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책을 펼치며 (외 2수) □최 만 흥

2023-09-08 08:48:14

내 오늘

일기책을 펼치며

어제와 다시 만남의 창을 연다


한장 두장

책장을 펼칠 때마다

까마득히 멀어져간

지난 삶의 토막들이

어제를 숨쉬며 조용히 다가와

눈앞에서 쭉 쭉 기지개 켠다


세월과 함께

고이 흘러온 일기

쓸 때에는 몰랐는데

오늘에 와 보니

어제를 수놓은 감회 깊은 표본

생의 길에 뿌려놓은 진주라 할가


상상도 없이

허구도 없이

진실한 감정이 깃을 편 일기

비록 모양 색갈 향기가 낡긴 했지만

페지마다 새겨진 사랑스런 사연들

밝은 얼굴로 돌아와

즐거운 노래로 울리나니

그것은 정녕

생활에 뿌리박은 신성한 삶의 열매

황금의 정서

정신적 재부였다.


보면 볼수록

새롭게 안겨오는 일기

내 삶의 숨결이 굽이쳐 흐르는

손을 잡고 함께 걷는 평생의 친구

영원한 추억 속에

지워버릴 수 없는 값진 존재

가는 길에 내가 쓰러져도

일기여, 나의 삶이여!

너만은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리!


뿌 리  


땅속에 삽니다

평생을

캄캄한 땅속에서

설음 없는 생을 적어 보내며

묵묵히

빛을 만듭니다.


깨끗하고 소박한 자세로

열심히 살아가는 당신

바라는 것은

푸름을 공간에 떠올리는 것

바치는 것은

피와 땀입니다


사랑의 단즙으로 물이 든 몸

주고도 주고도 더 주고 싶어

짙은 어둠을 더듬으며

자꾸만 땅속 깊이 파고드는

당신의 푸른 넋

하늘에서 웃거니


빛을 걸어 잠근 땅속에서

빛으로 살고 있는 당신

눈으로 볼 수 없어도

마음으로 환히 보나니

아름다움은

찬란에만 있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고 목  


싱싱하던 푸름이 빛을 잃어도

꿋꿋한 뼈 하늘을 이고 섰다

파란곡절 많은 생애 년륜으로 감으며


변함없는 생의 신념 다져진 몸

하늘땅 사이에 부끄럼 없다

젊은 날의 기억이 늘 푸르러


보람으로 생명을 늘이고 싶어

가슴속에 강하가 울부짖거니

세월의 년대 우에 새 년륜을 새기는


오, 고목이여

생명의 더운 숨결 뿜으며

삶의 길에 높이 세운 리정표

그 머리 우에 노을이 불타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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