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한채
유리창에 넘쳐난다
건배, 무지개를 마시자
이 봄을 잡고 술잔을 꺾으며
너와 함께 있는
이 시간을 마시면
어둠이 닦아진다
가슴에 나붓기는 치마자락
나비의 날개로 마음 털어내서
별들이 들어있는 샘물을 찾았다
화사한 젊음의 분홍신 신고
연당의 금붕어에게
환상세계에 갔다가
돌아오는 사람은
량쪽 세계를 다 건강하게 만들며
사는 것을 너 알지
너의 자리는 언제나 그 자리
시작과 끝은 모두 너이다
그 시작에 그 끝에 내가 있다
건배, 무지개를 마시자.
라이라크
먼길 달려서
여기 낯선 사람들에게
다가와 지금은
내 앞에 선 라이라크
연한 자주색으로
세상을 뚫고 나와
고요한 함성 지르며
한단씩 묶음으로
빛갈을 바꿔 피는
그 꽃말에
나는 그만 귀 먼다
타원형 꽃잎이
흰색을 차려입고
아름다운 맹세 흔드는
너에게 무너진다
보라색을 입고
젊은 날의 먼 추억 불러
첫사랑도 데려오는
너에게 머문다
친구의 사랑이
우정이 너무 귀중해
빨간색 갈아입고
타오르는
너에게 자지러진다
하나가 모여
여럿이 되고
여럿이 모여서
뭉친 힘의 아름다움
피여올리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라이라크. 내 꿈도
새로 핀다
코로 흠향하면
머리를 치고 들어오는
향기. 어느새
가득 배서 나비가
어깨에 내려앉는다
나는 봄이 되였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라이라크.
나무를 가까이 보면
자기 만큼 하늘땅 가진
나무들의 가득찬 빈자리
그래서 더욱 기운차다 나무!
뼈만 자란 나무는 결코 물앉지 않는다
길게 드러누워 죽어갈 망정
세상의 나무들은 모두 형제 같다
큰 나무는 구름에 가깝다 큰 아름다움
작은 나무는 땅에 가깝다 작은 아름다움
가까이 다가서 보면
이 몸이 너무 성해 미안하다
나무를 보면 그 자리에
그 나무가 있어야 할 것 같은 나무는
자기 존재 속으로 들어가 서있다
산을 내려가는 사람들이
나무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게 보인다
세찬 바람 불면
땅을 움켜쥐고 부르르 몸을 떠는
든든한 나무는 유일하다
오로지 나무이다 오직 있으므로 좋다.
나무를 안고
하늘을 받쳐본다
천년 전 이 자리에서
누군가 나처럼
바라보았을
살아 천년 주목나무
천년 후 누군가
이 자리에서 나처럼
바라보고 있을
죽어 천년 주목나무
하늘의 긴 다리 같은
나무를 삼가 안고
하늘을 받쳐본다
땅의 거인이 되여본다
한껏 우러르면
쳐들려서 아득한 하늘
가슴을 툭툭 울리는 것은
누구의 심장인가
련리지 되고 싶다
이대로 칭칭 감겨서
3천년을 엮이고 싶다
썩어 천년 주목나무여!
비 곁에 서서
모든 것이 낮아지는
비 오는 날 비방울이
땅에 투신하면서 깨진다
클수록 더 세게
머리를 찧고 터지며
동심원을 그리는 비방울
가볍게 올라갔다가
무겁게 내려오면서
긴ㅡ긴 하늘의 머리결을
오래오래 빗질하고 있다
수많은 물고기가
퍼덕이며 숨쉬는 대지를
엎드려서 끌어안고
가을을 물고 있는 여름에
그리움 두드리는 비방울
저 비 울음소리
모든 것을 포기한 것 같이
하늘에서 뛰여내려와
나를 못질하며
지상에 쌓이는 꽃잎의 마음
수직의 빗금을 그으며
다리 긴 소나기 달리기를 한다
처마 밑 비줄기 주렴에 갇혀 서서
땅에 물채찍질하는
구슬 같은 비줄기 한단 묶어
마음 한견에 세워놓았다
나사 풀어지는 마음 동여매고
물회초리 내리면서
정열 붉은 푸름으로 이순을 건너가리
온 세상을 채울 것 같이 내리며
내 앞으로 달려오는 비방울
땅에 피여나는 꽃잎의 발자국.
사과꽃
봉오리지면
빨간색이였다가
꽃잎이 펼쳐지면 연분홍
마지막엔 하얀ㅡ
사람의 것이 아닌
사람이 가질 수 없는 빛갈이다
하얗게 터진 사과꽃
정내가 싱그럽다
꿈을 산란하면서
새살이 돋아
온몸 뒤척이는 과수원
령혼의 전률에
한껏 신들려 눈엔 벌써
둥근 사과들이
하늘 가득 날아다니고
가슴속에
샘물이 눈뜬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 도달하리라
내가 들이쉬는 숨으로
내가 내쉬는 숨으로
호흡하는 그가 나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 도달하리라
나의 퍼져가는 숨으로
나의 우로 올라가는 숨으로
호흡하는 그가 나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 도달하리라
나의 자아가
모든 곳에서 같음을 보는 나는
모든 존재들 속에 머물러있는
모든 존재를 본다
그 모든 것 속에 있다
모든 것 속에 있는
그가 나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 도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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