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미원조전쟁시기 수많은 중국인민지원군이 제국주의의 침략 확장을 막고 조국을 보위하기 위해 피를 흘리며 목숨 걸고 싸웠으며 항미원조전쟁의 위대한 승리는 중화민족의 사책에 영원히 빛날 것이다. 8.1건군절을 앞둔 7월 29일, 항미원조 참전 로병사 황금숙로인을 만나 포연이 자욱했던 전쟁 시절의 기억과 헌신으로 빛나는 그녀의 청춘이야기를 들었다.

황금숙 로병사와 그의 아들 김성.
◆포연탄우 속 ‘꼬마’에서 어엿한 간호병으로 성장
연길시 삼꽃거리 모 아빠트단지에 거주하는 황금숙 로인은 아흔을 바라보는 고령으로 몸은 로쇠해 병석에 누워있지만 정신은 또렷했고 두 눈에는 여전히 군인 특유의 강인함이 깃들어있었다. 화룡시 쟈피구(현재 화룡시 룡성진 화흥촌)에서 태여난 황금숙 로인은 13살에 항미원조전쟁에 지원했다고 옛 기억을 꺼내 이야기했다. 어린 나이에 전쟁터에 나간 리유에 대해 로인은 “부모님의 영향이 컸습니다.”고 서슴없이 답했다.

“항일전쟁시기 아버지는 담가대 대원이였고 어머니는 병사들을 돌보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두분은 비록 군인은 아니셨지만 전선을 지원하는 일에 누구보다 열성스레 참가했습니다.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저도 자연스럽게 전선에 나가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은 제 고집을 꺾지 못해 끝내 허락했습니다.”
1951년, 황금숙은 길림성 집안시에서 지원군 병사들과 집결한 뒤 차거운 압록강을 건넜다고 한다. “함께 간 병사들중 제가 가장 어리고 체구도 작아서 모두들 저를 ‘꼬마(小鬼)’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38선 린근 최전방까지 강행군 했는데 하루에 근 130리(65킬로메터 정도)를 걸어야 했습니다. 발에는 온통 물집이 잡히고 심하게 퉁퉁 붓기자 병사들은 저를 짐을 실은 마차에 태워주고 추운데 잠들면 안된다면서 계속 말을 걸었습니다.” 전우들이 보살펴준 고마움을 그녀는 반세기가 넘은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꼬마’ 황금숙은 중국인민지원군 2407부대병원 간호병으로 일하다가 이후는 중국인민지원군 제2분부(第二分部) 제9대역(第九大站) 제14병원 간호병으로 투입되였다.
“전쟁터는 말 그대로 지옥과 같았습니다. 간호병은 부상병들을 방공호까지 업어 나르고 처치하는 임무를 주로 수행했는데 낮에는 적군들의 폭격이 극심해 해가 진 후에야 어둠을 타 환자들을 방공호 안까지 업어올 수 있었습니다. 부상병이 하도 많아서 걸어서는 임무를 완수할 수 없기에 계속 뛰여다녔습니다. 저보다 훨씬 무겁고 팔다리가 끊어져 고통스러워 하는 병사들을 살리기 위해 이들을 업고 뛰여서든 기여서든 어떻게 해서라도 방공호까지 가야 했습니다.” 로인은 참혹한 전쟁의 기억을 떠올리며 “지금 생각하면 스스로도 그 시간들을 어떻게 견뎠는지 싶습니다.”고 말했다.
방공호에 전기가 있을리 만무했다. 간호병들은 접시에 디젤유를 조금 붓고 그 우에 솜으로 심지를 만들어 불을 붙였으며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부상병들의 얼굴의 피와 먼지를 닦아주고 상처를 처치해줬다. “어떻게든 한명이라도 더 살리고 싶었지만 갑자기 포탄이 떨어져 산이 통채로 무너지는 참변을 겪을 때에는 전우들의 시신 조차 수습하지 못하고 급히 피신해야만 했습니다…” 제대로 된 치료나 약을 기대하기 힘든 렬악한 환경 속에서 어린 황금숙은 매일 전우들의 죽음을 마주해야 했다.
최전방으로 보급품을 전달하는 일은 하늘에 별따기처럼 힘들었다. 끼니라고는 수수밥에 아무런 건더기도 없이 장을 조금 푼 국이 전부였는데 그것마저 떨어지면 나물이나 풀을 캐서 먹었다고 한다.
생사를 넘나드는 치렬한 전쟁터에서 ‘꼬마’ 황금숙은 강인한 정신력과 신념으로 끝까지 버티며 진정한 병사로 성장했다. 1953년 그녀는 개인 3등공을 받았고 같은 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로부터 군공메달을 수여받았다. 1955년, 황금숙은 4년 2개월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제대 후에도 간호일선에서 30여년 헌신
전장에서 돌아온 황금숙은 화룡림업국종업원병원에 배치받아 간호사업을 이어갔다. 그녀는 간호사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고 꾸준히 학습했다. 1957년 연변위생학교에서 중등전문학습과정을 마쳤고 1981년 길림성림업국에서 조직한 물리치료 훈련반에서 연수했으며 1983년 연변위생간부연수학교 간호제고반에 참가하는 등 부단히 업무 실력을 향상시켰다.
황금숙은 투철한 군인 정신으로 자신과 후대들에 대한 요구를 높였으며 30여년을 간호 전선을 지키다 1989년에 퇴직했다.
현재 곁에서 황금숙 로인을 돌보는 둘째 아들 김성(51세)은 어머니를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꼽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항상 군인의 책임감과 의식으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며 사업을 참답게 해 동료와 환자들 사이에서 신임이 두터웠습니다.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당시 병원의 약국 관리가 혼란해 환자들이 약을 수령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병원 지도부는 약국 관리를 어머니에게 맡겼는데 어머니는 일주일 만에 다양한 종류의 약품을 정확히 분류하고 정리 정돈해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했습니다. 어머니는 사리가 밝고 국가대사를 관심하며 무엇보다 배우는 것을 즐겼습니다. 성품도 강직하고 올곧아 생활에서 어려움이 있어도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면서 조직이나 타인에게 손 내미는 것을 극히 싫어했습니다. 저와 형에게 절대 남을 해치는 일을 해서는 안되고 설령 자신이 피해를 보더라도 정직하게 살라고 가르쳤습니다.”
김성은 어머니의 굳은 신념과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지금까지도 자신의 삶에 큰 귀감이 된다고 덧붙였다.
◆위대한 항미원조 정신을 후대에 길이 전할 것
연길시 ‘로병사의 집’ 선전강연단 단장 아려걸은 어린 녀성의 몸으로 전장에서 고난을 겪은 황금숙의 사적에 깊은 감명을 받고 여러번 로인을 방문해 사적을 듣고 정리했다.
아려걸은 “로병사들의 혁명 정신을 결코 잊어서는 안되며 후대들에게 잘 전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황금숙 로병사의 사적을 미니극 형식으로 만들어 선전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매우 감동적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로병사들이 피 흘리고 목숨을 바치는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평화로운 생활이 있을 수 없습니다. 위대한 항미원조정신을 잘 이어받아 후세에 널리 전하는 것은 우리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자 사명입니다.”고 강조했다.
취재 말미에 황금숙 로인은 “저는 후회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부모, 형제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고 소녀, 중장년 시기에는 전우들의 관심과 조직의 배려를 받았으며 만년에는 자식들의 효도를 누리고 있습니다. 제 삶이 누구보다 행복했다고 생각합니다.”면서 “텔레비죤을 통해 날로 강성해지는 조국의 군사력과 국력을 보며 정말 자랑스럽고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글·사진 김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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