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얼굴 붉히며
해님이 서산 마루에
내려앉을 때면
밭일 마치고
노을 한 짐 등에 지고
돌아오시던 아버지
구리빛 얼굴에도
지친 노을빛은 묻어있었습니다
초가삼간 걱정살이에
북풍한설 가슴에 안고
한생을 묵묵히 일 해온
아버지는 노을빛이 등대인양
노을따라 조용히 가셨습니다
황혼 짙은 이 저녁
내 마음 하늘가에
노을빛이 파도처럼 물결칩니다
가을나무를 보며
사정없이 몰아치는
찬 서리의 담금질에
시나브로 물든 나무잎들은
울긋불긋합니다
금세 떠미는 찬 바람에
파르르 떨며 나무잎들은
하나 둘 땅에 내리고
나무가지는 앙상한 몸을
휘청 휘청입니다
자식들이 하나 둘 커서
일 찾아 떠나 갈 때마다
오래오래 배웅하던 엄마,
그 엄마도 이제는
가을나무처럼 수척합니다
엄마처럼 봄 여름 가을을
참고 살아 왔을 가을나무,
잔잔히 밀려드는 찬바람에
나무잎이 되여
훨훨 날아 보고 싶습니다
고향집 처마
짖궂은 가랑비가 초가집 찾아
조잘조잘거릴 때마다
구슬프게 눈물 흘리는 처마,
뭐가 그리도 슬퍼
줄 끊어진 구슬처럼 하염없느냐
간만에 고향 잊지 않고
찾아온 제비아씨
새 옷깃 흠뻑 적실가
비물 털어대느라 분주하다
검은 머리 풀어헤친
구름 사이로 얼굴 내민
해님이 웃어준다고
너도 따라 웃지랑 말거라
울다가 웃으면
얼굴에 털 난단다
시내물
무슨 사연
무슨 아쉬움 그리도 많아
수많은 매듭을 풀고 감으며
쉼없이 가느냐
여울따라 굽이굽이
섬섬옥수로 그려내는
잔주름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가다가 가다가
바위에 걸채이면
기지개 켜며 뒹굴다가
구름이 비를 뿌리면
시름도 말끔히 잊은 듯
껴안고 함께 흐르는 것을
첩첩 산곡이 닳토록
줄달음쳐 내리며
흐느끼던 너의
지친 산울림 애닯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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