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와 ‘장군’ □ 신영애

2023-10-13 08:42:59

사과껍질을 다 벗긴 후 그녀는 먼저 3분의 1쯤 베여 한 옆에 앉아 텔레비죤 채널을 돌리고 있는 남편에게 건넸다.

“싫다는 데두?”

남편은 짜증을 냈다. 하지만 내민 손을 거둬들일 념 안하는 그녀를 보자 하는 수 없이 받아서 서걱서걱 씹기 시작했다. 쳇, 그녀는 씩-웃었다.

“다 먹지 못해서 그러는 거예요.”

하지만 매번 그녀는 덩치가 큰 과일만 사들였다. 우유도 일부러 200밀리리터가 아니라 250밀리리터 포장으로 장만했다. 그래야 남편한테 남겨줄 수 있으니까. 담배를 피워서인지 남편은 군입질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녀가 반쯤 마신 우유를 내밀면 남편은 눈을 흘기며 받아쥔다. 그리고 개탄한다.

“노예와 장군!”

이 말은 그들이 중학교를 다닐 땐가 돌렸던 영화제목에서 유래된 거였다. 한 장족 아이가 홍군을 따르면서 노예로부터 장군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였는데 내용과 상관없이 그 년대 사람들은 늘  어쩔 수 없는 현격한 지위와 신분의 차이를 놀림조로 ‘노예와 장군’에 비유하군 했다.

코로나 때문에 이미 3년째 일을 접고 집에서 놀고 있는 남편은 늘 자기를 ‘노예’에 비유했다. 자기 혼자 수입이 없으니 지위가 없다는 뜻이였다. 그때마다 그녀도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네번째면서두 뭐?”

역시 소품에서 따온 대사였다. 안해가 1위이고 아들애가 2위이며 애완견이 3위이고 자기는  네번째밖에 안된다고 야유하던 유명한 소품배우 풍공(冯龚)이 정의 내린 남편들의 가족지위였다.

하지만 그녀의 집에서 ‘장군’은 구경 누구인지 따로 정해진 사람이 없었다. 그녀인지 아들애인지  그리고 늘 ‘노예’라고 자처하는 남편일지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어느 날 고분고분 열심히 일하는 자동청소기를 보며 남편이 시물거렸다.

“음-끝내 말 듣는 놈이 하나 생겼군.”

그 바람에 그녀는 숨이 넘어가게 킥킥 거렸다.

“아이구, 축하할 일이네. 당신 급을 췄네. ‘칭커’해야 하는 게 아니야?”

남편도 흐흐 웃음을 띄웠다.

2020년 벽두에 코로나가 폭발하며 남편은 다시 한국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즈음 그녀도 정년퇴직을 하게 되였고 그들 부부는 함께 아직 미혼인 아들애가 살고 있는 곳으로 왔다. 이렇게 아들애가 대학 가면서부터 세곳에서 저마끔 갈라 살던 세식구가 7년 만엔가  다시 한집에 모이게 되였다.

그녀는 이런 생활이 꿈만 같았다. 비록 수입이 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고 성취감 같은 희열은 없어졌지만 마늘 하나 파 하나 놓고도 시야비야 티격태격 하는 여유로운 일상이 너무 좋았다. 매일 걷기 운동을 하며 구경도 하고 촬영도 하고…  출근하는 아들애 뒤바라지도 하고… 예전에 아들애와 남편 걱정에 매일 영상통화를 해야 시름 놓고 잠자리에 들던 시간들은 이렇게 자잘하지만 힐링이 되는 안온한 나날들로 바뀌였다.

원래는 퇴직 후 남편을 따라 외국에 나가 돈이나 좀 벌자고 계획했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일찌감치 돈벌이 야망을 다 내려놓게 된 셈이였다. 하지만 다 내려놓으니 홀가분하기만 했다. 그동안 지갑이 무둑해지면서도 뭔가 빠져나간 느낌이 그냥 스멀거렸는데 그게 뭔지를 새삼스레 알아가는 둘도 없는 소중한 나날들이였다

그녀는 아침밥을 책임지고 남편은 점심과 저녁식사를 책임졌다. 그러면서 서로 자기 책임이 더 중하다고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뭐 아침밥만 하면서두.”

“아침에 다 해놓는데 당신이 손 댈 게 뭐 있다구 그래요?”

그외 그녀는 또 집안 정돈과 세탁을 책임지고 남편은 설겆이와 마루청결을 책임졌다. 남편은 늘 그녀가 설겆이를 해주었으면 했다. 특히 맥주를  한두병 굽낸 후엔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그녀는 견결히 물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때마다 흔들흔들 설겆이를 하며 남편은 길게 한탄했다.

“후-노예니 별수 없군.”

어느 날 아직 점심도 되지 않았는데 옥수수를 삶고 고구마를 삶는다고 남편이 설쳤다.

“아니 저녁에 먹을 건데 왜 벌써 삶아요?”

그러자 남편이 데퉁스레 반박했다.

“상관이 뭐야!”

“에그-성질은?”

그런데  점심이 되여 밥을 뜨려고 보니 밥가마에 이인분가량의 밥만 있었다. 원래 점심밥이 모자란다고  옥수수랑 고구마랑 삼고 자기는 그걸로 점심요기를 할 예정이였다. 그녀는 혼자서 시물시물 입가에 웃음을 그렸다.

“ㅋㅋ 누가 ‘노예’가 아니랄가봐.”

한여름이 되였다. 그날 친구의 전화를 받던 남편은 그길로  북대하로 가야겠다고 서둘렀다.

“그집 장모님이 세상 떴다는군. 지금 심양을 지나 오후쯤이면 북대하에 들어설 거라는데.”

“아니? 뻐스도 안 통하는데? 그리구 북대하는 페쇄가 더 엄할텐데 들어갈 수 있겠어요? 며칠 전에도 세시간이나 기다렸잖아요.”

며칠 전 그녀네는 진황도 고속도로에서 내리지 못해 세시간이나 막혀있었다. 비록 같은 진황도 경내인 청룡진 사이를 오가는 것지만 방역 때문에 차량마다 검사를 마쳐야 했다. 일곱차도가 한개 검문을 지나는 지루함이라 할가? 게다가 지금은 북대하에서 무슨 회의준비로 방역조치가 아주 엄했다.

그래도 남편은 그냥 떠나갔다.

“가는 곳이 길이라고 일단 가고 봐야지. 상사를 치를 줄 모른다구 와 주었으면 하는데 어쩌겠어.”

“당신은 뭐 아나요?”

“난 그래도 두루 많이 배웠어. 그리구 접때 이 방면의 일을 잘 아는 사람을 알아뒀기에 물어보면 돼.”

부지런히 떠나가는 남편을 보며 그녀는 또 한번 구시렁거렸다.

  “에그-누가 노예가 아니랄가봐. 이젠 아주 동네 ‘노예’까지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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