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빛 진달래꽃이
온 산천을 물들입니다
총대 메고 영령들
꽃으로 다시 태여납니다
저기 저, 뒤산에도
활활 타는 불길인 듯
타오릅니다
저기 저, 마을에도
붉은 기발 펄럭이는 듯 핍니다
누이의 치마저고리에도
한웅큼 한웅큼씩 핍니다
피고 지고
지고 피는
우리의 넋 숨쉬는
진달래 산천입니다.
새벽달
님은
이 새벽도
창문가에서 바장입니다
새벽닭이 열두번 홰를 칩니다
지척에서도 잡을 수 없는
님의 체취 더듬으며
이 한밤은 긴긴 삼추입니다
두고 간 사랑이 아파서
못 떠나는 님
새벽녘 야위여가는 얼굴
흐트러지는 내 동공
아, 어느새 날이 밝아옵니다
님은 하늘에서 울고
나는 창가에서 웁니다.
징검다리
오빠 손에 끌려
퐁퐁 넘었네
세상 넘는 법 배워주었네
아버지 터벅터벅
지고 가던 천년지게
받아주었네
후줄근한 어깨에
고래등 같은 힘 얹어주었네
아낙네들 팡팡
빨래방망이 소리
새하얗게 씻어주었네
주름 깊은 가난 씻어주었네
엄마 가슴 닮은 너
조잘조잘 한 세상 안고
변함없는 엄마의 자리
내 가슴 후비네.
시인과 별꽃
별을 헤입니다
억겁의 하늘의
별처럼 사라진 이들 이름을
별꽃이 불러줍니다
별 하나, 별 둘, 별 셋, 별 넷…
빛나는 별 하나씩
그들 이름 우에 찍어줍니다
옷자락 날리며
천지간에 떠도는 이름에게
별자리 하나씩 찾아줍니다
칠흙같이 깊은 밤에
등불 밝혀 시를 씁니다
사그락사그락
볼펜 소리 별을 깨웁니다
환생한 별꽃들이
환한 밤입니다.
첫눈
첫눈이 내리던 날
약속된 시간,
방망이질 하는 가슴 안고
뛰여갔던 그 차집
가물거리는 초불 아래
눈물로 얼룩진 엽서 한장
돌아오는 내 등 뒤로
펄 펄 펄 몸부림치던 첫눈
옷깃에 매달려 애원하는 듯했습니다
리별을 고할 겨를 없이 떠났던 님
저 하늘에서 흰 너울 쓰고
훨훨 춤추며 내려오다
저만치에서 쭈볏거립니다
이제는 가까이 할 수 없는 님
눈물 글썽이는 후회만 남기고
훌쩍 떠날 것만 같은
첫눈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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