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못 (외 4수)□ 남경희

2026-07-03 09:29:19

세탁기 옆 벽에 박힌

녹 쓴 대못을 뽑았다


못 뽑기로 힘주어 비틀어

수십년의 무게를

버티던 대못이 찔그랑

마른 기침을 하며

빠져나왔다

손가락으로 벽의

구멍을 막았다

어둡고 서늘한 바람이

손끝을 타고 파고드는데


그 작은 틈새로

한 집안의 무너진 시간이

줄줄 흘러나왔다


나는 서둘러 세멘트를

발라 구멍을 틀어막았다

그래야 더 이상 세탁기가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아서



새벽숲


검게 물든 하늘이

천천히 물감을 풀어낼 때

그리고 마침내

동트는 순간

숲은 두 팔을 벌리고

조용히 빛을 받아안는다


나무잎 끝에 맺힌

이슬 한방울이 첫 해살을

머금고 눈부신 빛으로

깨여날 때 안개는

숨쉬는 것 같았다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가장 효률적으로 어제의

쓰레기를 분해하고

있었다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그 아슬아슬한 시간

새벽숲에 들어선

당신은 그 숲속에서 가장

눈부신 새싹이였다


밤새 견뎌낸 슬픔조차

이슬이 되여 빛나는 곳

당신은 거기서 결코 더

맑게 피여날 것이다



휴지


하얀 솜처럼 포근하지만

바람만 스쳐도 찢어지는

둥글게 말린 그 작은

몸집에 세상의 더러움을

다 품고 있네


흘러내린 서러운

눈물 닦아주고

엎질러진 실수마저

기꺼이 삼키며

제 몸은 구겨지고

축축해져도 남은

자리만 맑게 비워내니


가장 깨끗하게

만드는 순간

쓰레기통에 던져지는

기묘한 운명

당연한 줄 알아 아무도

이름 부르지 않지만

없다고 하면 하루도 못 버티는 용감한 존재


태여난 목적이

곧 쓰임이요 소멸이라

해도 내 일상 속에서

가장 위대한 소모품

고맙다 휴지야



공허


묵묵부답

그 고요한 침묵이

신뢰 관계를 파괴한다


부탁했던 일들이

매듭짓지 못한 채

시간은 멈추고 나만

빈 들판에 남겨진 기분


기다림은 원래 이렇게

소리없이 사람의 가슴을

파고드는 병이였구나


텅 빈 우물에 돌을 던지듯

내 하루 돌을 던지지만

돌아오는 건 메아리 없는 침묵 뿐, 이 막막함을 공허라 말하고 싶다


너무 애썼던 나의 마음이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숨을 크게 내쉬며 비워내는 시간일지 모른다


오늘도 아무런 소식도

닿지 않는 적막 속에서

그저 허무함에 몸을 맡겨

쉬여가도록 해야 될 것 같다


텅 빈 가슴이라 느껴질 때 그 빈자리가 바로

내가 다시 숨을 쉬기 위해

마련된 넉넉한 여백이라고 생각해보련다


겨울 숲의 서명


나무들은 입을 닫는다

나도 내 안의 파도를

가라앉힌다


눈과 바람의 심연에서

하얀 침묵들이

서리꽃으로 피여나고

앙상한 가지들은

멈춰버린 새들의

노래를

목메게 부른다


고요한 숲은

별들의 안식처다

해는 언덕 너머로

기울어져

남겨진 그림자들의

무게를 달고

달은 밤새

떨어진 깃털의

체온을 더듬는다

나는 이제

숨결로 계절을 깁는다

심장에 박힌 그리움이

새싹 되여 터질 때까지


숲은 다시 입을 닫고

나도 언어의 갑옷을

벗었다

오직 눈발이 스치는

자리마다

고요한 우주가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来源:延边日报
初审:金麟美
复审:郑恩峰
终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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