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에 □ 황정혜

2023-11-02 16:09:51

시 한수 쓰려면

나무더러

가르쳐달라 하세요


가지마다 꽃피는 봄

잎잎이 무성한 여름

홍옥처럼 물드는 가을,

걸친 것 모두 벗어버린

동면의 겨울

기, 승, 전, 결 아닌가요


시 한수 쓰려면

나무더러

가르쳐달라 하세요


꽃들이 “나 이뻐?” 하다가

매미가 “더운 여름이 질려!” 하면

“귀뚜라미 씨줄날줄

구성진 실 뽑아내는

가을이 곧 올거야” 하고,

어느덧 나무잎들도

이쁜 옷 갈아입고

얼굴 붉히며 시집가면

축복의 흰 눈이 내려요


시 한수 쓰려면

나무더러

가르쳐달라 하세요


바람이 불면

나무가지에서 글줄들이

우수수 떨어져요


나, 시 한수 쓰고 싶어

나무의 무릎 아래에 앉아

불타는 락엽 한장 한장

주어들며 시를 줏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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