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원의 축복□ 리영일

2024-03-15 05:45:36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끊어진 단어들이 추적추적 떨어진다.

비가 아스팔트길 우에 괴여오른다. 끊어진 단어들이 아스팔트길 우에서 혼탁하게 흐른다. 언어와 함께 세계는 출현하였고 언어와 함께 세상은 흐르고 언어와 함께 세상은 사멸한다.

비가 추적추적 어깨 우로 흘러내리고 검은 큰 우산을 뒤집어쓰고 도시를 헤맨다. 끊어진 비방울이 아메리카노 커피잔 우에 흘러내린다. 내 령혼이 아스팔트길 우에 흥건히 흐른다.

11월인데 비가 내린다.

우산 하나 어깨에 걸치고 한적한 거리를 거닐면서 휴대폰으로 혼자 중얼거린다.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내가 시인이면 시를 주절거린다고 하고 수필가면 수필을 쓰고 있다고 소설가라면 소설이 탄생한다고 하겠지만” 이런 날은 나 자신 만큼 이도 저도 아닌 그냥 나까지도 잊고 거리를 거니는 것 만큼의 자유 같은 것도 없다.

머리는 비우려고 해서 비여지거나 채우려고 한다고 채워지는 물건도 아니고 그냥 이런 날은 이렇게 우산 하나만에 의지하여 휴대폰으로 혼자서 웅얼거리면 나 자신이 누구인지도 기억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비 오는 날 나만의 감성에 젖어있는데 휴대폰에 몇시에 오냐는 선배님의 문자가 떠오른다.

아차 하고 정신이 번쩍 든다. 오늘 선배님과 만나기로 한 약속을 깜빡해버린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다시 걸어서 돌아가기까지는 너무나 멀리 나와있다. 택시를 잡으려고 하지만 빈 택시가 없다. 급한 성격이라 마음은 급한데 택시는 잡히지 않고 그렇게 시간만 자꾸 흘러가니 자전거 생각이 간절히 난다.

한국에서 류학을 하면서 어쩌면 평생을 타고도 남을 만큼의 대중교통을 리용하고 나니 귀국하여 뻐스는 쳐다보는 것도 싫었던가. 그래서 선택한 것이 자전거였다. 요즘 세상에는 구멍가게가 아니라 길가의 로점상들까지도 자가용을 굴리지만 그건 내 체질도 취미도 아니니 자전거를 샀었다.

그런데 자전거를 사고 얼마 안되여 나보다도 필요할 것 같은 누군가가 한밤중에 가져가버렸다. 첫 자전거가 사라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차라리 중고를 한대 더 구입했다.

헌데 두번째 자전거도 사라졌다. 이런… 마음이 쓸쓸했다.

세번째?

세번째 자전거는 사지 않았다. 세상에 모든 자전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 나눠줄 만큼 나도 넉넉하지는 못했으니깐. 집에서 직장까지 그렇게 멀지 않은 것으로 자신을 위안하면서 그때부터 걸어서 다니기 시작했다.

마침내 빈 택시를 잡았다.

그러나 안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어쩐다고?

아직 행운의 마음을 추스리기도  전에 차가 고장 났다고 내리라고 한다. 혹시나 택시 기사가 비가 내리는 날의 흑심으로 그러는 것 아닌가 싶어 7~8원어치도 될가말가 하는 거리를 20원을 드린다고 하는데 그냥 내리란다.

아마도 차가 고장이 나기는 난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택시에서 내리는데 마침 앞에 뻐스정류소에 뻐스가 들어서려고 하고 있다. 귀국하여 시내뻐스를 탄 일이 없지만 학원 앞에서 자주 보던 번호이고 내가 가는 방향이니 묻지 않아도 가능할 것이다. 급히 뛰여가 서둘러 뻐스에 탑승을 했다.

그런데?

위챗으로 스캔이라도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스캔하는 것이 없다. 갓 태여난 아프리카 하마처럼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고 기사는 카드만 사용한다고 설명해준다. 카드가 아니라 주머니를 다 뒤져도 동전 한푼 없는 줄을 번연히 알면서 주머니를 열심히 뒤지는 시늉을 한다.

“어떻게 할가요? 깜빡 잊고 카드를 두고 왔습니다. 제가 위챗으로 드릴게요.”

기사의 앞으로 위챗을 켜고 내밀지만 기사는 준엄하시기만 하다.

“이건 제 차도 아니고 저기 카메라도 있으니 그렇게 받으면 제가 불편해집니다. 그만 내려주십시오.”

직업의식도 뛰여난데 뭐라고 할 수도 없다. 1원이 기사를 불편하게 하는데  그렇다고 내린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다음 뻐스가 언제 올지도 모르고 온다고 해봐야 답은 비슷하게 같을 것이니.

“저기 누가 대신 카드를 한번 찍어줄 수 없습니까? 돌려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말하지만 나서는 사람은 없다.

기사가 내려라는 듯이 문을 닫지 않으니 마음만 더 급해진다.

“제가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러니 5원을 드릴 것이니 1원만 찍어주십시오.”

나를 쳐다보던 사람들도 눈길을 돌린다.

유치원에 다니는 애들도 1원이라면 쳐다도 보지 않으니 5원을 준다고 하는데 빌려주는 사람이 없다.

기사는 더 말없이 가속페달을 밟았다가 놓으면서 나를 내리라고 재촉한다.

“카드 한번만 찍어주십시오.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럽니다.”

휴대폰까지 흔들어보이면서 말이다.

이젠 정말 더 이상 선택은 없는 것일가?

“이 카드로 먼저 찍으세요.”

몸을 돌리는 나에게 녀인의 고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보니 코선이 뚜렷한 녀인이 카드를 내민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녀인에게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굽혀 카드를 받아 기계에 찍고 돌려준다.

“제가 스캔하고 지금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카드를 찍고 녀인에게 휴대폰을 내민다.

“아니, 됐어요.”

녀인은 카드만 받아챙기고 창밖으로 몸을 돌려버린다. 그런 녀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말을 하고 싶지만 녀인은 벌써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 채 비속을 응시한다.

이름이 아니라 얼굴도 바로 보지  못한 녀인에게 1원을 빚졌지만 뻐스가 출발하니 일단은 마음이 놓여서 휴대폰에 쓰다가 만 글을 마저 끄적거리기 시작한다.

“비는 하늘에서 하늘에서 대지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 대지로부터 하늘로 올라간다. 죽은 비나, 산 비나 워낙 그런 거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모질게 령혼을 앓고 이불 우로 비가 깊숙히 들어온다. 손으로 만진다. 끊어진 단어들을, 세계를, 우주를, 령혼을, 마음을… 끊어진 책, 끊어진 손과 발, 끊어진 책상다리, 숟가락… ”

뻐스가 기우뚱하면서 몸도 함께 흔들린다. 휴대폰에서 손을 떼면서 급히 뻐스의 손잡이를 잡는다. 다시 몸의 균형을 잡고 잠간 창밖에 눈길을 준다.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끊어진 단어?

금방 썼던 글귀를 다시 씹는다.

돈 1원… 그리고 순간적으로 비방울들이 만든 언어들이 내 머리를 치면서 나를 흐트러뜨리려고 한다. 세상은 때론 가격이 아닌 가치란 것을 알면서도 오늘 1원의 함의는 이제야 깨닫는 것일가?

1원이 준 행복, 그것은 저 수많은 비방울의 언어가 되여 내 가슴을 울린다.

1원, 그 돈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면서 묵묵히 녀인을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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