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뿌리 □ 류정남

2023-08-04 09:11:12

한 인간의 마지막 운명을 할 때의 최후순간을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비장하다고 할 수밖에 없겠다.

차디찬 가을삭풍에 떨어진 가랑잎신세가 된 가냘픈 로파는 지금 풍상에 삭아버린 울바자처럼 바짝 마른 손을 겨우 들어올려 령감의 꺼부정한 팔을 잡으려 허둥댄다.

“미안하우다. 령감한테 제 피줄기 하나 못 남겨줘서…”

로파는 스무살 꽃나이에 하얀 너울 쓰고서 동네에서 명망 높았던 리씨가문에 시집을 왔었다. 마음속으로 한평생을 훌륭한 며느리로, 안해로 살 각오가 되여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지 선천적으로 아이를 배지 못하는 녀인이였을 줄은 누구도 몰랐다. 그것은 그녀의 심혈관 한쪽 끝을 그냥 옥죄이면서 반평생을 그렇게 죄의식을 품고서 살아왔어야 하였다. 집식구와 친척들한테는 물론이고 동네사람들의 눈치까지 살피면서 살아야 하였던 기구한 운명의 녀인이였다. 몇번이나 자기를 버려달라고 하였댔지만 남편은 이건 하늘에서 맺어진 운명이기에 그렇게는 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안해는 그러는 남편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소리내여 울기도 하였다.

“평생을, 령감한테 미안하우…”

로파는 실오리같은 맥이 생겨날 때마다 령감의 팔을 붙잡으면서 이런 한마디를 곱씹었다.

그런데 오늘은 무릎을 꿇고 곁에 앉아있던 령감이 더는 참지를 못하고 오열을 터뜨리는 것이였다.

“아니유, 아니유… 내가 로친한테 미안한거유. 여태껏 그 걸 속여온 내가 나쁜놈이였지. 로친한테 정말 내가 죄를 지은 거유. 이거, 이거 오십년 전에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던 증명이유… 사실, 사실은 내가 불임이였수. 내가 불임이였던 거라구… 흑흑흑…”

령감의 부들부들 떨리는 손에는 둥그렇게 붉은색 도장자욱이 찍혀있는 테두리가 떨어져나간 색바랜 종이장이 들려있었다.

령감의 흐느낌소리를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로파의 누렇게 뜸이 든 동공이 한참 동안 동그라니 멈춰 굳어지는가 싶었다.

갑자기 “이 망할 눔의 두상짝…” 하고 로파는 마지막 용을 쓰면서 어데서 그런 힘이 생겨났는지 오른손 다섯손가락에 악을 묻혀 령감의 소나무껍질 같은 거치른 팔뚝을 쭉 허벼놓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절주 없었던 숨소리가 끊기였고 박약한 심장박동도 멎어버리는 것이였다. 그때까지도 허옇게 성긴 머리를 깊이 떨어뜨린 채 목석처럼 앉아있는 령감의 메마른 팔뚝에서는 이슬방울 같은 빨간 피방울이 돋아나있었다.

로파의 장례식이 지난 며칠 후였다.

마을 동구밖길에서 인제는 영영 로친을 잃어버린 외로운 령감이 지금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귀여운 손자를 바래주고 있었다. 정확하게 38년 전 외지에서 갓난아이를 입양아로 얻어다 키운 아들은 참하게 공부를 잘하였고 명문대학을 졸업한 후 현재 큰 도회지에서 세 식구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로친의 림종 때에야 불쌍한 마누라한테 평생 큰 죄를 짓고 살았다고 비장한 탄백을 하게 된 령감은 끝내는 독한 마음을 먹고 아들한테 이런 결정을 내려주었던 것이다. 이번 걸음에 손자까지 데리고 꼭 한번 자기의 생부생모를 (세상 뜨기 전에) 찾아가 보라고 하였다. 아니, 그럴 필요가 있는가고 하면서 그냥 싫다고 하는 아들한테 령감은 전례없이 성을 내면서 단마디로 꺾어 호령하였던 것이다.

아들네 세 식구가 시내로 가는 뻐스를 타러 동산 고개길을 넘어갈 때까지 령감은 한자리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을 느끼였던지 아들네 부부도 높은 언덕길 우에 잠간 멈춰서더니 몸을 돌려 자기가 살았던 정든 고향마을을 향해 연신 손을 흔들어 보이는 것이였다. 그때 어린 손자놈도 따라서 두 손을 마구 흔들어대고 있었다.

아들과 손주놈의 손 웨침소리는 한그루 느티나무처럼 꺼부정하니 외롭게 서있는 령감의 귀에 너무도 똑똑히 들려오고 있었다.

-아버지, 찬바람 일기 전에 어서 집으로 들어가세요.

-할아버지, 나 할머니 할아버지랑 영원히 사랑할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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