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 박영옥

2023-06-30 09:27:19

장억이는 눈을 뜨기 바쁘게 옆자리를 살펴보았다. 비여있다. 안해가 전날 저녁에 또 들어오지 않았다.

(왜 또 밤새도록 고생하는 거야? 새벽에라도 들어올 거지…)

장억이는 찌뿌둥한 기분으로 이렇게 중얼댔다. 그는 한쪼각의 엷은 실망을 안고 안해한테 전화를 걸어 아침에라도 잠간 들어올 수 없는가 물었지만 시간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오늘은 안해의 생일이다. 며칠 전에 벌써 장억이는 안해와 약속했다.

“딩신의 생일날 아침에 내가 한번 음식솜씨를 피워볼게.”

“뻑.”

어느새 안해의 입이 장억이의 볼에 가 닿더니 이런 소리가 났다. 그 여운은  그렇게도 달콤했고 감미로웠다.

대남자주의를 주장하는 장억이는 웬간해서는 주방에 들어가는 법이 없었다. 혹시 안해가 일어나지 못할 정황이면 배달음식을 시키면 시켰지 주방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언젠가 안해가 된감기 때문에 드러누워 밥을 못하게 되자 장억이는 배달음식을 시키려 했었다. 그때 안해가 힘없는 소리로 말했다.

“배달음식이 입에 안 맞으니 당신이 좀 수고해주면 안될가요?”

그래서 장억이는 하는 수 없이 주방에 들어갔는데 쌀을 일고는 글쎄 그 쌀을 전기가마의 속을 뺀 채로 쏟아넣어서 가마를 페물로 만들고 말았다. 정말 환장할 일이였지만 안해는 맥이 모자라서인지 그저 머리만 가로저었다. 어디 그뿐이랴? 닭알을 삶는다는 게 가마까지 태웠고 채소를 다듬는다는 게 흙이 그대로 붙어있었다… 그런 후부터 안해는 될수록  장억이를 주방에 못 들어가게 했다. 남편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돕는다는 게 되려 방해가 되기 때문이였다.

남자들은 나이 마흔이 넘어야 셈이 든다고 하더니 마흔일곱살을 먹고 장억이도 비로소 셈이 드는 것 같았다. 여직 주방일에는 서툰 모습을 보여왔던 장억이였지만 올해 안해의 생일날에는 좀 한번 자기를 나타내고 싶었다. 평소에 안해의 입에서 가끔씩 뉘집 남편은 음식달인이라니, 또 뉘집 안해는 주방에 자주 들어가는 남편을 만나 복이 퐁퐁 쏟아진다니… 하는 칭찬이 쏟아질 때마다 장억이는 심기가 불편함을 느꼈던 것이다. 갓 결혼했을 때는 사업심을 첫자리에 놓던 안해가 이제는 혼인관이 바뀐 것 같았다. 결국은 사랑을 느끼고 누리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부러움의 감수성이 아닐가!

남편의 사랑이 클수록 안해의 소망이 작아지고 부부간에도 일이 사랑이라 했거늘 안해의 요만한 소망도 못 들어줄 리 없지 않는가? 때론 사소한 일도 시간과 장소와 공간의 변화에 따라 감동을 불러올 때가 많다. 그래서  이번  안해의 생일을 계기로 안해의 경이로운 눈길을 한몸에 받고 싶었고 요즘의 고달픈 안해의 심령을 세척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 며칠간 책꽂이에 오래전부터 꽂혀있던 료리책을 뒤적이면서 음식을 만들어보았다. 조미료 넣는 순서며 음식색상 배합하기까지 열심히 따라했다. 번마다 비록 싱겁지 않으면 짜거웠지만 보기에는 그럴듯해서 구미가 동했다. 양상추에 도마도를 썰어넣어서 만든 샐러드, 메추리알에 브로콜리랑 귤쪼각을 섞어서 볶은 료리들은 그 색상이 기막히게 이뻤다. 아, 세상일이란 원래 마음먹으면 못해낼 것이 없었다.

그런데 가두에 출근하는 안해는 닷새 전부터 홀로 사는 최할머니를  돌보느라고 바삐 보내고 있었다. 최할머니는  원래 아들이 한명 있었는데 외지에서 교통사고로 불행하게 먼저 돌아갔고 일년 전에는 평생을 같이해온 령감마저 돌아가는 바람에 지금 혼자서 살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최할머니는 일주일 전에 뇌혈전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는데 간호해줄 친척조차 없어서 안해가 맡아나선 것이다.

안해가 정성 어린 보살핌으로 사흘 동안 밤낮으로 간호한 덕분에 환자의 병이 많이 호전되여 지난 저녁에는 집에 들어오겠지 했는데 웬걸 장밤 곁이 비여있었다. 전날 밤 열시에 장억이가 안해의 전화번호를 눌러서 그토록 상세히 말했는 데도 말이다.

“다른 때 같으면 아침에 안 들어와도 괜찮은데  래일은 당신 생일이니까 꼭 잊지 마오. 아침에 내가 멋진 생일파티 준비하는 걸 보오.”

“와— 우리 남편 최고!”

기대에 젖은 고운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들려왔다.

그날 잠자리에 누운 장억이는 이튿날 아침의 랑만이 넘치는 분위기를 그려보면서 달콤한 꿈속에 들어갔다.

그런데 결국 안해의 생일날 아침상은커녕 랑만을 잃고 고독만 껴안은 외로운 기분만 감돌았다. 안해가 자리를 비운 밥상에는 쓸쓸함과 적막감이 감돌아쳤다. 안해한테 생일선물로 주려고 포장해놓은 화장품은 한쪽 구석에서 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에라도  안해가 돌아오면 여섯가지 채를 상에 올리겠는데… 그러면 안해의 얼굴에  해맑은 웃음이 피여날 거야. 또 생일선물을 보고 내 얼굴에 다시한번 뽀뽀해줄 거야. 그런데  오늘 저녁에는 들어올 수 있을가? 제발 들어왔으면 좋겠는데…”

안해한테 깜짝 이벤트를 만들어주겠다고 무척이나 머리를 굴렸던 장억이는 안해가 없는 밥상에서 김치를 얹어 밥 몇숟가락 들다말고 일어서서 앞치마를 둘렀다. 고생하는 안해에게 맛나는 아침도시락을 만들어서 직접 배달할 생각에서였다.

  어느새 방안에 비껴들어온 고운 해살이 주방을 환히 비춰준다. 어두웠던 장억이의 마음이 개운해지긴 했지만 그 무엇을 갈망하는 눈길만은 감추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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