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여화의 꿈이 되여준 작품□ 신연희

2023-05-18 08:30:42

《인생》, 《허삼관 매혈기》, 《제7일》로 명실상부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중 한 사람이 된 여화가 장편소설 《문성: 잃어버린 도시》로 돌아왔다.

늘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삶을 살아나가는 인간 군상을 그려내온 여화는 이번 《문성》에서도 끝없는 려정 우에 선 인간의 숭고한 발자취를 그려냈다. 청나라가 저물고 중화민국이 시작하는 대격변기의 포화 속에서 미지의 도시 ‘문성’을 찾아 헤매는 림상복의 파란만장한 삶이 펼쳐진다. 삶은 그저 정해진 운명을 따라가는 것에 불과한 것일가?

여화는 말한다.

“시간의 급류는 모든 사람이 자기 선택을 하도록 만든다. 이건 아직 시작도 시작되지 않고 끝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거장의 솜씨로 빚어낸 《문성》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화를 사랑하는 팬들은 리뷰를 통해 오직 여화의 작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적과도 같은 순간을 ‘여화적인 순간’이라고 한다.

때로는 ‘여화적인 순간’이라고 부르는 시간들이 있다. 너무 재미있고 뒤가 궁금한데 갑작스럽게 가슴이 미여져서 책장을 잠시 덮고 마음을 추슬러야 하는 시간, 그의 책을 읽고 나면 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저절로 다짐하게 된다. 불행을 담담히 받아들이자. 잔인해지지 말자. 전쟁을 막자. 《문성》에는 여화적인 순간이 무척 많았다. 《인생》, 《허삼관 매혈기》, 《제7일》 등 여화의 작품을 통해 ‘여화적인 순간’을 함께 해온 독자는 물론 여화를 새롭게 접하는 독자들까지, 지금이 바로 가장 여화적인 순간을 마주할 때이다.

《문성》은 우리 나라에서 출간과 동시에 150만부가 팔리며 8년 만에 다시한번 여화 열풍을 불러일으켰고 해외 20여개 국에 판권을 판매하며 전세계적인 인기를 확인시켰다.

23년에 걸쳐 거장의 솜씨로 복원된 중국의 대격변기가 이 소설에서 펼쳐진다.

최초부터 여화는 1900년대 근대의 중국을 문학으로 재현해보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20세기의 삶을 이야기로 복원해 21세기 중국이 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온 것이다. 1950년대 대약진운동부터 시작되는 《인생》, 1960년대 문화대혁명기를 배경으로 한 《허삼관 매혈기》, 자본주의 중국사회를 담아낸 《형제》까지가 모두 그러한 시도의 연장선에 있었다. 신작 《문성》은 여화의 그 마지막 퍼즐조각으로, 청나라 시대가 끝나고 중화민국이 시작되는 1900년대 초반 신해혁명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 시대가 저물고 새시대가 떠오르는 대격변기로 작품을 통틀어 규모가 가장 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집필에 있어서도 《문성》은 최장 기간이 소요되였다. 1998년도부터 본격 작업에 들어간 《문성》은 2005년 《형제》와 2013년 《제7일》이 나오고도 무려 8년이 더 흐른 뒤에야 출간되였다.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문성》이 전기소설을 써보겠다는 여화의 20대 시절 오랜 꿈과 련계되여있었기 때문이다. 그간 사실주의적 토대에서 작품을 집필해온 여화는 작품을 새로운 문학 토대에 세우기 위해 긴 기간 수정을 거듭했고 마침내 사실과 환상을 절묘하게 섞어 천재지변과 모험, 전쟁과 도적질이 끊이지 않는 란세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거장 반렬에 오른 작가가 각고의 노력 끝에 젊은 시절 원대한 꿈을 실현한 작품 《문성》은 2021년 중국 문학계의 일대 사건으로 기록되였다.

《허삼관 매혈기》, 《인생》 등을 통해 일찍 여화의 작품을 접한 독자라면 《문성》으로 중국의 20세기 지형도를 완수하고 그간 접해보지 못한 여화의 새로운 서술방식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또 여화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문성》은 고전의 품격과 쟝르적 재미를 동시에 갖춘 명작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란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지만 여화의 이야기에는 그 어떤 력사적 영웅도 등장하지 않는다. 여화는 일대변혁의 기로에서조차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평범한’ 인간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력사의 광풍은 보통 시민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전쟁과 기근이 닥치자 시민은 먹고 살기 위해 도적이 되며 이로부터 시민을 지켜야 할 군인은 외려 시민을 강탈한다. 시대변혁 앞에서 ‘보통의 운명’은 이토록 비정하기만 한데 삶은 그저 정해진 시대의 운명을 따라가는 것에 불과한 것일가? 시대 앞에서 개인은 무력할 수밖에 없을가? 여화는 시작만 있고 끝이 없는 려정을 계속하는 림상복을 통해 제아무리 가혹한 운명에도 불구하고 삶을 걸어가야만 하는 리유를 증명해낸다.

외국어 번역판 서문에서 여화는 “모든 사람의 가슴에는 문성이 있다.”라고 말하며 공명에 대해 이야기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어느 책의 감동적인 대목에서 문득 발견한 눈물자국과 같이, 눈물과 눈물이 만나고 감동과 감동이 만나는 순간이 바로 공명이며 이 공명이 《문성》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였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알고 싶어도 알 수 없고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일이 너무도 많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상상 속에서 찾고 추측하고 조각을 맞춘다.” 모두의 가슴에 문성이 있다는 말은 누구에게나 알 수 없는, 또 찾을 수 없는 일이 있으며 바로 그러한 사실만 리해한다면 서로서로 공명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가?

  알 수 없는 운명의 조각을 찾기 위해 헤매는 사람이 이곳인들 왜 없을가. 그리하여 책장이 덮이고 눈물과 눈물이 만나는 공명의 순간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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