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끈 □ 리정림

2023-11-17 08:46:40

내 딸은 외모도 성격도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한번 정한 일은 꼭 이뤄내는 올곧고 우직스러운 마음까지도 꼭 닮았다. 모든 일에 주견이 바르고 끝까지 실천하는 딸은 일찍 스무나문살 어린 나이에 자기의 더 나은 꿈을 찾고저 홀로 일본류학길에 올랐다.

이렇게 ‘혈혈단신’으로 내 품을 떠난 딸은 낯선 일본땅에서 자기가 정한 목표를 향해 이를 악물고 공부했고 마침내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이바라키공항에 당당히 직원으로 입사했다.

이렇게 바다 건너 일본이란 나라에 발을 붙인 딸은 지금 일본사회에서 훌륭한 커리우먼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가정에서도 한 남자의 따뜻한 안해와 어린 아들의 자상한 엄마로 자기 삶을 착실히 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기가 걸어온 성공경험으로 남동생을 일본에 불러와 대학을 졸업시키고 도꼬의 한 직장에 취직시켰다. 이렇게 딸과 아들, 나의 두 지식은 모두 일본에서 살고 있다.

지난 2012년, 후꾸시마의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던 그 이듬해 봄에 나는 딸이 보내준 비행기표로 일본으로 날아갔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에서 딸의 집으로 가는 길은 전해에 발생했던 자연재해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울퉁불퉁했고 주변은 지진참상의 흔적들이 여기저기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아직 채 철거하지 못한 허물어진 벽체와 도로 옆에 쌓인 여러가지 건물잔해들, 기울어진 다리와 교량 입구에 세워진 안전주의 표시판들…

가뭄이든 홍수든 또는 태풍이든 지진이든 자연재해란 거의 격어본 적이 없는 평온한 연변땅에서 반백을 넘어 살아온 나는 마치 전쟁영화의 한 장면으로나 나올 법한 거리의 이런 참담한 정경을 처음 보고 놀라서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운전하던 딸은 백미러로 나의 이런 표정을 힐끔 쳐다보더니 웃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은 그래도 많이 정리된 상태입니다. 좀 있으면 깨끗이 복구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전해 3월 11일 대지진이 일어나던 날, 생사가 오가는 짧은 순간에 어린 아들을 가슴에 안고 집을 빠져나오던 이야기를 하였다. 지진이 발생하자 집이 마구 흔들리며 주방의 찬장에서 그릇이 와르르 떨어지고 천정에 달린 전등이 흔들거리며 한참 자고 있는 아들애 머리 우에 떨어지려는 찰나, 딸은 엄마의 본능으로 와락 달려가 아들을 끌어안고 엄청나게 흔들리는 계단을 한발작 한발작 기여내려 겨우 아빠트를 빠져나왔다고 했다.

딸은 옆집 가계주인 아줌마에게 아들을 맡기고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아수라장이 된 집에 올라가서 아이의 옷과 우유를 가지고 내려왔다.

그리고 회사에 출근했던 사위는  전기와 통신이 끊긴 상황에서 캄캄한 밤길을 헤매며 걷고 뛰고 넘어지며 깊은 밤에야 겨우 안해와 아들을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배고파 우는 어린 아들에게 우유를 먹이기 위하여 뜨거운 물을 찾아 밤새 뛰여다녔다고 했다. 딸의 말을 듣는 내내 마음이 아프고 끔찍했다.

딸은 “엄마, 이젠 다 괜찮아졌어요. 너무 근심하지 마세요.”라고 했지만 어찌 근심하지 않으랴. 나의 가슴에는 그리고 입가에는 차마 내뱉지 못한 이런 말구절들이 감돌았다.

지금 너희들이 이런 위험한 곳에서 살고 있는데 엄마가 어찌 한시라도 마음 놓을 수 있겠니.’

그날 그때 보았던 지진피해를 입은 도시 페허의 어지러운 잔상은 그 후 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지워지지 않고 내 머리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지구촌은 요즘에도 온갖 재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전쟁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속출하고 있으며 자연재해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또 어디서 어떤 가슴 떨리는 소식이 전해오지 않으려나 하는 우려로 텔레비죤을 켜기조차 두렵다. 손이 떨리고 가슴이 조일 때가 가끔 있기 때문이다.

지난 7, 8월에는 올해 제6호 태풍 ‘카눈’이 동아시아 해안지역을 강타하여 우리 나라와 조선반도 및 일본렬도에 큰 피해를 입혔다. 태풍소식이 즘즘해지자 이번에는 시커먼 재더미로 변한 미국 하와이 산불소식이 텔레비죤 화면을 가득 채웠다. 8월 8일 발생한 이 재난은 순식간에 2700채 이상의 건물을 불태우며 삼림소실면적 800헥타르 이상, 사망 93명, 실종 1000명 이상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이런 재난소식중에서도 나는 특별히 ‘지진발생’이라는 말에 더욱 민감하다. 지난 2월 6일 이른 새벽, 튀르키예 동남부를 강타한 진도 7.8의 강진이 발생했을 때도 내 눈앞에는 대뜸 멀리 서쪽에 있는 나라인 튀르키예보다도 그와 정반대 쪽인 동쪽의 바다 건너 일본땅이 먼저 떠올랐다.

그것은 지진이 잦은 일본땅, 흔들리는 섬나라 그 땅에 내 아들과 딸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의 끈이 그 땅에 끈끈하게 이어져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나의 마음은 줄곧 탱탱하게 조여있었다. 딸은 지진이 발생한 후꾸시마와 린접한 이바라키에 살고 있어 핵피해 영향권 안이라 혹시 어떤 일이 발생하지나 않을가 가슴이 조마조마하였던  것이다.

언제나 내 마음을 조이는 끈, 내가 한 남자를 만나 처음 엮어진 이 끈은 내 마음에서 시작하여 그 후 엄마와 딸, 엄마와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졌다. 천륜이란 이름으로 이어진 이 끈은 천리 밖, 만리 밖이라 하여도 지척으로 이어준다. 또한 이 끈은 세상에서 가장 질긴 끈으로서 순간마다 내 가슴을 당겼다 놓았다 하고 조였다 풀었다 하며 한시도 놓칠 수 없는 한가닥 운명의 끈으로 묶여 있다.

그리고 이 끈이 전해주는 마음의 무게, 마음의 부피는 이 세상 무엇으로도 가늠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숙명적인 아픔과 슬픔은 있기 마련이다. 나 역시 남편이 예고 없이 돌아가고 힘든 시간 속에서 한 사람의 진한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다함없는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가슴으로 느꼈다.

먼 하늘에 피여나는 한송이 흰구름을 바라보며 나는 오늘도 딸애를 생각한다. 그때 그애가 말해주던 “떠나간 사람을 마음에서 놓아주는 것 역시 하나의 사랑입니다.”를 새기며 슬픔을 무마하군 했다. 이것 역시 마음의 끈이 이어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나간 아픔을 묻어두고 시작하는 새로운 삶, 그것 또한 아팠던 만큼 아름다울 것이다. 삶이란 어쩌면 행복과 슬픔의 서로 오가는 드라마인 것 같다. 이젠 마음을 속이지도 않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큰 욕심 없이 잔잔한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을 쓰다가 손이 떨려 연필을 떨구면 옆에서 다시 주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과 친구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다. 이런 생각을 가지기까지 딸의 살뜰한 사랑과 현명함이 있었다.

남편이 돌아가고 썩 후의 어느 날, 딸애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아마도 아버지가 쓰러지던 그 순간일 겁니다. 내가 저녁에 치솔질을 하다가 손에서 치솔고뿌를 놓치며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대뜸 박살이 났습니다. 그래서 어쩐지 마음이 불안불안하였는데 이튿날 아침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받았습니다. 하늘이 돌아가고 땅이 꺼지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 부모와 자식은 뭔가 통하는 게 있는가 봅니다.”

그런가 보다. 천리, 만리 밖에서도 전기가 통하듯 바로 이어지는 이 마음의 끈, 세상 무엇보다 질기고 세상 무엇보다 따뜻한 혈육이라는 이 마음의 끈, 이제 애들이 자라나서 각자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으면 또 새롭게 이어지게 되리라. 이렇게 끊임없이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마음의 끈, 참으로 우리 세상이란 이런 마음이 끈이 엮이여 얽히고 설키여 이뤄지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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