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나다 (외 8수) □ 최선숙

2023-12-15 08:41:47

누구든 언제든

놀러 가자고 하면

제일 군말 없는 게 나다


아주 조금 거의 들리지 않게

-가게 봐야 하는데

한마디 하는 척


-못 온다더니 왔네.

-응, 안 오면 실례일 거 같아서…

잠간 얼버무리며 부끄러운 척


내 속은 내가 제일 잘 안다

지금껏 일만 죽어라고 하면서

내가 봐도 내가 너무 불쌍해


이제 좀 누리면서 살려고

놀기도 하고 먹기도 하고

지금껏 못해본 거 다해보려고


오늘도 나는 들놀이 나왔다

열심히 즐길 거다

내 생애 마지막 날인 것처럼.


★ 어미 마음


주지 못한 사랑은 왜 이리 많은지

내가 몰래 쓰려고 남겨둔 건 아닌데


더 큰 나무가 되여

비바람도 막아주고

좋은 그늘도 되여주고

멋진 풍경도 선사했더라면


아침을 주고 나면

점심을 걱정하고

점심을 챙겨주고 나면

저녁을 서성이며


아프진 않는지

배고프진 않는지

머리는 곱게 빗었는지

휴지도 챙기고 다니는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쓸데없는 걱정만 쌓으면서


미처 주지 못한 사랑만

자꾸 마음을 괴롭힌다.


★ 잉 태


내 스튜디오이자

내 작업실이자

내 서재이자

내 사랑방


생각에 나래를 달아주면

나래에 상상을 달아주면

상상에 련상을 달아주면

련상에 환상을 달아주면


갑자기 쏟아져나오는

내 새끼들 내 새끼들

그래그래 보채지 말고

어디 한놈씩 나오거라.


★ 예뻐서 좋겠다


꽃이 하도 예뻐서

가던 걸음 멈춘 적 있으신가


에구머니 이토록 이쁘다니

감탄을 쏟아내다가 급기야

폰을 꺼내 사진을 찍어대며

어쩜 요리 이쁠가


촬영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함부로 철컥철컥 찍어댔는데도

얼마나 예쁘게 나왔는지

작품이 따로 없다


하여간 넌

예뻐서 좋겠다

순간을 피였다 사라진다 해도

세인의 찬탄을 자아냈으면 그만이지


꽃이 하도 예뻐서

그 앞에서 반백의 아줌마가

감성소녀로 되는 걸 본 적이 있으신가.


★  봄을 먹어봤니


원없이 봄을 먹어봤네

그 많은 봄꽃들 눈에 다 담아봤고

그 맑은 봄기운 가슴에 다 품어봤구나

이렇게 정답기만 한데

왜 지금껏 모르고 지냈던가

봄이 오면 봄인사라도 해야지

봄 들판에 나가 봄을 먹어봐야지

봄사랑을 해봐야지

욕심껏 봄을 먹어봤네

올 한해 봄욕심 더 내지 않으리.


★ 부러워하면 지는 거다


아무렇게나 걸친 듯한

개성 있는 캐주얼

럭셔리한가 심플한가

캐주얼의 소년과 원피스의 소녀

신짝 떨굴가 손에 꼭 들고

바다가 백사장에서 멍 때리는 모습

방황하듯 배회하듯 걷다가 멈추고

멈췄다가 다시 뛰는 동영상

너희들 덕분에 흐린 바다가가

한결 생기롭다

부러워하면 지는 거다

부러워하면 지는 거다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자꾸 가는 눈길 간신히 잡아두는데

에라 져도 괜찮아

딱 한번만 더 보자

젊음한테 지는 건 지는 게 아니거든.


★ 연분홍 그리움


촉촉한 그대 입술은

왜 눈 감아야만 느껴지나요

그대의 달콤한 속삭임도

왜 눈감아야만 들리는가요


그대는 연분홍 그리움

그대의 향기를 느껴봅니다


우리가 만약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세상이 온통 시샘하겠지요

우리는 세상의 시샘에서

멀리 도망쳐 무인도에 가겠지요


그대는 핑크빛 그리움

그대의 사랑을 느껴봅니다.


★ 사랑의 두려움


-자기야 사랑해

-자기야 두려워

-뭐가 두려워

ㅡ 자꾸자꾸 더 좋아져서

그 말이 왜 그리 달콤하던지

실실 자꾸 웃음만 나갔지


근데 그거 알아

나두 두려운 것을

나두 자기가 좋아져서

헤여나올 수 없이 좋아져서

점점 두려운 것을


그래도 좋아

영원히 풀 수 없는

사랑의 포승줄에

결박당하고 싶어.


★ 꿈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꿈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꿈속에서도 당신은 그토록 자상하셨습니다

그 부드러운 눈매며

그 저릿저릿한 손길이며

그것을 느끼며 온통 들뛰던 이 가슴이며


꿈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바람에 나붓기는 당신의 머리카락을 보며

소녀시절로 돌아간 듯 설레였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하시겠지요

그런데 어쩌면 좋아요

저 또한 당신의 설레임이고 싶은 걸요


꿈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당신의 호수에서

숨이 넘어가도록

사랑이라는 걸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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