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바쁘다는 핑게로 방정리를 하지 못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실내용 자전거에는 옷가지들이 아무렇게나 걸쳐있었고 침대 옆 탁자에도 취침 전에 읽는답시고 놓아둔 책들과 이어폰, 수면안대가 아무렇게나 놓여있다. 방문 뒤에는 소리없이 쌓인 먼지들이 고양이털과 엉켜져있고 현관 구석에는 리폼하면 좋다고 생각하며 놓아둔 음료수 병들이 나뒹굴고 있다.
그 어지러운 풍경을 마주하는 순간, 문득 깨닫게 된다. 정돈되지 않은 방처럼, 내 마음 역시 오래동안 돌보지 못한 채 그대로 방치되여있었음을. 나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시간들 사이로, 흘러간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미처 다 전하지 못한 말들이 남긴 괴로움 그리고 쉽게 놓지 못한 미련이 무둑하게 쌓여있었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 속에서 방 안 구석구석에 먼지가 쌓이듯, 우리의 마음속에도 다양한 감정의 조각들이 하나둘 내려앉는다. 처음엔 미처 인식하지 못하지만 어느새 그 조각들은 점점 늘어간다. 어떤 것은 서늘한 바람을 닮은 회한이고 또 어떤 것은 작은 가시처럼 마음 깊숙한 곳을 찌르는 고통이다. 쌓인 먼지를 털어내듯 마음도 가끔은 정리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쌓여가는 감정들에 짖눌리고 삼켜지기 전에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의 정리는 청소와 많이 닮아있다.
먼지가 내려앉은 구석을 닦아내고 어지럽게 쌓여진 물건들을 차곡차곡 정리하여 쾌적한 공간을 만들 듯, 우리의 마음도 정리가 필요하다. 쌓인 먼지처럼 마음 한구석에 들러붙은 후회와 번뇌, 분노를 차근차근 털어내고 꼼꼼하게 닦아내야 한다. 어지럽던 마음 한구석에 비줄기 같은 걸레질을 하면 물기가 마르고 난 자리엔 환한 빛이 스민다.
청소는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가리는 과정이다.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서 남겨두었지만 정작 몇년째 찾지도 않아 구석에서 존재감을 잃어가는 물건들을 미련없이 버리듯, 마음의 정리도 내려놓아야 할 감정과 버려야 할 미련들을 가려내는 과정이다. 필요 없는 쓰레기를 비우듯, 미련을 쓸어내야 비로소 마음속에도 숨쉴 공간이 생긴다.
마음의 정리는 단순히 청소를 따라하는 행위가 아니라 내면과의 대화이다. 지금 손에 집어든 물건이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를 묻듯, 내면에 쌓인 감정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이고 영향을 주는지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다. 지나친 아낌 끝에 쓰임을 잃은 물건을 과감히 버리고 어지럽게 널부러진 물건을 조심스레 제 자리에 놓듯, 흐트러진 감정들도 분별하고 정리한다.
오래된 자국처럼 눌어붙은 상처는 조심스레 닦아낸다. 날카로운 솔 대신 부드러운 천으로 다치지 않도록 천천히 문지른다. 그리고 닦아낸 자리 우엔 현재라는 이름의 페인트를 얇게 덧입힌다. 그렇게 시간을 두고 조심스럽게 덧발라주면 어느덧 아픔이 남았던 자리는 사라진다. 자주 꺼내보진 않지만 여전히 소중한 옛 추억들도 한장한장 정성껏 접어간다.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듬고, 그리움의 흔적을 덧대여 마음 깊숙한 서랍 한켠에 차곡차곡 눕혀둔다.
환기는 청소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과정이다. 창문을 활짝 열어 시원한 바람이 탁한 공기를 몰아내게 한다. 가슴 안에 숨 막히는 고민들이 머물러있다면 마음의 창을 열어 고민들을 몰아내고 맑은 공기로 환기해야 한다.
오래된 먼지와 탁한 공기를 내보내려면 창문을 활짝 열어 바람이 드나들게 해야 한다. 마음의 정리도 그와 다르지 않다. 숨 막히는 고민들이 가슴 안에 오래 머물렀다면 이제는 마음의 창을 열어 맑은 공기로 환기할 차례이다. 누군가는 마음 통하는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고민을 털어놓고 또 누군가는 조용한 카페에서 책장을 넘기며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눈다. 혹은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눈을 감고 깊은 호흡으로 명상을 하며 고민을 해소하는 이도 있다. 이처럼 방법은 제각각이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묵은 감정을 털어내고 나면 환기를 마친 공간처럼 마음에도 산뜻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러한 마음정리의 과정 속에서 과거에 묶여있던 발걸음은 천천히 풀리고 무겁던 마음은 한층 가벼워진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 더 부드러운 걸음으로 앞으로의 시간을 향해 다시 나아간다. 마치 잘 정돈된 방에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듯, 정리된 마음으로 또 다른 시작을 맞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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