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찾은 훈춘시융합미디어중심에서 로어 전문가 빅토리아가 컴퓨터로 《두만강신문》 로어판 원고를 교정하고 있었다. 그는 문장을 수정하면서 틈틈이 동료와 문장의 표현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빅토리아는 “이 제목의 번역은 로씨야 독자들의 열독 습관에 더 잘 맞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진갈색 곱슬머리, 하얀 피부에 검은테 안경을 착용한 빅토리아는 로씨야 극동지역 출신이며 훈춘에서 10여년을 거주했다. 중국어와 로어에 능통한 그는 편집 업무를 능숙하게 처리하고 있다.
2005년, 당시 26세였던 빅토리아는 전문 색소폰 연주자의 신분으로 처음 중국을 찾아 공연을 펼쳤다. 그는 당시를 회억하며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을 좋아하게 되였다.”라고 말했다.
2013년, 빅토리아는 사랑하는 색소폰을 들고 다시 중국으로 향했다. 음악활동을 계속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 그가 찾은 곳은 중국, 로씨야, 조선 3국이 맞닿은 변경도시 훈춘이였다.
조용하고 편안한 생활 리듬,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진 분위기, 따뜻하고 친절한 훈춘시민들… 빅토리아는 이 작은 변경 도시에 점차 녹아들었을 뿐만 아니라 중로 량국 문화 교류의 ‘사절’이 되였다. 2021년, 그는 정식으로 《두만강신문》의 로어 전문가로 근무하며 로어 원고 심사와 번역, 교정 업무를 맡게 되였다.
“로어판 신문은 매주 1기씩 발행되며 로씨야 관광객들이 간편하게 신문을 읽을 수 있도록 통상구, 호텔 등 곳에 놓아둔다.” 빅토리아는 많은 로씨야인들이 신문을 통해 중국의 발전 변화와 중국인의 생활방식 등을 료해한다고 밝혔다.
원고를 심사, 교정하는 여가에 그는 또 동료들과 함께 ‘로어 수업’ 짧은 동영상을 제작한다. 그는 “더 많은 훈춘 사람들이 로어를 배워 편리하게 로씨야 관광객들과 소통, 교류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영상제작의 취지를 전했다.
“동료들과는 식구처럼 지내며 늘 함께 쇼핑을 하고 려행을 간다.” 빅토리아는 신문사의 송년회, 회식 때마다 색소폰 연주를 선보인다. <달이 내 마음을 대신하네>, <모스크바 교외의 밤> 등 선률이 울려퍼지면 동료들은 음악 속에 빠져든다. 그는 “음악은 번역이 필요 없이 순간적으로 모두의 마음을 이어놓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다년간 훈춘에서 생활하면서 빅토리아는 이 도시의 변화를 직접 지켜보았다.
“10년 전 로씨야 친구들을 훈춘에 초청했을 때 그들은 딱히 놀거리가 없다고 했다.” 그는 그때를 회상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와스또크환락섬, 발해고진, 훈춘동북범표범자연과학보급관 등은 늘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훈춘시의 거리 표지판, 상가 광고와 음식점 메뉴판에서는 로어로 된 표기를 쉽사리 볼 수 있다. 상업거리에서 로씨야 관광객들이 여유롭게 쇼핑하고 상가에서는 주동적으로 로어를 배우고 로어 봉사를 제공하고 있다. 갈수록 많은 로씨야인들이 이곳에 와 관광, 쇼핑하고 진료를 받으며 지어 장기적으로 거주하기도 한다.
길림성의 유일한 대 로씨야 륙로 통상구인 훈춘도로통상구는 중로 쌍방향 무비자 정책에 힘입어 다국 관광 열기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2025년 이 통상구의 출입경 려객 류동량은 연 70만명을 넘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빅토리아를 사로잡은 훈춘시의 매력은 편리함과 번화함일 뿐만 아니라 도시의 온도이다. 그는 “새해를 맞을 때마다 정부부문에서 훈춘의 로씨야인들을 송년회에 요청해 맛있는 음식을 맛보고 꽃불놀이를 구경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한다.”라고 밝혔다.
“이젠 훈춘에서 생활하는 것이 완전히 익숙해졌다.” 빅토리아는 앞날을 동경하며 더 긴밀한 중로 민간 교류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신화사
- 많이 본 기사
- 종합
- 스포츠
- 경제
- 사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