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 오면 (외 3수) □ 홍순범

2023-09-22 09:01:29

기다란 나무장대로

집앞에 비닐박스를 만들면

아버지는 영근 벼를 쏟는다

물을 채우니 부푼 이 씨앗들이

들을 기다리며

파란 옷을 그리워한다


물이 차겁지만

태양이 언젠가 따뜻할

논은 넓고 벌은 크다


그리고 또 그려도 다 못 그리는

파란 꿈이 여기서부터

서서히 움트며 싹이 튼다


봄에 꺼낸 이 생명들이

아버지의 손길에

사방으로 끝없이 흩어져

알알이 칠색을 장식한다


여름이 얼마나 컸던가

수많은 그 이야기에

희로애락을 들썩이며

봄바람에 실려

여름폭우에도

가을이 다 가도록

아니 아니 그

한끝에 겨울마저도

다 껴안아주던

이 강산들이다


봄에 깨여

아버지의 논고랑에 익어가던

오늘을

또다시 심는다

너와 나의 터전에

토양은 그래서 아름다운

전설 속의 신화보다

더 예쁘고 사랑스럽다.



◆ 해바라기

작은 발걸음이 여기에 온

그날부터 비바람은 얼마나 세였던가

폭염에도 지치지 않던

꿈나라 그 동네


잊혀지고 묻혔어도

계절이 되면 맞아주는 그 마음에

나는 취해서

우연히 함께 걸었다


가을에 나는 모든 걸 다 잃었다

하늘과 땅과 세상은 멀어졌 건만

나를 구하러 나선 은인이여


속이 알차 숨막히는 행복에

그렇게 이쁘게 웃는 미소이여서

내 태양을 수만개를 띄워주고

어디론가 떠나버렸지


가을이면 잊혔던 태양을 찾는다

나와 너와 우리들의 뜨거웠던 사랑이여

한줌도 안되는 내 생명을 불태웠던

지칠 수가 없는 얼굴이여

하나의 행복이 수만개의 슬픔을 잊은

아름다운 얼굴이여.


◆ 꽃의 임무

언어가 없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향기의 뜻을 말합니다

어둠 속에서도 한맘이 되여서

천만마디를 속삭입니다


꽃의 꿈이란

인간의 맘으로 읽을 수 없으리

오직 꽃이 된 숙명이여야

거룩한 신조로

그 맘의 구구절절을 읽을 수가 있으리


그러니 우리가 꽃의 기쁨을 어찌 알리오

오직 꽃이 되여야

꽃 속에 숨은 비밀을 알 수가 있으리

꽃이 자신을 위하여 터뜨린 향기는

향기를 믿고 리해하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전당이요

참뜻입니다.


◆ 사월의 앞마당

나 구월에 여기에 와 산다오

락엽을 보고 가지를 보고

찬 하늘도 보아서

여기, 내가 사는 곳에는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저곳은 내가 보지 못한 내 앞마당

계절의 어느 날에 보았던 내 눈과 마음에

초록도 없고 색갈도 없고 이쁜 기다림도 없던

내 앞마당입니다


저것이 피는 사이에 겨울 동안

라목들 사이의 센바람들이

사정없이 날쳤던 내 앞의 정원이였습니다

저것이 피여나다니

없던 라목과 마당에 차오르는

꽉 차서 나무를 태우는 저곳이 있다니


아침에 사진 한장을 찍었습니다

내 정원에 가장 아름답던

내 눈앞에 예쁘고 화려하던

저 나무에 피여난

하나의 그림으로 영원히 남겨둘

가슴 깊이 심어진 사월에 그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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