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양원에서 걸려온 전화에 김씨는 량미간을 찌프렸다. 요즘따라 잦아지는 료양원의 소식이다. 코로나 위기로 인해 5년 동안 일해왔던 한국의 회사가 경기가 좋지 않아 몇달 전에 귀국한 김씨였다. 고향에 돌아와서 딱 두번의 방문을 하고는 반년 동안 한번도 가지 않았다.
자식도 못 알아보는 엄마가 어쩐지 괜히 미워졌다. 가끔은 차라리 빨리 돌아가셨으면 하는 못된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매달 들어가는 료양원의 입소비와 이틀이 멀다하게 증상을 얘기하면서 이것저것 약들을 사보내달라는 료양원 직원의 부탁마저 이젠 진절머리가 났다. 자식들이 많아서 무엇하랴? 이 핑게 저 핑게 바쁘다는 리유로 근간에는 입소비 한번도 보내지 않는 동생들, 그렇다고 맏아들로 태여나서 나 몰라라 하고 그냥 가만있을 수도 없는 일이였다.
다행히 마음씨 착하고 무던한 안해가 예로부터 부모님을 잘 공경하는 우리 조선민족의 미덕을 저버리지 말고 큰아들로서의 중임을 떠메여 가는 건 응당한 거라며 늘 위안과 긍정의 힘을 주기에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김씨는 가던 길을 멈추고 호주머니 속에서 요란스레 울려대는 핸드폰을 꺼내 귀에 갖다대였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할머니가 많이 위독합니다. 얼른 료양원에 와주셔야 겠습니다!”
김씨는 알겠다는 말만 급히 남기고 택시를 잡고 료양원 방향으로 향했다.
전에도 이런 상황이 있었는지라 이번에도 그냥 큰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은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무척이나 무거웠다.
료양원 병실에 들어서니 가녀린 손목에 링겔주사를 꽂고 정기 잃은 두 눈은 천정만 쳐다보는 늙은 로인이 보였다. 그리고 옆에서는 직원들이 옆을 지키고 앉아 간호를 하고 있었다.
김씨는 울컥하는 마음을 겉잡으며 로인을 불렀다.
“엄마, 내 왔소! 나를 알아볼 만하오?”
로인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들을 바라보더니 입가에 내물처럼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겨우 말을 꺼냈다.
“야, 왔소? 감사하오!”
김씨는 목까지 차오르는 뜨거운 감정을 억누르며 찬찬히 엄마를 쳐다 보았다.
쭈글쭈글한 얼굴에 얼기설기 얽힌 세월의 주름들, 근육위축이 와서 꼬부라진 두 다리를 보는 순간, 그동안 엄마한테 했던 못된 생각과 죄챔감이 함께 엉키여 끝내 남자의 눈물을 토해내고 말았다.
근 3개월 동안 치매로 앓아온 로인이였다. 하지만 이 순간만은 마치 신의 부름을 받기라도 한 듯이 제정신이 돌아왔다.
“엄마, 내가 미안하오, 그동안 자주 보러도 못 오고 하지만 좀만 버티오, 둘째 영호와 셋째 영수가 인츰 한국에서 들어올거요. 엄마!”
큰아들의 부름을 들은 로인의 눈가도 어느새 촉촉히 젖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눈물에는 5년 동안이나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이 슴배여있었을 것이다.
다시 병실로 들어온 료양원 원장이 김씨를 조용히 접대실로 불렀다.
“제 생각엔 어머님이 이번 위기를 넘길 것 같지 못합니다. 지금은 아까보단 좀 나아지긴 했지만 웬지 불안한 느낌입니다. 혈압도 온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미리 후사준비를 해놓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 같습니다.”
김씨는 조용히 료양원 원장의 말을 귀담아들으며 머리만 끄덕였다. 료양원 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을 열더니 통장 하나를 김씨한테 건네주었다.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는 말하였다.
“이건 어머님께서 금방 료양원에 입소하셔서 정신이 맑으셨을 때 저한테 보관해둔 은행통장입니다. 통장 안에 2만원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동안 할머니께서 모아두셨던 모든 적금인 것 같습니다. 자식들이 모두 한국에서 힘들게 돈을 버니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나중에 큰아들이 오면 전해줘라고 하셨는데 늦게 전해드려서 미안합니다!”
말을 끝낸 그녀의 눈가에도 어느새 이슬이 반짝이고 있었다.
통장을 받아 쥔 김씨는 조여오는 가슴을 짓누르며 다시 병실로 향했다.
희끗희끗한 흰머리에 약간 휘여진 어깨, 터벅터벅 걸어가는 발걸음소리가 료양원의 복도를 메웠다.
김씨는 침상 옆에 누워있는 엄마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엄마, 내 불효자식이요, 다시 일어나오, 엄마!”
아들의 부름에 로인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껏 볼 수 없었던 맑은 미소를…
생의 마지막 순간에 안깐힘을 다해 잃어버린 기억을 찾은 로인은 아들의 마지막 부름을 영혼 속에 고이 접은 채 아름다운 세상 속에 묻히여 영영 돌아오지 못하였다.
낡을 대로 낡은 통장을 손에 쥔 김씨는 오래동안 엄마의 옆을 지키고 앉아 차가워진 얼굴을 어루만지며 굵은 눈물을 쏟아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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