평생을 걸어온 길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진실했기에 지금의 이 고요한 행복은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해살이 점점 높아지며 들국화의 노란 꽃잎이 더욱 선명해진다. 작은 화분이지만 그 생명력은 당당하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화분에 물을 준다. 지금 이 순간 더 이상 딸도, 안해도, 엄마도 아닌, 그저 나 자신으로서 이 해살과 바람을 온전히 느끼는 녀자이다. 과거의 그 많은 역할들은 내가 살아온 길의 리정표였을 뿐 나 자신은 그 길을 걸어온 그 존재 자체였다. 특히 ‘안해’라는 이름은 다른 어떤 역할보다도 내게 가장 가까운 동반자였고 그 길을 함께 걸어준 남편이 있어 지금의 내가 있음을 심심히 느낀다.
그 많은 이름과 역할 속에서 나는 결코 길을 잃지 않았다. 나는 그 모든 길을 걸어왔고 그 모든 길이 나를 지금 이 자리에 이르게 했다. 베란다의 들국화가 또 한번 살짝 흔들리며 마치 고개를 끄덕이는 듯하다. 안해로서, 녀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오늘도 나는 나만의 해살 아래서 그 모든 이름들이 빚어낸 하나의 인생을 충분히 아름답고 충분히 나다운 존재로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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