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너머의 세상 □ 신연희

2023-04-20 08:56:47

《만남》은 밀란 쿤데라의 에세이집이다. 전작들이 쿤데라 소설의 정체성, 중부 유럽 소설의 현재 위치, 나아가 소설이라는 예술 쟝르의 의미를 말하고저 했다면 이 책은 쿤데라 인생에 잊지 못할 방점을 찍어준 예술가, 혹은 예술작품들과의 ‘섬광이고 우연’인 만남들, 작품 발문을 인용하자면 그의 “성찰과의, 추억과의, 오랜 주제와의, 오랜 사랑과의 만남”들을 소개한다.

쿤데라가 경탄한 작가 베케트, 브로흐, 이오네스코, 말라파르트, 쿤데라와 교류했던 동시대를 움직였던 작가 르네 데페스트르, 카를로스 푸엔테스, 루이 아라공 뿐만 아니라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과 작곡가 야나체크 등, 쿤데라와 여러 거장들과의 만남은 21세기의 독자이자 청중인 우리들에게 또한 강렬하고 아름다운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작품 속에서 이런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

“1999년 빠리의 한 주간지가 ‘세기의 천재들’이라는 자료를 발간했다. 열여덟명이 수상자 명부에 올랐다. 그런데 여기에는 소설가도 없고 시인도 없고 극작가도 없다. 철학자도 없다. 건축가는 단 한명 있다. 화가는 단 한명이지만 디자이너는 두명 있다. 작곡가는 없지만 성악가는 한명 있다. 영화인은 단 한명 있다. 이 명부는 매우 분명하게 현실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유럽과 문학, 철학, 예술의 새로운 관계이다.”

‘세기의 천재들’ 자료에 따르면 이 천재들이란 코코 샤넬, 마리아 칼라스, 프로이트, 마리 퀴리, 빌 게이츠, 피카소, 이브 생로랑, 록펠러, 큐브릭, 토머스 에디슨 등이다. 쿤데라는 이 명부가 “매우 분명하게 현실적인 변화를 예고했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문화의 천재들을 조금의 후회도 없이 멀리 내친 것이다. “세기병과 도착증 그리고 그 죄악과 함께 모두 명성이 더러워진 문화적 우두머리들”보다 “코코 샤넬과 그녀 드레스의 순수함”을 사람들이 선호한 것에서 쿤데라는 “그나마 위안”을 받는다. 쿤데라에 따르면 유럽은 검찰관들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유럽은 더 이상 사랑받지 않고 있다. 유럽은 더 이상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예술이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리유가 무엇일가? 쿤데라는 그 대표적인 례로 영화 기술을 꼽는다. 책에서 쿤데라는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발명한 것은 “예술이 아니”라 “기술”이라고 단언한다. 예술로서의 영화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중요성은 기술로서의 영화의 중요성보다도 훨씬 더 제한적이고 그 력사가 모든 예술 력사중에서 가장 짧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과정에 이런 구절도 눈에 띈다.

“이러한 ‘활동사진’의 발견이 없었다면 지금 세상은 현재 모습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기술은 우선, (스폿 광고, 텔레비죤 드라마처럼 저질 문학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바보 만들기의 주요한 동인이 되였으며 두번째로 (불리한 상황에서 정적을 비밀리에 촬영하고 테로 행위가 일어난 후 들것에 누워있는 옷이 반쯤 벗겨진 녀자의 고통을 불멸화하는 카메라처럼) 전 지구적인 무례함의 동인이 되였다.”

스토리텔링으로서의 영화가 아니라 화려한 3D 기술로서의 영화가 주목받고 작고 간편한 휴대용 기기가 책, 편지, 오디오의 기능을 독점해가는 현시대, 사람들은 점점 더 순수 문학으로서의 소설과 시를 읽지 않고 있다. 쿤데라가 “예술-이후의 시대에 있다는 느낌, 예술의 필요성, 감수성, 예술에 대한 사랑이 사라지기 때문에 예술이 사라진 세상에 있다.”라고 말한 것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쿤데라는 이렇게 예술이 사라져가는 세상, 예술-이후의 시대에서도 자신의 령혼을 뒤흔들고 자신의 인생에 깊은 “흔적”을 남긴 예술계의 거장, 혹은 그들 작품과의 만남을 통해 여전히 살아 숨쉬는 예술, 그 속에 숨은 인간 본연의 모습과 마주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쿤데라는 자신의 첫사랑이 작곡가 야나체크라고 고백한다. 야나체크는 그의 첫사랑일 뿐만 아니라 그의 고국을 그의 “미학적 유전자에 영속적으로 각인”한 사람이기도 하다. 야나체크는 일생을 체코 브르노에서 보냈다. 젊은 피아니스트였던 쿤데라의 아버지는 그곳에서 야나체크의 초기 연구자들과 지지자들과 어울렸다. 쿤데라는 야나체크가 세상을 떠난 지 일년 후에 태여났고 유년시절부터 매일 아버지나 아버지의 제자들이 피아노로 연주하는 야나체크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1971년,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면서 쿤데라는 일체의 담화를 금지했다고 한다. 단지 음악가 넷이 화장터에서 야나체크의 현악4중주곡을 연주하기만 한 것이다. 쿤데라에 따르면 야나체크는 인간(삶)의 로쇠, 추함, 우스꽝스러운 면을 음악으로 훌륭하게 환원한 작곡가이다.

쿤데라가 주목한 화가는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쿤데라는 미셸 아르솅보의 제안으로 한 잡지에 베이컨에 대한 에세이를 썼고 베이컨은 이를 읽고 “스스로를 발견한 드문 글 가운데 하나”라고 전해왔다고 한다. 이 책에는 바로 그때의 에세이와, 후날 덧붙인 글이 함께 수록되여있다.

쿤데라는 베이컨의 뮤즈였던  헨리에터 모레스의 초상 삼부작을 보고 깊은 령감을 받았다. 쿤데라는 베이컨의 초상화가 ‘자아’의 한계에 대한 ‘질문’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다른 어떤 쟝르보다도 강하게, 문학에 대한 쿤데라의 애정을 드러내는 작품이기도 하다. 넘치는 지성과 신랄한 유머로 만나보는 ‘창작’ 너머의 세상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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