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퇴직 후 여가시간이 많아지게 되자 글이나 좀 써볼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젊었을 때에 한동안 글을 쓰다가 이런저런 사연들 때문에 필을 접은 일이 내내 아쉬움으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종전처럼 여러가지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그러던중에 수필이란 쟝르에 마음이 끌리게 되였다.
여러 작가들의 많은 수필을 읽게 되면서 수필이란 어떤 글인가를 조금이라도 알 것만 같았다. 특히 수필을 쓰자면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고 또한 친구한테서 받은 편지와 같다는 느낌이 드는 글, 혼자서 중얼거리는 독백과 같은 글이라는 누군가의 말에 공감하게 되였다. 이런 글을 나도 시도해보고 싶었다.
무엇을 쓸가 여러모로 고민하다가 우선 부모님들과 관련되는 글을 쓰기로 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써낸 글이 <어머니의 바심장>이라는 수필이였는데 행운스럽게도 《연변일보》에 발표되였고 따라서 나도 글을 쓸 수가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게 되였다. 이리하여 나는 수필을 우선으로 하는 글읽기에 전념하게 되였고 많은 것을 배우게 되였다.
수필은 그 글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하게 나타내는 문학형식이며 또한 수필은 서정과 서사, 의론 이 세가지 특성을 두루 다 갖춘 글로서 자기의 견해거나 정감세계를 표달하는 문학작품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유머거나 익살 따위를 리용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정감이라는 말에 력점을 찍고 싶다. 정감세계를 떠난다면 우리들의 문학작품이 존재할 자리를 잃게 될 것이고 또한 좋은 글이 나올 수가 없게 되며 그런 작품을 읽으려 하는 이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저자와 독자를 이어주는 것은 정감세계라는 매체이며 또한 정감이라는 매질이 수필을 쓰도록 꼬드겨 주기도 하는 것이다.
수필은 다만 쓰기 위해서 쓰는 글이 아니라 쓰지 않고서는 뭔가 다하지 못해서 죄스러운 감이 앞서서 참지 못할 때 쓰게 되는 글인가 싶다. 우리는 흔히 마음속에 담고 있는 많은 사연들과 또한 누구한테 조용히 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을 때 그저 참고 있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녀성들이 수다를 떨고 싶을 때 참고만 있으면 스트레스가 쌓여 건강을 해치게 된다 하니 기어이 마음이 통하는 상대를 찾아 시원히 다 털어놓아야 속이 풀리게 되여 마음의 평온을 찾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런 수다를 떠는 가운데에 쓸 만한 건더기가 더러 있을 수도 있다. 그런 건더기를 걸러내여 잘 다듬어 글로 옮기면 수필로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흘러간 세월의 갈피갈피에 스며있는 잊지 못할 많은 사연들과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것만 같은 생활 속에서 색다른 감수를 받았을 때 그것들을 어찌 그저 잠자게 할 수가 있겠는가 하는 절절한 정서가 또 한편의 수필을 잉태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수필이 이러한 글인 까닭에 나는 문학작품 중에서 다른 제재를 제쳐놓고 먼저 여러 작가들의 수필을 읽기 좋아한다. 수필 읽기는 이미 나에게는 하나의 향수로 자리잡고 있다. 그렇지만 여러 쟝르를 섭렵한다면 수필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지식면이 넓어야 시야가 트이게 되고 따라서 한 차원 높은 수필을 써낼 수가 있다는 생각이다.
소설이나 극작품과는 달리 허구를 허용하지 않는 글이 수필이니 저자와 독자들간의 정감소통이 윤활하게 될 수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수필은 보통 그 편폭이 길지 않아서 시간적인 부담이 없어 읽기에도 편리하다. 하회를 기다릴 것 없이 단숨에 다 읽을 수가 있고 또한 조용히 음미하면서 무료한 시간들을 멀리 밀어버리고 달콤한 사색 속에 잠겨서 한때를 즐길 수 있는 그것이 참 좋은 같다.
어떠한 글이든지 독자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 필자 스스로가 홀로 매료되는 글이 아니라 많은 독자들도 동감할 수 있는 글이여야 한다. 자석이 철붙이를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있는 것처럼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흡인력이 있는 글이라야 가치가 있는 글이라고 생각된다. 그 흡인력이 크면 클수록 좋다.
수필을 쓰자면 생활경력이 풍부해야 한다. 그래서 흔히 수필은 젊은이보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 여기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같다. 그렇다고 젊은이들은 수필을 쓸 수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젊은이들도 나이에 비해 생활경력이 상대적으로 풍부할 수도 있으니 수필을 쓰는 데 있어서 나이가 장애물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수필이 어떤 글인가에 대한 나의 리해는 잠시 상기한 것에 머물고있는 정도이다. 그러므로 공부에 게을리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지금도 독자들과 쉽게 정감을 공유할 수 있는 수필을 쓰기 위해 여러모로 시도해보려는 생각을 굴리고 있는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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