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련가 (외 5수) □ 신계옥

2023-11-09 15:05:39

길가에 누워있는 노란 은행잎 밟고

가을이 성큼성큼 말 걸어와

빗장 닫을 차비를 한다


저 높고 푸른 하늘,

올려다  보고 있는 명경같은 못물,

가야 할 때를 아는 매미는

목이 쉬여 어디로 갔는가


못다 읽은 책장을 넘기며

귀뚜라미는 섬돌 밑에서

바쁘게 글을 읽고 있다

풀벌레 우는 소리

드물어진 들길에는

들국화 저들만의 축제가 한창이다


바람이 은행잎을 부추겨

어디론가 데리고 간다

그 행방을 알 길 없다



래일도 태양은 떠오른다


삶은 어제 오늘, 래일로

책장을 넘기 듯 이어지는 습관처럼

힘들어도 아무도 위로해 주지 않아


버거운 짐 지게처럼 내려놓지도 못하고

끝없이 지고 가야 하는데

어깨가 무너져 내린다


내 등의 짐이

고통, 사랑, 용서를 배우고

억눌린 무게를 감당하게 한다


내 등의 짐으로

광주리에 담긴 과일처럼

겸손, 소박, 기쁨을 알아가는

세상의 가장 값진 선물이 된다


그 짐이 나를 단련시키고

강하게, 또는 더욱 꿈꾸게 하는 보물로

역경을 이겨내라 찾아온다


지금, 그 짐으로

힘겨워도,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해 흔드는 깃발처럼

래일의 태양을 맞이한다



나의 길


세상 모든 걸 다 할 수 없는 나

그러나 무언가는 할 수 있다

그 무언가를 실천하는 것이

나의 길이다


한계를 뛰여넘어

물처럼 껴안고 지나가자

느린 달팽이가 되여도 괜찮다

간절히 꿈꾸던 길이 아니던가


구름따라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진달래 피고 오솔길 지나고

바람이 일고 까치가 우는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가야 할

숲으로 가는 길


락엽이 떨어져 날리는 길

뒹굴면서 수없이 짓밟히는 길

쌓여서 천천히 부서지는 길

흙으로 다가서는

내 꿈은 락엽귀근의 길



민틀레 화신


들녘의 꼬부라진 길목에도

해마다 조용히 찾아오는 봄의 화신

민들레 너로구나


짓밟혀도 죽지 않고

너그럽게 뿌리내려 자라나

톱날같은 푸른 잎새로

세월을 썰어가며

노란 웃음 피워주는 민들레


씁쓸한 약물이 몸에 좋아

흰 머리 검게 젊어진다오

무치고 데치며 김치 담그어 먹고

입맛 쓰거운 쌈도 별맛이라오


곧은 마음씨 바른 꽃대에 세워

벌 나비 찾아오면 꿀을 나누고

즙을 내여 종기 치료하며

아픈 사람 병 낫게 하는 민들레


씨앗이 락하산처럼 바람 타고

멀리 낮선 곳에 가더라도

하늘이 뿌려주는 비방울과

땅이 맺혀주는 찬 이슬에

다시 환생하였지


세세대대 뿌리 깊은 족속 키워

바람과 자신밖에 모르는 언어로

고달픈 운명 쓰거운 삶을 하소하며

해님처럼 웃고 있네



노을


노을이 진다, 노을이 진다

붉게 타오르던 노을이 진다

산을 넘고 강을 지나

이글거리던 해 살라먹고

노을이 진다


푸르던 잎새 락엽 되고

몸 치장한 꽃마저

절벽 아래 락화하 듯

영웅호걸 절세가인도

가고 없네


너울너울 춤추는 청산이 좋아

살아왔건만

청산이 있어 머루랑 다래랑

키우며 살아왔건만


아아, 노을아, 붉은 노을아

네가 가면 나도 따라가야지

꽃과 나무, 새들은 한 해 가면

다시 돌아오건만

돌아오지 못하는 목숨이 서러워라


쓸쓸한 중년


아무려면 어때,

중년의 나이에 못다한 꿈

하나 만이라도 간직하며

산다는 거!


내 중년은

지금 바람에 휘둘린

바람개비처럼 몸이 달아

구름따라 흐르고 흘러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어느 문간집 앞에 서있다


꿈 속 랑군님이

손가락에 끼워준 백년언약의

루비반지같은 석류꽃이

담 넘어 고개 내밀어 반겨주는

이런 기막힌 날이

내 쓸쓸한 중년에

  비친다니까!

  •  
  • 많이 본 기사
  • 종합
  • 스포츠
  • 경제
  • 사회

주소:중국 길림성 연길시 신화가 2호 (中国 吉林省 延吉市 新华街 2号)

신고 및 련락 전화번호: 0433-2513100  |   Email: webmaster@iybrb.com

互联网新闻信息服务许可证编号:22120180019

吉ICP备09000490-2号 | Copyright © 2007-

吉公网安备 22240102000014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