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란 나무장대로
집앞에 비닐박스를 만들면
아버지는 영근 벼를 쏟는다
물을 채우니 부푼 이 씨앗들이
들을 기다리며
파란 옷을 그리워한다
물이 차겁지만
태양이 언젠가 따뜻할
논은 넓고 벌은 크다
그리고 또 그려도 다 못 그리는
파란 꿈이 여기서부터
서서히 움트며 싹이 튼다
봄에 꺼낸 이 생명들이
아버지의 손길에
사방으로 끝없이 흩어져
알알이 칠색을 장식한다
여름이 얼마나 컸던가
수많은 그 이야기에
희로애락을 들썩이며
봄바람에 실려
여름폭우에도
가을이 다 가도록
아니 아니 그
한끝에 겨울마저도
다 껴안아주던
이 강산들이다
봄에 깨여
아버지의 논고랑에 익어가던
오늘을
또다시 심는다
너와 나의 터전에
토양은 그래서 아름다운
전설 속의 신화보다
더 예쁘고 사랑스럽다.
◆ 해바라기
작은 발걸음이 여기에 온
그날부터 비바람은 얼마나 세였던가
폭염에도 지치지 않던
꿈나라 그 동네
잊혀지고 묻혔어도
계절이 되면 맞아주는 그 마음에
나는 취해서
우연히 함께 걸었다
가을에 나는 모든 걸 다 잃었다
하늘과 땅과 세상은 멀어졌 건만
나를 구하러 나선 은인이여
속이 알차 숨막히는 행복에
그렇게 이쁘게 웃는 미소이여서
내 태양을 수만개를 띄워주고
어디론가 떠나버렸지
가을이면 잊혔던 태양을 찾는다
나와 너와 우리들의 뜨거웠던 사랑이여
한줌도 안되는 내 생명을 불태웠던
지칠 수가 없는 얼굴이여
하나의 행복이 수만개의 슬픔을 잊은
아름다운 얼굴이여.
◆ 꽃의 임무
언어가 없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향기의 뜻을 말합니다
어둠 속에서도 한맘이 되여서
천만마디를 속삭입니다
꽃의 꿈이란
인간의 맘으로 읽을 수 없으리
오직 꽃이 된 숙명이여야
거룩한 신조로
그 맘의 구구절절을 읽을 수가 있으리
그러니 우리가 꽃의 기쁨을 어찌 알리오
오직 꽃이 되여야
꽃 속에 숨은 비밀을 알 수가 있으리
꽃이 자신을 위하여 터뜨린 향기는
향기를 믿고 리해하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전당이요
참뜻입니다.
◆ 사월의 앞마당
나 구월에 여기에 와 산다오
락엽을 보고 가지를 보고
찬 하늘도 보아서
여기, 내가 사는 곳에는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저곳은 내가 보지 못한 내 앞마당
계절의 어느 날에 보았던 내 눈과 마음에
초록도 없고 색갈도 없고 이쁜 기다림도 없던
내 앞마당입니다
저것이 피는 사이에 겨울 동안
라목들 사이의 센바람들이
사정없이 날쳤던 내 앞의 정원이였습니다
저것이 피여나다니
없던 라목과 마당에 차오르는
꽉 차서 나무를 태우는 저곳이 있다니
아침에 사진 한장을 찍었습니다
내 정원에 가장 아름답던
내 눈앞에 예쁘고 화려하던
저 나무에 피여난
하나의 그림으로 영원히 남겨둘
가슴 깊이 심어진 사월에 그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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