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에 □ 황정혜
시 한수 쓰려면
나무더러
가르쳐달라 하세요
가지마다 꽃피는 봄
잎잎이 무성한 여름
홍옥처럼 물드는 가을,
걸친 것 모두 벗어버린
동면의 겨울
기, 승, 전, 결 아닌가요
시 한수 쓰려면
나무더러
가르쳐달라 하세요
꽃들이 “나 이뻐?” 하다가
매미가 “더운 여름이 질려!” 하면
“귀뚜라미 씨줄날줄
구성진 실 뽑아내는
가을이 곧 올거야” 하고,
어느덧 나무잎들도
이쁜 옷 갈아입고
얼굴 붉히며 시집가면
축복의 흰 눈이 내려요
시 한수 쓰려면
나무더러
가르쳐달라 하세요
바람이 불면
나무가지에서 글줄들이
우수수 떨어져요
나, 시 한수 쓰고 싶어
나무의 무릎 아래에 앉아
불타는 락엽 한장 한장
주어들며 시를 줏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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