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문예작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항상 전문가 및 대중이라는 부동한 차원의 수용과 평가에 직면해야 한다. 원래 전문가 평가는 세미나 등 전문성 범위에서 진행되는 우렬평가이고 대중 평가는 독자 또는 관중의 마음속에서 열독과 관람 과정에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감수로서 량자 사이 서로 간섭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인터넷 뉴미디어의 흥기와 더불어 사람들이 감정과 의견을 표현하는 경로와 방식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고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의 ‘관점의 늪’도 점점 커지고 있으며 다양한 관점의 충돌 역시 보다 직접적이고 적절해지고 있다. 한부의 영화가 개봉하면서 전문가들의 호평이 잇달으지만 흥행이 부진하거나, 하나의 새로운 연극에 관객들이 도시를 넘나들며 몰려들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피하거나 말을 아끼기도 한다. 특히 일부 시상 및 우수 평가 활동에서는 전문가의 인정도가 높지만 관중들의 평가가 낮거나 시장 반응이 뜨겁지만 최종 평선에 실패하는 상황이 자주 주목을 받거나 토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편으로 ‘불일치’가 나타났다고 하여 ‘일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전문 기준과 대중의 취향은 모순되지 않으며 전문가 평가와 대중 평가는 완전히 일치할 수 있고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문예 력사상 호평도 받고 인기도 끄는 작품이 너무 많은데 문예 창작은 바로 이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그러한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전문가 평가와 대중 평가가 일치하지 않다는 것은 작품의 전파 수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더 이상 단순히 ‘울안에서만 피는 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며 문예 생태의 활약 다시말하면 사람들이 한 드라마를 보고 난 후에도 의견을 듣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일치하는지 미처 느끼지 못한 맛을 느끼려고 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문가와 관중간의 이러한 감정의 흐름, 의견의 반영, 다양한 평가, 취미, 사상의 상호 참조는 바로 문예생활의 활력이 넘쳐흐르는 것을 보여준다.
‘불일치’가 있고 토론이 있으면 거꾸로 전문가와 대중들이 자기 성찰을 통해 자신의 관점을 더욱 수정하고 개선하도록 강요할 것이다. 이 전문가의 의견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것이 공정하고 진실한 견해인지, 얼마나 많은 것이 예술의 이름에 부응하는 진실한 대조인지, 혹은 얼마나 많은 것이 뒤돈을 받고 한 평론이거나 인정에 따른 평론인지 따지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대중 평가에서도 진심에서 우러나온 감수인지, 아니면 전파량과 조회수를 위한 눈가림인지, 개인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목소리인지 아니면 플랫폼의 의견인지, 또는 그 뒤에서 일어나는 팬덤 경제가 작용하고 있는지도 보게 되는 것이다.
전문적인 관점에서 출발하든 개인의 감정을 중시하든 진실하고 진정성이 있고 전문가에게는 전문가의 가치, 대중에게는 대중의 페부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이 있다면 모두 가치가 있는 것이며 그러한 의견들은 진심으로 마음에 두고 있는 창작자에게 참고가 되고 흡수될 것이다.
최근 몇년간 중요한 추세중의 하나는 전문가와 대중간의 상호 작용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를 주체로 하면서 대중을 대상으로 한 예술적 인도와 예술감상 및 다양한 형식의 공연 후 토론 또는 상영 후 토론은 대중예술 소양 보급과 향상을 위한 다리를 놓게 된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급부상한 예술분야 셀프미디어에서는 베테랑 전문가의 현장 시연 뿐만 아니라 열성 애호가의 열정적인 평가도 있으면서 다양한 시각과 다양한 미적 취향이 소통하고 상호 학습하고 있다. 이러한 생태는 문예의 다행스러운 일이며 이를 통해 문예평론의 더 많은 가능성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인민일보
- 많이 본 기사
- 종합
- 스포츠
- 경제
- 사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