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광동촌에 이르니 이른 시간임에도 마을을 찾아온 관광객들이 다양한 향촌관광 종목들을 즐기고 있었다. 깔끔하게 깔린 아스팔트길을 달리는 전기관광차에서 운전기사가 열정적으로 관광객들에게 마을의 력사와 마을 곳곳에 조성된 명소들을 소개하고 있었고 관광객들은 휴대폰을 들고 푸르게 펼쳐진 논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저 멀리 논밭에서는 저공 삭도가 운행중이였는데 천천히 논밭 우를 스쳐지나며 흥미진진하게 구경중인 관광객들을 특색 민박구역으로 실어나르고 있었다.
광동촌당지부 서기 김헌은 “올해는 습근평 총서기가 광동촌을 다녀간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그간 광동촌은 산업, 문화, 생태 등 다방면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한톨의 쌀’로부터 시작해 산업사슬을 구축했다. 광동촌에서는 171헥타르의 경작지를 통합해 입쌀산업을 발전시켰는바 과학기술 력량을 접목시키고 브랜드 건설에 심혈을 기울여 ‘맛있다’, ‘해란강어미’와 같은 유기농 입쌀 브랜드를 구축했다. 광동촌에서 재배한 입쌀은 2015년 킬로그람당 6원씩 판매되던 데로부터 현재는 킬로그람당 15원에 육박함에도 공급이 판매를 따라가지 못할 지경이라고 한다.
유휴자원을 충분히 리용해 향촌관광산업에 공들였다. 조선족특색이 다분한 민박 45채를 새로 짓고 도미관, 논게 락원, 가시화 하우스 등 문화관광 대상을 대거 유치해 ‘논밭관광+민속체험+견학교육’의 관광모식을 구축했다. 지난해 광동촌을 방문한 관광객수는 연 40만명에 육박했고 관광수입은 436만원에 달했으며 촌 집체경제수입은 년평균 백만원을 초과했는데 이는 2015년의 10.2배 수준이며 촌민들의 인당 순수입은 2.4만원으로 2015년의 3.8배로 늘어났다.
‘문화전승’에서 ‘융합발전’으로 승화했다. 민족문화를 깊게 발굴하고 민속무용팀을 구성해 년간 100회 이상의 공연을 펼쳤으며 <붉은 해 변강 비추네> 등 작품을 전승했다. ‘축제+관광’ 모식을 혁신했는바 벼문화절, 모내기 축제 등 활동을 개최하고 전통민속과 현대관광을 깊이 융합시켜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류두절’ 등 무형문화대상을 체험할 수 있게 했다. 벼 박물관, 가시화 하우스, 논밭 삭도 등 대상 건설을 마쳐 관광객들이 모내기, 수확 등 로동을 더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게 했다.
보다 아름다운 마을로 변화했다. 습근평 총서기의 ‘화장실 혁명’을 깊이 추진할 데 관한 중요지시 정신에 따라 광동촌은 350만원을 투입해 집집마다 실내 화장실과 온수기를 갖추게 되였고 1600만원을 투입해 오수배관망을 개조하고 2개의 오수처리소를 새로 건설해 농촌 환경의 고질병을 철저히 해결했다. 또한 관광봉사쎈터, 생태주차장, 관광객 화장실, 문화광장 등 공공시설을 새로 건설하고 도로를 정비했으며 정원을 록화했다.
촌민 김종일은 기타 촌민들과 마찬가지로 10년째 ‘화장실 혁명’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했던 때가 벌써 10년 전이다. 매번 화장실을 리용해야 할 때면 신발을 신고 문밖으로 나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여름철에는 악취 때문에 고생이고 특히 겨울철 같은 경우 추운 데다가 설상가상으로 눈까지 내리면 화장실 사용이 골치거리였다. 지금은 그런 걱정들이 전혀 없다.” 면서 “화장실 뿐만 아니다. 10년간 광동촌의 변화를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체감했다. 아스팔트길이 마을 곳곳을 이어놓았고 촌민들과 모여 그늘 밑에서 함께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광장이 새로 섰으며 최근에는 기차커피숍에 저공삭도까지 생겼다. 그 덕에 광동촌을 찾는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마을이 눈에 띄게 다채롭고 아름답게 변해가고 있는데 향후의 모습이 몹시 기대된다.”고 말했다.
전정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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