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손맛을 찾아가다 □ 최진옥

2026-02-13 08:46:15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그릇 덮개를 열고 들여다 보니 연한 초물 밑에 하얀 두부가 조용히 누워있다. 한국자 떠서 사발에 담는 순간 하들하들한 두부발이 나를 빤히 올리쳐다보고 있다. 저도 모르는 사이 입안에 군침이 흐르면서 목젖이 방아를 찧으려고 한다.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었더니 구수한 냄새가 입안 가득 감돌다가 저절로 사르르 녹아 목구멍으로 자취를 감춘다. 눈이나 입이나 마음까지도 함께 호강하는 순간이다.

“오늘 저녁 두부가 제대로 된 것 같습니다.”

밥상에 올려놓기 바쁘게 남편이 한숟가락 입에 떠 넣더니 “와! 맛이 있구만. 하들하들하고 구수한 게 입안에서 녹아내리오. 진짜 옛날 두부맛이요.”라며 감탄한다.

여태까지 내 가슴을 지지리도 내리 누르던 큰 돌덩이를 내려놓은 것만 같아 깊은 한숨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엄마 손맛이 슴배인 두부맛을 찾기까지 그동안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경험을 모색해낸 지난날이 주마등마냥 눈앞에 떠올랐다.

두부를 먹는 날이면 남편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여나는 날이다. 남편은 남다르게 두부를 좋아했다. 비농호이면서도 농호 동네에서 살아왔던 남편은 농호집들에서 콩을 가지고 두부방에 가 두부를 바꾸어다가 먹는 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두부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그날을 꿈에서도 그려보았다고 한다.

남편과는 달리 나는 두부맛을 잃고 있었다. 장춘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전날 남은 배추채에 소금을 넣고 두부 몇 쪼각 넣고 끓인 국이 제일 값싼지라 경제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나는 그 국만 있으면 만두 하나에 그것으로 끼니를 에때웠다. 그때는 돈을 절약하는 것이 제일 급선무였던지라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고픈 배를 달래줄 수 있는 먹을 것이 있으면 만족하였다. 배추국에 몇쪼각씩 떠있는 두부는 내 엄마께서 해주던 두부와는 달리 숟가락이 잘 나들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을음내가 진동을 하였다. 국그릇에 들어있는 조그마한 두세쪼각의 두부가 어린시절 엄마 손맛이 담긴 두부맛을 대체해버렸다.

결혼한 후 남편의 영향으로 한숟가락 두숟가락 먹기는 했지만 웬 일인지 두부를 먹고 나면 속이 뜨직하고 위가 불편해났다. 그래서 남편이 그렇게 좋아하는 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이런저런 핑게를 대고 드문드문 안 챙겨주기도 했었다.

몇년 전 어느 날 문뜩 나절로 두부를 앗아볼 욕심이 생겨났다. 두부 노래를 입에 달고 사는 남편의 입도 막을 겸 나절로 앗아 먹는 두부가 더 안전하고 건강에도 유익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려서 엄마가 두부할 때면 곁에서 엄마 일손을 많이 거들면서 눈에 익힌 것이 밑천이 되겠다 생각하고 자신만만하게 접어들었다. 시장에 가 작은 비닐주머니에 포장한 서슬 한주머니 사오고 콩도 몇근 사왔다. 흰 광목천으로 콩물을 짜낼 자그마한 주머니도 손바느질을 해서 만들었다. 매돌 대신 콩물을 만드는 기계가 마련되여있으니 제법 두부를 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춘 셈이다.

시골에서 살 때 두부를 앗는 날이면 온 집안에 웃음꽃이 활짝 피는 날이였다. 큼직한 매돌에 매달린 어처구니에는 엄마 손, 오빠 손, 내 손까지 차례로 매달려있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매돌과 함께 우리의 웃음주머니도 빙글빙글 돌아갔다. 매돌에 갈리워 흘러내리는 콩물은 맛있는 한끼가 될 수 있다는 우리의 바람이고 희망이고 행복이기도 하였다. 일년 치고 몇번을 해먹을 수 없는 두부가 우리의 단백질 보충의 원천이였고 생활개선을 할 수 있는 한끼였다.

한방울의 콩물이라도 더 짜내기 위하여 콩을 보드랍게 갈아야 했다. 한번 갈리워 내리는 콩을 엄마는 거듭거듭 매돌 아구리에 퍼넣었다. 생산대에서 분배하는 콩으로는 일년 동안 먹을 토장과 간장과 고추장을 만들어야 했으므로 오빠들이 들에 나가 하루종일 땀을 흘리고 손바닥에 물집이 생기면서 삽질하여 쥐굴에서 파온 콩이거나 내가 동네 애들과 같이 온 콩밭을 샅샅이 누비면서 주어온 콩으로만 두부를 할 수 있었다. 콩을 다 갈고 나면 아버지께서 부엌에 내려가 불을 지피면 엄마는 큼직한 가마에 갈아놓은 콩을 부어놓고 열을 올린다. 콩물이 뜨뜻해지면 광목주머니에 넣고 콩물을 짜낸다. 엄마가 힘들어한다고 오빠들이 함께 주머니를 짓누르면 콩물이 흘러내린다. 가마를 깨끗하게 부셔내고 콩물을 가마에 넣고 끓이기 시작한다. 넘쳐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엄마는 박바가지에 찬물을 담아 가마목에 준비해두었다.

콩물이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뭉근한 불로 한참 동안 끓인다. 넘쳐나지도 않고 보글보글 잘도 끓어오른다. 불조절은 아버지만의 노하우였는지도 모른다. 한참을 끓고 나면 콩물에 노란 딱지가 한벌 앉는다. 서슬을 쳐도 되는 시점이다. 엄마는 콩물 한사발을 박바가지에 담고 물에 희석한 서슬을 숟가락으로 콩물에 떨어뜨려본다. 잠간 사이 콩물에 두부발이 지기 시작한다. 엄마는 천천히 천천히 콩물에 서슬을 뿌리기 시작한다. 박바가지로 천천히 저으면서 두부발이 앉는 정도에 따라 서슬량을 조절하면서 넣었다. 큼직큼직한 두부발들이 둥둥 떠오른다. 물을 찌울 수 있는 그릇에 광목보자기를 펴고 바가지로 가마의 두부를 퍼놓고 무거운 물건으로 한참 동안 누르고 있으면 모두부가 된다. 큰오빠의 친구들까지 두부를 무척 반가워하는지라 엄마는 두부를 할 때마다 꼭꼭 나를 심부름 시켜서는 큰오빠의 친구들을 불러오게 했다.

엄마께서 두부를 하는 과정을 떠올리면서 나도 두부앗기에 도전해보았다. 아침부터 콩을 물에 불리고 오후 세시쯤 되자 남편이 룡왕산으로 올라가는 길옆 샘터에서 길어온 샘물을 넣고 콩물을 만드는 기계로 콩을 갈기 시작하였다. 그 샘물이 두부가 제일 잘된다고 했다. 몇번을 돌려내야 했으므로 꽤나 시간이 걸렸다. 뜨거운 콩물인지라 손을 몇번씩 찬물에 헹구면서 콩물을 짜냈다. 짜낸 콩물을 불수강그릇에 붓고 가스불로 끓이다가 콩물에 노란 딱지층이 한 벌 앉자 불을 껐다. 서슬을 천천히 치면서 지켜보느라니 두부발이 서기는 하지만 큰 덩이가 지지 않고 자질구레한 부스러기발이 지면서 보기에 참 스산했다.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모양은 엉망이다. 그 옛날 엄마가 두부를 만들 때에는 다 끓은 콩물에 서슬을 치면 굵직굵직한 두부발이 초물 우로 둥둥 떠올랐었는데.

무슨 탓이지? 혹여 물 탓일가싶어 이번에는 룡왕산 꼭대기의 샘물로 해보고 다음번에는 수질이 으뜸이라고 하는 청호 샘물로 해보았다. 그다음에는 룡남촌 동쪽 샘터의 샘물로 해보고 또 다음번에는 과수원쪽 샘물로 해보았다. 어느 물이면 될가싶어 수도물로까지 해보면서 몇번이고 물을 바꾸어보아도 그 상이 장상이다. 어느 한번은 콩물기계로 여러번에 나누어 갈아내고는 뜨거운 콩물을 찬물에 손을 적셔가면서 짜내고는 찬물을 섞지 않았으니 괜찮을 거라 믿고 금방 갈아낸 뜨거운 콩물과 이미 갈아낸 다 식은 콩물을 합쳐서 서슬을 쳤는데 두부발이 잘 잡히지 않았다. 두부발을 잡는 데만 정신을 가다듬으면서 서슬을 여러번 쳤더니 그만 서슬이 량이 넘어났던 모양이다. 그런대로 두부는 만들어졌는데 쓰거운 맛이 나서 버리고 말았다.

두부는 하고 싶은데 내 생각과는 일만 팔천리도 넘게 다른 결과가 나온다. 도대체 어느 고리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도무지 영문을 찾을 길이 없었다. 여러 사람들과 두부를 하는 과정을 낱낱이 설명하면서 의견교류를 해보아도 절차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도 누구도 그렇다할 문제의 고리를 찾아내지 못했다. 사용하는 물의 탓도 아닌 것 같아 결국에는 콩물기계로 갈아낸 콩물 탓이 아니면 서슬에 문제가 있겠다고 아퀴를 짓고 말았다. 두부를 손수 해먹던 나의 열정도 어느 날부터 흐지부지 식기 시작했다.

그러던중 조카의 콩농사 덕분에 생각지 않게 콩이 많이 차례졌다. 메주를 쓰고도 넉넉하게 남아돌 수 있는 콩을 보면서 어느 날인가 두부를 손수 해먹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쳐들었다. 신심은 적었지만 그래도 한번은 새롭게 도전하고 싶었다. 엄마 손맛을 찾아가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일가? 가족을 생각하고 자식을 생각하면서 만들어낸 두부에는 엄마만의 비법이 따로 있지 않았을가?

콩물을 만드는 기계를 사용하면서 여러번 실패했던 적이 있었던지라 남편의 권고에 따라 이번에는 고기를 가는 기계를 사용하였다. 콩 한사발을 불려서 고기를 가는 작은 기계에 물을 적당하게 넣고 갈면서 콩물을 짜내는 작업을 몇번이고 반복했다. 갈아낸 콩은 작은 주머니에 넣고 두 손으로 꼭 짜냈다. 한번 짜낸 콩물은 너무 건 것 같아 두번째로 또다시 물을 넣고 갈아냈다. 이런 절차를 세번 정도 하고 나면 콩물이 묽어지고 콩비지도 새하얗게 되였다. 콩물이 송두리 채 빠진 것이다. 다 짜낸 콩물을 큰 불수강그릇에 붓고 가스불에 올려놓고 끓였다. 불을 세게 올렸다가 콩물이 끓어오르는 기미가 알리자 가스불을 낮추고 계속 끓였다. 콩물은 끓어오르는 순간에 쉽게 그릇에 넘쳐 흐르기 때문에 불조절을 잘해야 하고 절대 딴눈을 팔면 안된다. 십여분 천천히 끓이다 보니 콩물 우에 얇은 딱지가 생겼다. 서슬을 칠 수 있는 정도까지 끓었다는 신호이다. 가스불을 끄고 몇분간 뜸을 들이면서 콩물의 온도가 차츰 내려가기를 기다려 서슬을 치기 시작했다. 만일의 경우를 고려하여 작은 그릇에 콩물 한국자 떠놓고 서슬을 쳐서 실험해보았다. 두부발이 앉기 시작한다. 큰 그릇의 콩물에 서슬을 쳐도 실패는 없다는 뜻이다. 결정체상태인 서슬은 찬물로 미리 희석해두었다. 희석한 서슬을 숟가락으로 떠서 다 끓은 콩물에 아주 천천히 치기 시작했다. 처음 몇초간은 콩물에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조급해하면 안된다는 것을 잘 안다. 계속 서슬을 치다 보니 어느 순간에 밑으로부터 두부발이 큼직큼직하게 생기면서 둥둥 위로 올리밀고 미황색이던 콩물이 연한 초물로 변하면서 두부가 만들어졌다. 서슬을 천천히 치고 적당하게 쳐야 하들하들한 두부발이 선다.

나는 그릇 덮개를 덮어놓고 2분 정도 기다리다가 다시 덮개를 열어보았다.

“와!” 저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소리, 두부가 한 자리를 턱하니 잡고 있었다. 초두부가 만들어진 것이다. 국자에 떠보니 하들하들한 두부가 나의 두 눈을 호강시킨다. 엄마께서 두부를 앗던 과정을 하나하나 상기하면서 그 절차 대로 했더니 드디여 두부가 만들어진 것이다. 엄마 손맛이 날런지? 근심과 걱정이 가슴 한구석을 차지했다. 한숟가락 입에 떠넣어보니 구수한 맛이 입안 가득 차넘친다.

몇번의 실패 끝에 드디여 제대로 된 두부를 만들어냈다. 내 손으로 만들어낸 두부를 먹어보니 몸도 찌뿌드드한 감각이 없고 위도 아리지 않아 좋았다. 거듭되는 실패를 하면서 나절로 많은 경험을 쌓게 되였다. 콩물을 만드는 기계를 사용하는 것과 고기를 가는 기계를 사용하여 콩물을 얻는 과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실제는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콩물 만드는 기계로 갈아낸 콩물은 익어서 나오기 때문에 직접 먹을 수 있다. 뜨겁게 나오기 때문에 찬물을 조금 섞어야 주머니로 쉽게 짜낼 수 있다. 또 콩물 만드는 기계가 너무 작아서 여러번 갈아내다 보면 먼저 갈아낸 콩물은 어느 사이 식어버리고 금방 갈아낸 콩물은 뜨겁다. 즉 뜨거운 물과 찬물의 반복적인 세례를 받다 보니 온도변화가 빈번하다. 그것을 섞어서 한그릇에 넣고 끓인다. 빈번한 온도변화 때문에 콩물의 내부구조에 어떤 질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닌지? 고기를 가는 기계로 콩을 갈 때에는 찬물을 사용한다. 콩은 여전히 생콩이기 때문에 짜낸 콩물을 직접 먹을 수 없다. 여러번 갈아내기는 하지만 시종일관 찬물을 사용한다. 그래서 콩물은 온도변화가 없다. 찬 콩물을 그대로 끓이는 것이다. 엄마께서 두부를 앗을 때에는 매돌에 콩을 갈았으니 시종일관 찬물 상태였다가 가마에 넣고 불을 때야 더워지기 시작했었지. 그러고 보면 콩물의 온도가 두부를 성공적으로 앗는 데서 결정적 작용을 일으키는 것 같다. 두부를 앗으면서 거듭되는 실패 끝에 나절로 정리해낸 결론이다.

두부를 만드는 과정은 엄마 손맛을 찾아가는 나의 과감한 도전이였다. 어려서 두부를 앗는 엄마 일손을 도우면서 한마디 전수도 받지 못하고 어깨너머로 지켜본 엄마 손맛을 되돌려보는 도전의 시간이였다. 두부를 만드는 데 숨겨진 노하우를 하나하나 찾아내면서 엄마 손맛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가난을 매돌에 갈아 가정의 행복을 만들어낸 엄마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나기도 하였다.

두부를 만드는 과정은 손수 체험을 통한 나의 깨달음이였고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용기를 내여 엄마 손맛을 찾아가기 위해 걸어온 험난한 길이였다.

두부를 앗으면서 한낱 식재료인 콩의 변신에서 쉽지만은 않았던 인생살이를 뒤돌아보게 되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한발자국 한발자국 걸어왔다. 유아기의 아기는 몇십번, 지어는 몇백번도 더 되는 실패 끝에 엎치는 데 성공한다. 말로 표현은 못해도 아마도 속으로 많은 경험을 총화해냈을 것이다. 걸음을 떼기 시작해서부터 온전하게 걷기까지 아기는 3000번도 더 넘게 넘어진다고 한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낯선 환경과 낯모르는 선생님과 학생들과 어울리는 과정도 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이루어진다.

학습도 오르락내리락하는 성적의 파동 속에서 하루하루 지식을 쌓아간다. 직장생활 또한 다양한 도전의 련속이다. 손에 익은 일이라면 그런대로 괜찮지만 새로운 업무를 접했을 때에는 좌충우돌 속에서 묻고 배우고 경험을 쌓아가면서 해야 한다. 어느 절차인들 실패의 고배를 마셔보지 않았을가? 그런 실패가 모이면서 경험을 쌓아올렸고 인생도리를 깨우쳤다.

가족건강을 챙기려는 내 마음과 정성을 듬뿍 넣고 직접 만들어낸 초두부가 우리 집 밥상을 장식해주는 제일 맛있는 진수성찬이 되였다. 식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재미에 번거롭고 복잡하지만 계속 두부를 만들고 싶다. 내 가족 건강을 챙기는 데서 행복을 느끼고 음식을 만드는 뿌듯함을 느낀다. 또 부부가 자식과 함께 밥상에 둘러앉아 먹는 한끼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페부로 느낀다. 내가 직접 달여낸 토간장에 시누이와 함께 농사 지은 마늘과 작은 양파를 다져 넣고 직접 말리운 고추가루까지 곁들여 밥상을 차려놓으면 남편은 물론이고 딸애까지도 맛있다고 숟가락이 두부사발과 입 사이를 실북 나들 듯 오고간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훔칠 사이도 없이 내가 만든 두부가 맛있다고 한사발 더 청해 먹는 남편을 볼 때면 두부를 제대로 만들기까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애태웠던 지난날이 생각나면서 저도 모르게 피씩 웃었다. 그러면서 끝내 엄마 손맛을 찾아낸 내가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이 겨울을 맞으면서 두부를 자주 밥상에 올려야겠다. 뜨끈뜨끈한 두부가 추위에 얼어들고 독감에 찌든 몸도 마음도 다 녹이고 면역력도 높여줄 것이라 믿는다. 엄마 손맛을 찾아내고 내 정성이 듬뿍 담긴 구수한 두부냄새가 내 코끝을 어루만지는 것 같다.

来源:延边日报
初审:林洪吉
复审:郑恩峰
终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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