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의 ‘사랑밥’□ 김성금

2024-02-23 05:06:21

비몽사몽 졸음의 변두리에서 헤매던 란이는 핸드폰의 진동소리에 깜짝 놀라 현실로 돌아왔다. 액정을 들여다보니 ‘울 여보’였다.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이고 또 늦은 시간이라 타국에서 현장일을 하는 남편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놀란 가슴이 세차게 뜀박질을 하였다. 그런데 전화를 받아보니 다행히 홀로 시골에 사시는 시어머니가 독감에 걸린 것 같으니 애를 데리고 래일 가보라는 통보였다.

쳇, 아무리 시어머니가 중해도 그렇지, 아들하고 마누라가 독감에 걸렸다고 할 땐 뜨거운 물을 많이 마시고 땀을 내면 낫는다고 하더니…

전화를 끊고 란이는 남편이 옆에서 듣고 있기라도 하듯이 볼멘소리를 해본다. 고중을 졸업하자마자 ‘국제무대’에서 장사로 잔뼈가 굵은 란이는 입은 누구보다 드세지만 속은 순두부처럼 말랑말랑하다. 시어머니가 많이 힘드실 것이 눈앞에 화면처럼 떠오르며 잠이 구중천에 도망가버린 란이는 차라리 일어나 래일 준비해갈 목록들을 생각이 나는 대로 메모지에 적기 시작했다.

후리후리한 몸매에 인물도 훤하고 돈도 잘 벌지, 매달 정해진 날자에 마누라한테도 어머니한테도 생활비를 꼭꼭 보내는 남편은 부모한테는 둘도 없는 효자이고 란이한테도 ‘모범남편’이다. 바늘 가는 데 실 간다고 남편이 효자이니 며느리도 효부로 동화되였고 며느리로서의 도리로도 아픈 시어머니를 찾아뵈야 했다.

란이는 이튿날 다른 때보다 이른 시간에 아침을 먹고 나서는 아들애를 친구집에 맡기고 시장으로 약국으로 팽이처럼 돌아쳐 이것저것 사들였다.

여기저기 독감병균이 살판 치는 시기 각 현, 시로 달리던 려객뻐스가 끊긴 지도 꽤 오래되였다. 란이도 얼마 전에 몸소 힘든 독감세례를 거쳤기에 식음을 전페하고 고열에 시달리실 시어머니를 생각하니 몸보다 마음이 앞서서 신새벽에 벌써 가끔씩 건강제품이랑 시어머니한테 보내드릴 때 알고 지낸 장거리 택시운전기사한테 전화를 넣었었다.

바리바리 산 물건들을 대문까지 마중 온 택시에 싣고 원래는 네사람을 실어야 떠나는 택시지만 마음이 조급해서 급한 사람이 우물 파는 식으로 택시 기사한테 네사람 비용을 내겠으니 빨리 가자고 부탁했다.

그렇게 혼자 차를 ‘세’내서 왕청을 바라고 차를 달렸다.

도로에 다른 차들이 없으니 택시는 제법 속도를 내여 길옆의 풍경들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독감도 범접할 수 없는 익어가는 가을풍경들을 미처 감상할 사이도 없이 한시간 반쯤 달리니 왕청 외곽에 있는 시집에 금방 도착했다.

집 안에 들어서니 시어머니는 늘 홀로 덮고 자던 단출한 이부자리가 아닌 큼직하고 두툼한 이부자리 속에서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란이는 가져간 짐들을 정리할 새도 없이 먼저 시어머니집의 쌀주머니를 찾아 그 속에 들어있는 작은 종지로 쌀 한줌가량을 퍼내여 물함박을 쓸 필요도 없이 바가지에 담아서 몇번 헹군 후 남비에 물을 붓고 죽부터 끓였다. 시어머니한테 약을 대접하려면 비여있는 속부터 채워드려야 했다.

죽이 끓어가는 사이에 란이는 가져온 송어를 노릇노릇하게 굽고 닭알도 두알 터뜨려 반숙후라이를 만들어 간단한 밥상을 차려 올렸다.

맥을 놓은 채 “으음, 으음” 앓음소리를 내는 시어머니더러 억지로라도 드시라 하고는 가져온 것들을 텅 비여있는 랭장고에 차곡차곡 챙겨넣었다. 면역력이 약한 로인들이 독감에 걸려 저세상으로 불리워간 분들이 많은 걸 떠올리니 홀로 지내는 시어머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하는 생각만으로도 란이는 머리털이 쭈뼛 일어선다.

식사하고 약까지 드신 시어머니는 눈빛부터 달라졌다. 눈에 정기가 돌아 반짝반짝해졌고 축 처져있던 어깨에도 힘이 들가기 시작했다. 남들은 사재기로 장만하는 비상약도 집에 없고 텅 비여있는 랭장고에 찬공기만 꽉 차있는 걸 봐서는 오래동안 밖에 나다니지 않았다는 말인데 어떻게 독감에 걸렸는가고 의아해하는 며느리의 물음에 시어머니는 얼굴에 홍조를 띠며 자기의 비밀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몇달 전에 도문에 사는 란이 시어머니의 언니가 위생실에서 넘어져 팔을 다치셨다고 한다. 자잘한 심부름 같은 건 령감이 다 해주는데 집에 남자 식객 한분이 더 계셔서 밥상 차리기가 걱정이라며 동생더러 와달라고 부탁했다. 사실은 홀로 된 지 꽤 오래된 동생한테 중매를 하고 싶어서 겸사겸사 부른 것이였다.

언니의 ‘엉큼한’ 속내를 모르고 언니와 형부를 도와준다고 길 떠난 란이 시어머니는 그곳에서 외로움에 허기진 두 사람이 밥향기로 인연이 맺어질 줄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그분은 외국에서 거의 20년 가까이 지내다 온 분이였다. 출국할 때에는 부부가 함께였다. 안해는 간병일로 남자는 지게차 운전으로 부지런히 벌어서 아들, 딸 시집 장가를 보냈고 이젠 량주가 고향으로 돌아와 로후를 부담 없이 보내려고 했었는데 갑자기 불어닥친 코로나로 아내분이 먼저 하늘나라로 떠났던 것이다. 홀로 남은 세상이 허무해졌고 돈욕심도 더는 생기지 않아서 고향으로 외로운 걸음을 한 거였는데 하루이틀도 아니고 혼자서 밥을 지어 먹기엔 너무너무 궁상스럽고 밥맛도 잃어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그전부터 형님 동생하면서 가깝게 지내던 란이 시어머니 언니네 집에 식객으로 들어갔던 것이였다.

어차피 해먹는 때시걱에 숟가락 하나만 더 얹으면 되는 거라고 생각되여 그러라고 허락했는데 란이 시이모 꿍꿍이는 다른 데 있었다. 식객의 년세가 동생보다 어리니 먼저 말을 꺼냈다가 거절이라도 당하면 서로 뻘쭘해질가 봐 입을 뻥긋하지 못했는데 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일이 생각보다 순조롭게 흘러가는 거 같았다. 따로 이어주지 않았어도 매일 란이 시어머니 손등을 씻어 먹으니 음식솜씨에 반하게 되였고 나이보다 젊고 이쁜 얼굴에 반하니 그 남자분의 눈길이 자연히 란이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았고 결국 롱담 절반 진담 절반 섞어가며 대시를 하게 되였다고 한다.

란이 시어머니도 20여일 삼시세끼를 함께 하면서 정이 들어서인지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면서 그분 앞에서는 심장이 빨리 뛰고 그 심장소리가 들킬가 봐 부끄러웠다고 한다.

령감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나서 여기저기서 말벗이 될 좋은 령감을 찾아서 시집가라고 추길 때에는 이 나이에 무슨 시집인가면서 그 나이에 시집가는 다른 로인네들을 로망났다고 비웃었는데 당신 가슴이 뛸 줄은 몰랐단다.

더 이상 시누이가 령감이 하늘나라로 간 지 두달 만에 동창생과 마음 맞아 시집이라는 것을 가니 뒤에서 웃었는데 이제는 그 기둥뿌리를 뽑는다는 늘그막 사랑에 자기가 빠진 것 같다고 했다.

사랑에 빠진 시어머니의 속마음이 투명한 유리창처럼 훤히 보였다. 란이는 홀로 지내는 시어머니가 걱정이였는데 지금 이렇게 아프면서도 그분 얘기에 행복해하는 시어머니의 얼굴표정을 보면서 주저 없이 ‘늘그막 사랑’에 찬성표를 던졌다.

시어머니는 아들한테 ‘남친’이 생긴 일을 털어놓을 일이 태산처럼 무거워 걱정이였는데 며느리한테 털어놓고 나니 부창부수(妇唱夫随)인 아들 내외를 잘 알기에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해졌다. 언제 아팠는가 싶게 과일까지 챙겨 드시고는 인젠 다 나았으니 며느리더러 애가 기다릴 텐데 빨리 집에 가라고 떠미는 거였다.

란이는 집에서 떠날 때는 아픈 시어머니 집에서 하루밤 자고 갈 생각이였었는데 시어머니가 자꾸 벽시계를 올려다보며 조금씩 당황해하는 기색이 보여서 어쩜 그 아저씨가 올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눈치 없이 죽치고 있긴 그래서 택시 운전기사한테 전화를 넣었다. 차를 기다리는 잠간 사이 집청소까지 급히 해놓고는 택시가 오니 혼자서도 잘 챙겨드시라고 인사를 드리고는 집 문을 나섰다.

  아빠트단지 문을 나서는데 마침 도문차번호판이 부착된 차량 한대가 시어머니가 사는 집 아래에 멈추고 거기서 어떤 아저씨 한분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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