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시절부터 문학의 푸른 꿈을 안고 유명작가가 되겠다는 거창한 포부까지 품고 일기쓰기와 습작, 소재기록, 독서필기를 하기 시작하여 오늘까지 왔으니 글을 무던히도 썼다. 그간에 쓴 이런 글들을 다 모아 쌓는다면, 《청년생활》이나 《연변녀성》 잡지만한 크기의 공책으로 높이가 2메터는 더 될 것이다.
글을 씀에 있어서 나는 처음부터 내가 쓴 이런 모든 글들을 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각도에서 썼다. 하지만 정작 그 글들 중에서 세상에 발표가 되여 독자들에게 읽힌 글은 높이가 반메터쯤이나 되겠는지… 작가라는 명함은 가졌지만 명작이란 건 단 한줄도 못써봤고 칭찬을 받은 우수작은 겨우 스무손가락 안에 든다.
문학을 한답시고 열심히 글을 썼으나 풍작은 말도 말고 평작도 아닌 흉작을 했다고 생각된다. 한가지는 외인 즉 객관적 원인이다.
당에서 나에게 맡겨준 사업은 의료사업이였는데 명절이고 휴식일이고 따로없이 헤매다보니 문학을 안고 춤 출새가 정말 없었다. 대채학습공작대로 병원을 떠나 하향을 했을 때는 글을 끄적일 여가가 좀 있으려니 했다. 그런데 웬걸, 낮에는 사원들의 앞장에 서서 로동을 해야 하고 밤에는 기본상 매일 사원대회가 아니면 대대(촌)회의, 공사(향)회의에 참가해야 했는데 회의가 일찍 끝나면 밤 11시, 12시고 길 때면 새벽 두, 세시 혹은 아주 아침까지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문학에 대한 지향을 버릴 수 없어서 문학지거나 소설책을 조금씩 들여다 보군 했다. 하다보니 나는 정년퇴직을 할 때까지 별로 문학을 마음껏 해보지 못했다.
다음은 내인 즉 주관적 원인이다.
나는 글을 쓸 때 꼭 사회적 효과를 념두에 두고 글을 쓰는 버릇이 있다. 내가 말하는 사회적 효과란 이 글을 보는 독자에게 단 한가지라도 남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회적 효과를 항상 만족되게 잘 완성하지 못했다.
문학예술작품은 사상성, 예술성, 지식성, 취미성, 오락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가장 기본은 사상성과 예술성이다. 사상성과 예술성이 유기적으로 잘 결부가 되여야 좋은 작품이 될 것이며 따라서 사회적 효과가 높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편면적으로 사상성을 중시하다보니 글의 주제는 선명했지만 예술성이 따라가지 못했다. 즉 글에 화려한 옷을 입히지 못하고 벌거벗은 알몸뚱이 그대로 드러날 때가 많았다. 그리고 지식성, 취미성, 오락성도 빈약했다. 하다보니 편집선생님의 충고를 받기도 했고 발표된 작품도 얼마되지 않는다.
한평생을 다 바쳐 문학을 하리라 결심할 때 나는 부끄럽지 않은 글을 꼭 써야 한다고 자신에게 다짐을 했다. 말하자면 그것은 나의 초심이였다. 나의 이 초심은 지금도 물론 변함이 없다. 나는 아첨하는 글, 돈에 팔린 글, 사람의 령혼을 부식하는 글, 누구를 모방하는 글을 쓰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런 글은 쓰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포함해서 세상의 모든 것을 인식하고 개조하고 열심히 창조한다.
인간은 이렇게 지혜롭고 슬기롭고 근로하고 용감하다. 세상의 모든 것을 인간에게 유익한 것으로 만들어 모든 사람이 행복한 인생을 살게 하는 것이 인간의 최종분투목표이며 최종임무이다. 이것은 진리다. 문학자의 사명은 사람들을 이 진리의 실천에로 고무추동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사상성, 예술성이 미끈한, 그리고 지식성, 취미성, 오락성이 적절하게 조합이 된 사회적 효과성이 높은 글을 쓰기 위해 많이 노력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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