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이 (외 8수) □ 최화길

2024-01-05 09:07:36

제법 씹을 만하다

사과는 사각사각

과자는 바삭바삭

김치도 서걱서걱


무정 세월이 앗아간

내 소중한 이를

플라스틱이 대신하여

살아가는 감회다


이가 없으면

이몸으로 산다던

조상들의 삶이

옛말임을 체감한다


만들어진 이여서

성능은 좀 못하지만

사는 데는 별 지장이 없다

물론 불편이 없는 건 아니여도


혜택이 아닐 수 없다

입맛 모르고 산

이를 뺀 나날들을 생각하면

꿈처럼 황홀한 시작이다


흘러간 지난 세월

탓하는 후회보다

주어진 오늘에 만족한다면

세상은 날마다 새로운 지평 아니랴!



순 리


모든 의문 뒤에는

다 답이 기다리는 것 아니고

모든 리별은 다 상봉하는 것도 아니다

실패가 성공을 가르치듯이

성공은 실패가 데려오더라

시 한수 찾아 천만리 달렸어도

찾지 못한 깊이 숨은 시

아예 멀리했는데 생각 밖에

약속한 듯 찾아오더라

내 생각이 모두 진주 아닌 것처럼

세상은 무한한 밤하늘 나는

그 하늘에서 반짝이는 작은 별 하나.


비는 내리고


무슨 하소연 그리도 많아

주저리주저리 그칠 줄 모를가?


이미 허리를 넘어선 길

돌아서면 아예 꺾이는 길


잠시 숨 돌리는 사이

내 인생이 나를 튕겨준다


그냥 가면 흠뻑 적시겠지만

멈추면 후회 한줌 보탠다고


선택은 많을 수 있지만

결과는 결코 둘일 수 없다고.



사랑 별곡


끓는 물보다

많이 더 뜨겁다고 한다


환히 알 때보다

까맣게 모를 때 행복하다고 한다


먼 래일에 대한 환상보다

눈 앞의 오늘을 아끼는 지혜라고 한다


내가 누리기보다

누군가를 누리게 하는 바침이라고 한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미

꺼져버린 불길이고 말라버린 우물이라 한다.



락 엽


한여름의 생기와 활력이

눈꽃처럼 내리네

약속한 듯 앞장 다투네

삼복염천에도 타지 않고

싱싱하던 잎들이

서리발 반짝이는 추위에

한결같이 불을 지피네

한몸 활활 태우네

온 산이 불길로 이글거리네

하지만 점점 기승 부리는

무정 추위 누를 길 없어

분신도 모자라 한 몸 던져

분분히 쏟아지네

어머니 찬 가슴 덮어주려는

불타는 생의 화려한 종지부.



너를 멀리하는 건


리유가 따로 없다

사랑해서라고 말하기는

너무 화려해서 부담스럽다

아무리 속을 비워도 나에겐

담아낼 만한 큰 그릇이 없다

차라리 나에게는 분에 넘쳐서

너무너무 소중해서

내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득히 떨어져있는 별처럼

맑은 날이면 바라볼 수 있는 혜택

그것만으로도 깊이 행복하다

갈 수 없고 올 수 없는 그리움

세월 속에 녹 쓸지 않는 물처럼

드넓은 바다로 흘러

기어이 바다와 한몸 되여

고스란히 너를 품고 살리다.



진 실


동반구에서 해가 뜨면

서반구에선 해가 진다


한쪽이 이겼다고 환호하면

상대 쪽은 졌다고 한탄한다


목적지에 닿으면 끝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또 다른 기점의 시작


자전하는 동시에 공전하는 지구에서

치륜처럼 맞물리는 융합의 지평선


너와 나 상극의 령을 넘어

상생의 대안으로 가는 려명이다.



산을 좋아하는 리유


올라야 한다

오를 수밖에 없다

숨이 차고 맥이 풀리고

돌아서 내려가고 싶지만

오직 올라야 정상에 닿는다

내려가면 육신은 가뿐할지 몰라도

바라고 지향한 고운 소망은 깨여진다

길이 없다

만들며 간다

할퀴고 넘어지고

당장 해탈하고 싶지만

차마 돌아설 수 없는 의욕이다

내려가면 아픔의 고통은 없겠지만

정상에 오르지 못한 유감은 지울 수 없다

인생도

다름 아니다

착한 삶을 살려면

땀 흘리고 피 흘리는

그런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날개 굳히려면 벼랑도 톺아야 한다

어쩜 육체보다 정신이 죽지 않는 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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